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4-06-02   719

<경제프리즘> 한국경제 위기인가

정부와 재계가 경제위기 논쟁을 벌이고 언론들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 국민들 처지에서 경제위기라는 말은 1997년과 98년의 혹독한 시련을 연상시켜서 불안감을 조성하는 단어이다. 지금의 한국 경제는 위기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지난 경제위기와 같은 위기 상황은 결코 아니다. 지금을 경제위기로 규정하는 재계와 일부 언론의 주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숨겨진 왜곡이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성장과 균형적인 분배라는 구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금의 경제구조는 위기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일반 국민들이 연상하는 경제위기는 아니지만 구조적인 중병에 걸려 있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를 지난 경제위기와 비교해보자. 부도율은 지난 경제위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은 수준이며, 연쇄부도의 조짐도 없다. 실업률도 절반 이하 수준이며, 급격하게 증가할 원인을 찾을 수 없다. 기업의 금융비용 부담률은 역사상 최저 수준이며, 인건비 부담률도 경제위기 이전보다 낮아서 기업의 수익성이 오히려 개선되어야 할 상황이다. 국제유가의 급등으로 불안요인이 있지만 물가가 폭등하거나 환율이 급등할 조짐도 찾아볼 수 없다. 외환보유고는 사상 최대 수준이어서 오히려 외국에 투자해야 할 상황이다. 당장 부실화할 위험을 가진 은행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두고 지난 경제위기와 견주어서 위기라고 한다면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서민과 중소기업이 느끼는 체감경제에는 위기감이 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소비자 생활형편지수와 경기판단지수는 지난 경제위기 이후에 가장 낮다. 경제불안 현상은 경제구조의 양극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소득분배의 불균형이 심화되어 서민들의 생활이 더 어렵다. 고용의 질과 세대간 실업의 양극화도 심해졌다.

18시간 미만의 취업자가 경제위기 때의 갑절에 이를 정도로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실업의 문제가 구조화했다. 신용불량자는 실업자의 4배를 넘어서서 경제활동인구 여섯 중 한 명이 금융 불구자인 상황에서 소비가 쉽게 살아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의 수익성도 대기업은 좋아지는데 중소기업은 악화되고 있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어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중소기업은 돈 구경을 못해서 아우성인데 대기업은 자금여유를 누리고 있고, 부동산 투기에 수조원이 몰려다닐 정도로 금융편중이 심화되었다.

경제구조의 양극화 현상은 경제적 약자인 서민과 중소기업한테 위기로 느껴지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재벌들과 언론들이 부추기고 있는 위기론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서민들과 중소기업들이 느끼는 위기감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투자 위축과도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재벌들이 날이면 날마다 출자총액 타령과 은행소유 타령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총수들이 수차례 대통령을 만나서 약속한 투자가 이루어졌다면 경제는 지금 호황을 누리고 있을텐데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경제위기 이후에 재벌기업들의 취업자 수가 20만명 이상 줄어들었으니 실업 문제도 재벌들의 책임이 크지 않은가. 비정규직의 문제도 대기업들이 풀어야 할 문제이지 피해자인 중소 하청기업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소비위축의 원인이 되고 있는 신용불량자를 만드는 데 재벌 카드회사들이 가장 앞장선 것을 잊었단 말인가.

서민들과 중소기업들한테 위기감으로 다가오는 경제구조의 문제가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고 자신들이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인데 재벌들은 누구 탓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경제운용을 제대로 못한 정부도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경제가 좋은데 웬 개혁이냐, 경제가 어려운데 개혁을 미루어야 한다는 식의 근시안적 주장을 해온 경제관료들은 안정과 성장 중에 하나라도 얻은 것이 있으며 경제는 살아났는지 자문해야 한다. 오늘의 한국 경제는 위기론으로 정치적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 정부, 재계, 노동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왜곡된 경제구조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때다.

<이 글은 한겨레 2004년 6월 2일자 시평에 실린 글입니다>

장하성(고려대 경영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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