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0년 09월 2000-08-01   1359

[권은정의 파워인터뷰8] 청렴을 위한 등대지기, 기우봉 선생님


건설회사가 부도나면 그 책임을 물을 데라곤 빈 의자 하나뿐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야 이름도 번듯하고 그럴듯한 대규모 건설회사가 공사를 맡아하는 것 같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 보면 하청에, 하청에, 또 하청, 한참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 진짜로 공사하는 회사가 나타난다. 그럼 그 안에서는 책임이 확실하냐, 그것도 대답이 쉬 안 나온다. 그래서 삼풍이 무너지고 한강 다리가 무너져 내려앉는 비극이 생긴 게 아닌가?

그런데 드디어 서울시가 이것을 발본색원하자고 나섰다. 얼핏 청렴결백제 처럼 들리는 청렴계약제. 참여연대와 서울시 공동으로 부패 방지를 위한 민관협력 모델로 내놓은 제도이다. 서울시가 공사 수주에 있어서 입찰, 계약, 이행과정을 거울 속같이 투명하게 보여주겠다는 취지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진행과정을 감시, 평가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책임을 맡은 이들이 바로 옴부즈맨. 기우봉 선생(66)은 5명의 옴부즈맨 중 한 분이다.

그럼 이제 앞으로는 마음놓고 발뻗고 자도 되겠다. 서울시의 모든 공사(아, 참 단위가 큰 공사를 주로 본다고 했다)에 대한 감시체제가 이루어졌으니 안심해도 될 일이 아닌가.

아니지요. 아직은 그럴 단계가 못되지요. 공무원들은 바뀌는 것을 싫어해요. 생각 같아서는 공무원을 다 바꿔 버렸으면 좋겠어요, 한번 공돈을 먹어본 사람들은 월급 더 준다고 해서 전에 하던 일을 안 하진 않거든요. 위법을 했고, 양심도 버렸으니, 이미 버린 몸이다 이거죠. 그거 끊어서 어려운 생활을 하려 하겠어요? 그런데 바꾸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지요. 외적으로 바꾸는 게 있고, 내적인 것 즉, 인간이 바뀌어지는 게 있는데 이것은 너무도 안이한 방법이지요. 외적인 것은 뭐냐하면, 범법을 하든지 뇌물을 먹든지 하면 틀림없이 처벌을 한다는 그런 전례를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기 전까지는 바뀌지 않아요. 공무원들이 걸리면 솜방망이로 때리듯 어물쩍 적당히 처리해 버리는데 이래서는 안 돼지요. 합당한 처벌을 확실하게 해야지요. 이제까지는 잠깐 감봉 받거나, 싫은 소릴 들으면 그만인데 하는 생각이 들게 한 거지요.

어, 이 무슨 실망스러운 말씀이신가. 이제 정말 잘 될 것이라는 기운찬 대답을 기대하고 (사실, 그런 대답이 나오리라는 기대도 매너리즘의 하나다) 질문을 던졌는데, 이렇게 심드렁한 답변을 하시다니. 서울시장의 맹세가 정도 이상으로 기대를 하게 한 건가?, 우리의 호밀밭의 파수꾼께서는 아주 냉정하게 상황파악을 해버리신다.

고건 시장은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데요?

그럴 겁니다. 4공부터 고위 공직자를 지낸 분인데 시장이 되고 나서는 요즘 오픈 오피스를 운영하는 등 아주 노력을 한다고 보지요. 여러 가지 얘기를 들어보니 해낼 것 같은데 혼자 힘으로는 안 돼지요. 밑에서 받쳐줘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나 옴부즈맨이란 게 다섯 모두 풀타임도 아니고….. 괜히 이래 가지고 자기네들이 잘못하는 거 합리화시키는데 이용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어요. 지난 군사문화의 폐해가 아무 내용도 없는 것을 튀겨서 PR만 하고 그런 것이었는데 이것도 그렇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이런 것은 PR할 게 아니고 그냥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적으로 보여주면 되는 거예요, 지금 정권도 뭐 어떤 부분에서는 국민들이 비판을 하면 홍보부족이다, 홍보를 강화하라 그러는데 말만 앞세우면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어요. 행동으로 보여 줘야지요.

부정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으니 하루아침에 쉽게 바뀌어지겠느냐는 것이 솔직한 그의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청렴 계약제는 어쨌든 시작된 것 아닌가.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 천천히 차근차근 가보는 것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박원순 처장의 말씀처럼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일벌백계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지요. 그러니 부패방지법이 필요하고 그것의 철저한 시행이 필요한 것이지요.

무슨 장관이나 뭐 굉장히 높은 공직자들이 나 이렇게 해보겠노라 청운의 꿈을 안고 자리에 앉아 보지만 실무의 공무원들이 날 잡아 잡수 하면서 납짝 엎드려 있으면 일은 도루아미타불이라는 것. 과연 서울시 공무원들이 청렴계약제의 옴부즈맨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떨까?

생각을 어떻게 하든 자유이지요. 고깝게 볼 수도 있을 거지만 읽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 하하하…. 일주일에 하루 나가는데 난 오늘 처음 나갔어요. 감사실 직원 네 명이 우리가 하는 일을 도와줄 것인데 뭐, 기본적으로 그 사람들이 할 일은 아니지요. 기본 데이터 같은 것을 만들어 주고 그러지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구상을 해야 하는데 한꺼번에 다하려고 하면 안되지요. 그건 불가능하고, 어떤 식으로 해서 뇌물수수를 최대한으로 억제하고 부실공사를 없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데 그걸 하려면 마이크로 어프로치를 하면 안되고 전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매크로적인 접근을 해야지요. 전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 그 맥을 잡아야 해요.

왜 옴브즈맨으로 선정되었을까요?

작년부터 시민 로비단에서 부패 방지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에 가서 압력을 가하는 단체의 일원으로 일하는 가운데 참여연대의 추천을 받은 거지요. 기술자이기도 하고, 기업체에 있어 보기도 했으니 그 생리도 알고 하니 된 것 같습니다. 능력은 없지만…

그는 98년 말에 참여연대에 회원가입을 하면서 시민활동을 실질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예순여섯의 퇴직한 노인이라는 인상이 전혀 없었다. 질문을 받는대로 재빨리 할말을 쏟아내는 언변은 대화를 더욱 재밌게 끌어갔다. 그리고 그의 얘기는 지난 시절의 경험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퇴직한 이후 ‘쉬었다’라는 느낌을 가진 적이 거의 없었단다. 개인 컨설팅회사를 운영하기도 하고 후배들이 하는 공장 설립을 도와주기도 하면서 바쁘게 지낸단다. 아마 ‘기술자’로 지내고 있는 그의 생활이 그를 젊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공대 전기과를 가야겠다고 작심하고 공부했다. 서울대 공대에 진학한 그는 ‘우리 나라 산업이 살아나려면 공업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기초 에너지인 전기로 전력산업이 발전해야 한다고 믿었다. 6.25 직후 척박한 국내 산업덕분에 화공과와 섬유과가 대학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다. 모두 그쪽으로 지망하느라 전기과는 뒤로 밀렸단다. 다른 이들이 안 하겠다면 내가 해야겠다는 오기가 든 그는 ‘그깟 화장품이나 치약을 만드는 일이 왜 인기가 있나’ 하면서 학과지망을 일부러 1순위 전기과, 2순위 화공과로 썼단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한국전력공사에 들어가 일하다가 한화 에너지로 옮겨 일하던 그에게 현대에서 스카웃 제의를 해왔다. 국내 최초로 턴키 발전소를 설계, 운영하는 일을 맡기로 하고 현대 엔지니어링으로 간 이후 그는 지금까지 발전기 분야에서는 국내에서 일인자로 통할만큼 성실하고 끈기 있게 자신의 전공분야에 투신하면서 살아왔다. 현대에서는 퇴직할 때까지 18년을 지냈다.

그럼 현대 맨이시군요?

아니, 생각은 현대하고 달라요. 적극적이라는 점은 저와 맞았지만 조직 운영 방법이나 분위기는 저하고 달랐지요. 국내 대기업들이 하는 방법이 있잖아요. 기업주 마음대로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투자비율은 쥐꼬리만큼 갖고 있으면서 좌지우지 회사 돈을 함부로 투자하고, 개인적으로 상속하고, 불합리하게 하는 거지요. 그러나 장점도 많은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현대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그 프로젝트는 국내 최초의 성공을 거두었다. 엄청난 경비의 그 사업이 성공을 하자, 당장 그는 현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버려 일년만에 상무로 승진했다.

그리고 울산에 내려가서 일하라고 해서 갔지요. 울산은 작업환경이 정말 열악했지요. 제가 음식에는 무난한 사람인데도 거기 회사 식당 밥은 도저히 못 먹을 정도였어요. 작업도 별보기 운동을 해야 했고, 거기다가 책임자로 앉아 있는 사람은 경영이라곤 하나도 모르면서 또 마음대로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본사에 출장 왔다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주영회장과 단둘이 있게 되었지요. 정회장이 ‘어때?’ 하고 묻더군요. 그래서 ‘괜찮습니다’ 했지요. 그런데 또 어때 하고 묻는 거에요. 또 괜찮습니다 했지요. 현대 스타일은 좋든 싫든 무조건 ‘좋습니다’,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해야 하는데, 양심에 비추어 그 말은 안나오더군요. 내 일이니 책임에 따라서 일을 하고 있지만 내키지 않는 말은 하기가 싫더군요. 그때 ‘좋습니다’ 했으면 큰 회사로 옮겨와서 더 나아졌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렇게 살기는 싫더군요. 잘 나가던 때는 정회장 술좌석에 자주 함께 있곤 했지요.

대부분 그렇게 살면 출세와는 동떨어진 길을 걷기 마련이다. 그러자면 마음 고생도 각오했을텐데요?.

그럼요.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위의 눈치나 보고 말이죠. 나는 아랫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잘 일 할 수 있나 생각했지요. 위엣 사람들이야 마음 안 맞으면 언제든지 그만두겠다는 각오로 살았죠. 편하더군요.

그는 한전에 다닐 때도 봉급만 타면 열심히 책을 사보았다. 그런데 주로 당시 사회가 보지 말라고 하는 책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을 일본어판으로 사서 읽었다. 중국기행, 동부의 신세계 등 윗분들이 알면 심기가 불편해질 그런 책들을 탐독했단다. 그러면서 그의 마음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요즘 그 불꽃이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전 즉흥적으로 시민단체활동을 한 게 아니에요. 중 고등 학생일 때부터 여러 가지 생각한 게 있어요. 모친이 열 한 살 때 돌아가셔서 계모가 들어오셨는데 몹시 괴팍한 분이었지요. 몇 번이나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공부를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성공을 해야지, 그럼 성공하는 게 뭐냐, 돈? 아니다. 휴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사람 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 결론을 그렇게 내렸지요. 쪼금 과격한 생각을 했지요. .

언젠가는 썩어 빠지고 비합리적인 이 사회를 개혁하는데 동참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지요. 계속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데 용기가 없었어요. 떨치고 나와서 했어야 하는데 가족들도 있고….. 만약 떨치고 나섰더라면 지금 이 세상에 살아남지도 못했을 거예요. 직장 친구들은 그냥 휩쓸려 살자는 생각을 하는데 난 그렇게 안 되더군요.

어쩌면 그는 ‘혁명가가 될 뻔한 사나이’였다..
대기업에 다니는 동안 그는 <경실련>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그 방법 밖에 없다. 과격하게 부딪혀봐야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학생들이 희생당하는데 저 힘으로는 권력과 돈과 브레인까지 갖춘 기득권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이다.’

확고한 방향을 가진 시민운동이 전문적이고 실천적으로 대처하는 방식에 그는 흔쾌히 찬동했다. 그리고 여러 단체 중 가장 참신하고 의욕적으로 일하는 참여연대에 들어오면서 활동을 개시한 것이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지하철에 이상이 생겼다는데요. 부실 공사의 결과지요?
그는 놀랍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 공사를 시작할 때 관여한 적이 있었지요. 지하철 처음 생길 때 서울시의 간부 중에는 군 출신이 많았지요. 우리 나라에서 군대가 가장 부패한 곳 아닙니까? 있는 이들이 원래 더 많이 가지고 싶어하잖아요. 부실하든 어쨌든 자기한테 돈만 많이 갖다주면 만사 오케이였지요. 십년 전의 일이니 그간 혹 발전이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별반 달라졌을까 싶군요.

공사수주나 건설계의 비리는 거의 당연시 되어있고 전혀 의외의 얘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뒷거래는 어떻게 어느 정도 규모로 이뤄지나요?

부실공사의 처리방안에 대해서 지금 방향을 못 잡고 있는데, 과연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에요. 현재 공사 도급형태가 어떻게 되어 있냐하면, 큰 회사가 받아서 이, 삼십 퍼센트 떼고 다음 회사에 하청을 주고, 그렇게 해서 내려가면 정작 공사를 받아 하는 회사는 반도 안 되는 자금으로 공사를 해야 하는데,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부실 밖에 없지요. 누가 손해보고 공사하겠어요. 그런데 공무원한테 걸릴 것 같으니 돈을 갖다주거나, 깡패들을 동원해 공갈협박까지 하고, 위로는 계속 돈을 갖다대고…… 직접 주진 않았지만 저도 그쪽 계통에서 일을 했으니 뇌물을 안 쓸 수 없었지요. 뇌물을 주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지만, 가령 1백원의 공사비용을 낙찰가 1백 5십원 짜리로 만들어 줄테니 그중 삼, 사십 원은 자기 몫으로 내놓으라고 거래하는 공무원도 있었어요. 공무원들은 자기가 주고 싶은 쪽으로 주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방법을 쓰지요. 서류를 복잡하게 만들어서 미리 점찍어 놓은 쪽에 가도록 만들지요. 규모가 작건 크건 마찬가지예요. 전체가 부정의 고리로 엮어져 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쉽게 고쳐지진 않을 거예요.

그는 오랫동안 그 바닥에 있어 봤기 때문에 잘 안다는 표정으로 얘기를 했다. 그 중에는 정말 깨끗하게 살려는 공무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그런 존재를 건너뛰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자리를 아예 바꿔 버린다거나 고집 센(?) 공무원에겐 공돈을 쓰는 재미를 미리 맛보게 한 다음 함께 썩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마침내,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썩었는데 나만 그런다고 무슨 소용이냐, 고달픈 삶,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자포자기성 부정이 저질러지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뇌물의 규모가 주는 엄청난 무게로 무감각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가령 공무원이 몇십 만원, 몇백 만원 해먹고 쇠고랑을 찬다고 했을 때 ‘에게, 고작 그 까짓 것 가지고?’ 대기업이나 고위층들이(우리나라는 대통령들까지 확실하게 뇌물을 먹은 역사적 사실이 있다) 먹어 치우는 규모가 워낙 크니 부패 공무원들이 불쌍하고 부당하게 보이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를 먹었느냐가 아니고 ‘그 자리에서 그 일을 하면서’ 먹어서는 안될 것을 먹었다는 사실이다.

정주영씨가 청문회에 나와서 증언하지 않았어요. ‘시류에 따라서 했다’ 만약 현대가 전두환이나 노태우에게 돈을 갖다 바치지 않았더라면 살아남을 수 있었겠느냐 하는 거지요. 하청 시스템이 잘못되었어요. 그것을 없애야 합니다.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지금처럼 하면 위에서는 챙길 것은 다 챙기면서 책임은 하나도 없다고 발뺌해 버리니, 제일 손해 보는 것은 끄트머리에 있는 하청업자, 즉 불쌍한 영세 기업밖에 없어요. 근데 이 사람들이 손해 안 볼라고 하지요. 이윤을 남기려면 결국 무슨 방법이 동원되느냐 하면, 심한 경우에는 설계변경이란 것을 해요. 공사비를 더 받아 내려면 꼭 설계변경을 하는 거지요. 그러면 고속전철처럼 처음에 1백원짜리가 좀 지나서 2백원짜리가 되고, 나중에 끝나고 나면 3백원짜리로 되어버린 그런 경우지요. 이렇게 하는데 또 막대한 로비자금이 필요하거든요. 욕심 같아서는 일체의 설계변경을 없애고 싶어요.

지금도 뇌물을 쓰면서 ‘시류에 따라서’ 라고 말하는 기업인이 있다면 어떻게 말해 줄 것인가?

최저의 양심은 지킬 것. 예를 들어, 일도 안될 것은 아예 할 생각을 말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난 그 정도밖에는 못하겠는걸, 허허허…

그 옛날에 백 번도 넘게 맞선을 본 끝에 결혼을 했을 정도로 그는 눈이 높았다. ‘젊었을 때 사진 보면 정말 미남이었다’고 큰소리 치는 그는 약대 출신인 부인과 결혼하여 슬하에 2녀 1남을 두었다. 장성한 아이들이 모두 학교를 마치고 직장 일에 성실하지만 아버지로서 욕심이 있단다. ‘이렇게 참여연대 같은데 나와서 일도 좀하고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만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존중한다.

그는 참여연대내 회원들과 간사들의 건강도모와 홍보를 위해 ‘산사랑’이라는 산악회를 조직해 일주일마다 서울근교 산을 오른다. 그에게 노인으로서의 생활을 물으니 ‘누가 노인?’이라는 표정이다. 우리 사회가 경륜이 쌓인 이들을 제대로 못 써먹고 있다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은퇴한 이들을 파트타임 컨설턴트로 일하게 할 줄 알아야 해요. 디테일에 들어가면 몰라도 전체조망을 하는 능력은 우리가 훨씬 뛰어나지요.

그는 바쁘고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옴부즈맨 업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알아둬야 할 게 많단다. 그래서 토목관련 전문가와 약속을 해두었다며 자리를 일어섰다. 그를 보니 청렴계약제가 절대 구호로 그치고 말 것은 아니란 확신이 들었다.

청렴 계약제를 부패의 섬에 뜬 아일랜드라고 표현했던가. 그럼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하지만 정작 그 곳은 섬이 아니라 육지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기우봉 선생과 그의 동료들이 성공적으로 일을 해낸다면 그 섬은 아마 과포화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마음 깨끗한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니, 청렴의 섬들이 결국 서로 잇닿아 육지가 되고 말리라.

글쓴이 : 권은정
한겨레신문과 한겨레21 런던통신원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영국과 유럽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보통 사람, 특별한 사람, 유명한 사람, 덜 유명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저서로 <젠틀맨 만들기>, 번역서로 줄리언 반즈의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에>, 조아나 트롤로프의 <타인의 아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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