참여사회 2010년 01월 2010-01-01   1902

아주 특별한 만남_유효진 회원



벼랑 끝에서 비상 유하는 열정의 날갯짓




글 이경휴 수필가,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벼랑 끝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덕담 대신 날개를 주소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 (…)

비상非常은 비상飛翔이기도 합니다(…)

은빛 날개를 펴고 새해의 눈부신 하늘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경쾌한 비상의 시작
벼랑 끝에서 날게 하소서


– <벼랑 끝입니다, 날게 하소서> 이어령



시란 인생의 비평이라는 글이 생각나는 신년 벽두이다. 벼랑 끝에서 맞는 새해-시대의 절망과 고통의 역사를 설득해왔던 낙관마저도 증발한 지 오래고, 사람들은 표정 없는 얼굴로 총총걸음을 내딛는다. 비록 내밀한 소망을 광장의 허황한 불빛이 삼켜도 누구나 가슴속 소망의 불씨는 하나씩 품고 비상을 꿈꾼다. 방기곡경旁岐曲逕(바른길 놔두고 억지로 샛길 간다)으로 얼룩졌던 지난해보다는 올해가 낫겠지 하는 바람으로.

시작도 끝도 없는 원융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시작이니 각오가 새롭다.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라는 구호에 담긴 진정성을 의심하면서 ‘서울광장’을 바라본다. 요즘 대한민국의 모든 광장은 광화문광장이 제압해버렸다.
시민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은 철저히 막고 정부나 서울시가 펼치는 행사의 구경꾼으로 전락시키기에 온갖 꼼수를 다 쓴다. 혈세를 물 쓰듯 쓰며 꽃길, 스케이트장, 빛 축제에다 종당에는 국가적인 문화재 앞에 대형 구조물을 세워 스노보드 대회까지 개최했다. 세계적인 행사라는 홍보에만 급급했지 ‘세종대왕 뒤통수’ 치는 놀이라는 건 왜 깨닫지 못했을까. 오로지 세상을 유치한 놀이동산으로 만들어 지성과 이성의 성채를 허물기로 작정한 시정市政이 아닌가.

하지만 도도한 상업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광장은 열려 있어야 광장입니다’라며 분연히 일어선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6월,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개정청구서를 서울시에 제출한 후, 12월 19일 9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했다. 민주주의의 쾌거라는 평가와 함께 주민발의는 가능(서울시민 유권자의 1%인 8만 958명)하게 되었다. 그 가능성의 기폭제가 되었던 한 사람을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 12월 24일 참여연대에서10만 서명지를 분류하는 작업에 참여한 유효진 회원.

유효진 회원이다. 불혹의 고개에 올라섰지만 단발머리 소녀다.
아담한 체구에 검정색으로 치장한 옷맵시에 회색빛 프릴 달린 티셔츠가 귀여웠다. 고등학교(금천구 소재) 선생님이라기보다는 교실에 앉아 있는 여학생 같다. 유난히 웃음소리가 맑고 말소리 또한 빠르고 힘차다.  


민주주의 퇴행이 나를 열혈 활동가로 만들어”

먼저 송년회에서 ‘조례개정열혈상’을 수상한 소감부터 여쭸다.

“자랑스럽죠. 여기저기 자랑했어요.”

역시 빠르고 힘찬 목소리에 웃음까지 가세하여 사무실 안이 후끈했다.

자랑스럽고 자신감에 찬 목소리에 절로 힘이 솟아 인터뷰는 시종 활기차리라 예상되었다. 자연스럽게 초반부터 조례개정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더구나 참여연대 회원으로 가입한 것이 작년 7월이니 ‘열혈회원’답지 않게 늦깎이라 고개가 갸우뚱했다.

“전 매사에 늦은 편이예요. 엄마가 그러시는데  두 살 지나서 걷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초등학교 때도 받아쓰기, 구구단 외기도 다른 아이들보다 좀 늦었어요. 30대 중반에 교사의 길로 들어섰고…. 하지만 참여연대에 대해선 언론을 통해 이미 많이 알고 있었죠. 소액주주운동, 낙천낙선운동 등등 익숙한 시민단체였어요. 막상 가입이 늦었을 뿐이었죠.”

이유가 궁금했지만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린 시절 집안이 가난했어요.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왜 이렇게 무능하여 나를 이토록 힘겹게 학교를 다니게 하나, 불평불만도 많았죠. 가난을 개인의 무능 탓으로만 생각하다가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생각과 가치를 알게 되면서 생각이 변했죠. 1999년-2000년 당시 종로구 의원직 대신 평생 숙원이었던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 지역에 후보로 출마하는 등 입맛과 상황에 따라 편한 길을 찾거나 변절하는 정치인들과는 달리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그의 소신 있는 행동을 보면서 희망을 보았어요. 그러면서 전에는 관심 없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좁았던 나의 생각들이 깨이기 시작했죠. 가난 등의 사회문제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죠. 노사모는 아니었지만 그 이상의 지지를 했습니다. 노 대통령이 탄핵될 때도 오히려 역풍을 예상하며 안타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상대로 다시 일어섰지만…….”

말꼬리를 흐리며 메모용지를 만지작거렸다. 늦깎이로서 열혈회원이 된 힘은 무엇인지 그것부터 짚고 싶었다. 질문과 동시에 총알답변이 나왔다.

“한마디로 분노죠.”  

즐거움이 아니고 분노? 의외의 답변에 어리둥절할 틈도 없이 이야기는 이어졌다.

“법에 기초한 세상을 만들어야 우리가 행복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는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폭압에 힘을 모으기가 어렵잖아요. 이것에 화도 내고 분노라도 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낙관적인 신념이 저를 열혈활동가로 만든 것 같아요.”

분노야말로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며 에너지 아니었던가. 불의 속에 분노하고 저항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여기는 민주주의의 벼랑 끝이다. 그러나 조례개정 서명운동으로 주민발의는 가능케 되었으니 ‘날자, 민주주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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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용지, 테이블… 혼자서 어찌나 무거운지…”

조례개정 서명운동에 그가 얼마나 힘을 쏟았는지는 ‘광찾사'(http;//cafe.daum/openseoul) 사이트에 들어가면 단박 알 수 있다. ‘공포의 개미허리’라는 아이디로 글이 완전 도배되어 있다. ‘조례개정열혈상’을 수상케 한 내신 성적표로 단연 1등급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서명을 받기 위해 한여름부터 쏟은 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질문의 정석으로 들어갔다. 서명에 얽힌 에피소드나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면?

“에피소드보다는 서러움을 잊지 못하겠어요. 뙤약볕 아래서 내용을 다 듣고는 관심 없다, 바쁘다, 나중에 갔다 오면서 하겠다, 서울시민 아니다…그럴 때 정말 서럽더라고요. 그럼 설명은 뭣 땜에 들으며 남의 진을 빼는지. 고마운 사람들도 참 많았죠. 더운 날씨에 수고 한다며 음료수나 간식거리를 사다 주고 가는 사람,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관심보다 더 큰 폭력인 ‘진 빼기’-야비한 언론이 흘린 거짓 정보를 믿고 형성된 여론이 소시민의 의식까지 점령해버린 세태를 어찌 설명하랴. 이미지 장악에 성공한 정권은 한층 정교하고 대중화된 포섭기제로 사람들을 ‘굿이나 보고 떡만 먹는’ 상황으로 몰고 가버렸고,  그 정치적 연출에 젊은이들마저 깨어나지 않는다. 놀이공원 같은 일상만 꿈꾸며 상업광고의 주인공처럼 살고 싶은 욕심으로만 가득하다면 지나친 폄하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명운동은 성공했고, 공은 태산인 서울시 의회로 넘어가게 된다. 한나라당이 압도적인 의회에서 당론과 다르다는 이유로 부결될 때 우리는 또 민의를 저버리는 그들의 작태를 기억하리라.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듯 살며시 다탁에 놓인 녹차 잔을 앞으로 끌며 메모지를 훑어본다. 메모지로 함께 눈이 갔다. 인터뷰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예습해 온 선생님이라 긴장됐다. 같이 웃으며 앞선 질문의 연장선에서 다시 여쭸다. 그럼 제일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냐고?

“혼자기에 힘들었어요. 그날그날 서명 운동을 도와주시는 분들의 개인 업무가 우선이니까 현장으로 나오는 시간이 일정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서명 운동의 시작은 저 혼자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서울광장조례개정 서명 뿐 아니라 언론악법 서명까지 함께 받으려니 준비해야 할 짐이 많았어요. 피켓, 서명용지, 테이블 등…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전철에 오르면 좀 창피하기도 했어요. 어떤 날은 동생차를 빌려 옮겼는데, 그것 또한 만만찮더라고요. 주차공간을 겨우 찾아 서명할 곳까지 많은 짐을 옮겨야 했고….이 모든 것을 혼자 하다보니 ‘여럿이 함께’가 민주주의의 시작인 것을 절감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여럿이 함께’라는 가치는 퇴색되어가고 있지 듯하다. 우울한 마음이 설핏 들어 분위기 반전을 유도했다. 여러 날 중 서명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때는 언제였느냐고 여쭸다.

“8월 10일, 김대중 대통령 장례기간으로 기억합니다. 마지막까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애도의 마음을 전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죠. 앞으로 국민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처럼 서로를 격려했고, 흔쾌히 서명해주었어요. 대략 1500∼2000장 정도를 이틀 동안 받은 것 같아요.”

지난 12월 29일 서울광장 사용조례 개정 청구인 명부 제출식에 참여한 유효진 회원이 수임인 자격으로 6개월 동안의 서명운동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며

회원 가입은 늦었지만 평소 시민운동, 정치에 대한 소회를 자유롭게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하자 대답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촛불집회에 처음 나간 건 광우병 파동 때였어요. 이건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명백한 절차상의 문제라 여기고, 분노하며 혼자서 나갔죠. 그 전까진 촛불을 든다고 뭐가 변하지 하며 회의적이었어요. 그런데 혼자 나가니 좀 외롭긴 했지만 견딜 만했어요. 앞서 말했듯이 가난이 개인의 탓이 아니고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서거 후, 이젠 행동하는 시민이 되어야겠다는 의식이 생기더라고요. 즉시 ‘노사모’ 가입하고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참여연대 가입하여 조례개정운동, 언론악법 저지운동 등 사회 참여 활동을 하면서 세상 공부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어요.”

단숨에 달려온 ‘행동하는 양심의 역사’다. 더불어 현실정치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저는 공무원이라 정당인이 될 수 없고, 될 의사도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개혁을 위해선 계파를 떠나 양심적이고 민주적이고, 정말 서민을 위한 정당이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 좋은 인물이 나와야 할 거 같아요. 요즘엔 인물이 없단 말을 많이들 하잖아요. 각각의 국민들의 선택이겠지만, 좋은 인물,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인물을 선택했으면 해요.”

자유로운 발언과 행동으로 걸림 없는 듯했지만 결국은 공무원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노사모’의 활동과 노대통령이 남긴 가치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해달라고 했다.

“노 대통령 서거 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게 뭐라도 하겠다는 생각했어요. 그래서 노사모에 가입했어요. 사회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구체적인 실천과 참여를 하면서 세상을 바꾸고 싶었어요. 그래서 노사모에 가입했죠. 노사모는 주로 추모사업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전 직접 행동을 원하는데(^^). 모두 노 대통령이 이루려고 했던 민주주의에 대해 늘 고민하고 그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순간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숙연한 기운이 감돌았다.

“노대통령이 남긴 가치? 권력의 중심에 있어도 개인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결코 남용하지 않았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온몸을 던진 분 아닌가요? 그런데도 지금 민주주의는 거꾸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정치검찰들은 표적수사만 하고, 광장은 철저히 봉쇄되어 있고, 용산참사는 잊혀가고…가슴이 아픕니다.”

어디 그런 일이 하나 둘이랴. 자리를 정리하며 어떤 세상을 원하며 그런 시절이 오면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여쭸다.

“(공인이라고 인정받고 대접받는 사람들이)국민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사회,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원합니다. 섬은 홀로 물 위에 떠 있지만 해저 끝에선 서로 연결되어 있잖아요. 사람도 그런 것 같아요. 개인은 결코 혼자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걸 인식하는 세상, 이타주의적 개인주의가 뿌리를 내리는 세상, 이런 세상이 오면 전 할 일이 없겠죠.”

장난기 어린 표정이지만 웃음 속에는 칼날이 번쩍인다. 마지막으로 참여연대에 바라는 게 있다면?

‘열심히 일을 하니 든든한 단체라 고맙죠. 휴일도 없이 뛰는 활동가들을 보면 부채감도 느끼곤 하는데, 이런 마음을 덜기 위해서, 또 나와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열심히 달리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겁니다.”

참으로 든든하고 믿음이 가는 사람을 정초에 만났다. 올 한해 모든 일이 술술 풀리리라는 예감이 든다. 지금은 비록 벼랑 끝에 서 있지만 비상할 날은 순간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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