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2년 06월 2012-06-04   2708

[통인] 내려놓고 가치를 따라, 리셋KBS

내려놓고 가치를 따라, 리셋KBS

KBS 아나운서 김승휘, 이광용, 이상호, 정세진, 최원정

 

   박유안 번역가
사진 황철기 작가

 

_MG_0278

정세진, 김승휘 아나운서가 여의도 희망캠프의 텐트를 지키고 있다.

 

2012년 봄, 여의도가 심상찮다. 파업 중인 KBS, MBC, 국민일보를 잇는 삼각형의 중앙쯤, 여의도공원에 밤낮으로 언론인들이 모여 텐트를 지키며 시민들을 만난다. 파업을 지지하는 개념 연예인들의 문화제, 시민들과 각계 인사들의 지지 방문 및 플래카드 걸기, 파업 동참 텐트 세우기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KBS새노조, MBC, YTN, 연합뉴스, 국민일보의 진짜 언론인들은 지금 파업 중이다. 부산일보 싸움을 더하면 무려 6개 언론사가 파행을 겪고 있다. 기간도 길게는 100일이 훌쩍 넘는다. 이러한 사상 초유의 언론사 연대 파업의 거점, ’여의도 희망캠프’를 찾아 KBS 새노조 김승휘, 이광용, 이상호, 정세진, 최원정 아나운서를 만나 이번 파업에 대해 들어보았다.

 

 

대체 KBS가 얼마나 망가졌기에, 직접 나서서 살려내야겠다는 지경까지 이르렀나?

정세진 내가 9시 뉴스 진행하던 당시만 해도 취재, 제작의 자율성이 컸다. 우리가 기득권 감시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성취감에 뿌듯했다. 그땐 KBS가 원래 그런 데려니 했다. 그런데 사장이 바뀌니 다 바뀌더라.

이광용 사장이 바뀌면서 사내 언로도 꽉 막혔다. 예전엔 눈치 보지 않고, 선배들에게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장이 바뀌니 안되더라. 새노조원들은 이런 실태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고, 참다 못해 파업을 한 거다.

 

 

꼼꼼한 MB, 치밀한 인규씨

 

 

KBS뉴스 볼 게 없다는 시민들의 반응이 따가웠을 줄 안다. 공정방송 복원이 이번 파업의 제1목표던데, 상황이 어느 정도였나?

 
정세진 <시사투나잇>, <미디어포커스> 등을 폐지했고, 시사 전문 채널로 거듭난 제1라디오도 연성화시켜서 매체 성격을 아예 망가뜨려놨다. 예전엔 제작하느라 힘은 들었어도, 일하는 재미가 있었다. 제대로 하면 어떤지를 경험해 잘 아는 우리로서는 이런 상태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김승휘 권력 비판의 날이 무뎌지더니, 한발 더 나아가 권력 찬양까지 비일비재했다. 아마 G20 경제효과 수십 조, 수백 조 설設 유포에 KBS가 가장 앞장섰을 거다.

 
김승휘, 정세진, 이광용 제작 간섭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KBS PD 300명 털어내도 방송에 전혀 상관없다고 공언하던 사람이 지금 KBS의 사장이다. 그러니 PD저널리즘의 수난은 뻔한 거고……. 보도국에서 걸러내니 기자들이 <생생정보통> 같은 프로그램에서 시사성 있는 10분 남짓 길이의 꼭지를 만들어 방송하니까(‘시선600’ 코너), 프로그램을 아예 외주제작국으로 보내버렸다. 그나마 유일하게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코너였는데…….

 

 

사장 한 명 바뀐다고 해서 그런 비상식적이고 엄청난 일이 가능해지는가?

최원정 이번 정권 들어 가장 큰 변화는 KBS 인사 시스템이 엉망이 됐다는 거다. 부장, 국장, 본부장 등 간부급이 원래는 두루 신망을 얻는 사람들로 채워졌었는데, 김인규 체제 들어서는 업무 능력을 인정하기 어려운 소위 ‘듣보잡’들이 요직을 장악했다. 이 사람들은 정통성이 없으니까, ‘내가 청와대 누구랑 친해, 내 친구가 누군데 걔 아이템을 이번에 좀 넣어야겠어, 좀 빼줘야겠어’, 그런 식으로 권력을 휘둘렀다. 그게 공정방송을 가장 크게 흔들었다.

 

 

낙하산 사장, 특보사장의 폐해를 들어보니 요즘 논란의 초점이 된 MBC의 김재철 사장 못지않은 것 같다.

 
이광용 구설수에 오르는 행태 면에서는 김재철이 단연 저질이지만, 상징성이나 그간 걸어온 길을 보아서는 김인규가 더 (공영방송 사장이) 되어선 안 될 사람이다. 대통령 선거 당시 방송전략실장으로 캠프에 있던 인물이 바로 그 덕분에 KBS 사장이 된 거니까.

 
김승휘 김재철은 짧은 시간에 거칠게 일을 처리했고, 김인규는 콘텐츠, 편성, 인사 등의 시스템에서 두루 치밀하게 KBS를 장악했다. 그러니까 더 나쁜 거다.

 

 

가치를 따라서, KBS 새노조

 

 

_MG_0212

여의도 희망캠프에서 파업 사진전을 관람하는 시민

 

KBS노조가 새노조와 구노조로 나뉘어 있더라. 시민들은 헷갈릴 법도 한데 설명 좀 해달라.

 
이광용, 김승휘 2009년 11월, 김인규 사장 취임 반대 총파업 찬반투표가 있었는데, 부결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 투표를 진행한 당시 노조위원장이 김인규 사장 취임식 날 함께 축하떡을 자르더라. 이런 노조로는 안 되겠다는 공분이 일었다.

 
이광용 방송사 노조의 핵심 기구 중 하나가 ‘공정방송추진위원회’다. 회사의 공정성을 감시하는 기구인데, 이게 유명무실했기에 제대로 해보자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서야 했다. 그래서 새노조가 깃발을 세운 거다. 감시와 견제를 제대로 하자고!

 

 

아나운서실 내부 분위기를 묻자, 새노조 아나운서들의 눈빛이 일제히 빛나며 답변이 화수분처럼 쏟아졌다. KBS 아나운서 100여 명 가운데 새노조 소속은 20명 이내. 안타깝다는 탄식이 줄을 이었다.

 
이광용 우리는 새노조원으로서의 정체성이 아주 강한데, 구노조 사람들은 그런 게 없다. 노조 자체에 별 관심이 없다.

 
이상호 ‘자신만의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자기 생각’만 하고 있다. 모두를 위하는 게 나를 위하는 건데.

 
정세진 ‘새노조 들어가면 방송 못한다’, ‘구노조를 탈퇴하는 순간, 프로그램 다 잃을 것이다’, 그렇게 압박하고 협박하니까, 누구나 민감해진다.

 
최원정 비겁하다 혹은 정신적 수준이 낮다고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파업 참여를 고민할 때, 지금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면 앞으로 맡을 프로그램에서 자칫 공정성을 잃은 걸로 보일 수 있다고 조언하는 선배들도 있었다. 내 선택은 그 쪽이 아니었지만,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아나운서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캐스팅에 연연하지 않을 만큼, 더 큰 대의명분이 있었다는 말씀인데?

김승휘 캐스팅도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있다. 캐스팅 권한은 PD에게 있는데, 몇 년 전 MC선정위원회라는 걸 만들더니 거기서 MC를 콕 찍어 PD에게 주더라. 황당한 일이다.

 
정세진 애초에는 캐스팅이 몇몇 사람한테만 몰리니까, 가령 다들 전현무만 찾으니까, 조율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만든 거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새노조원을 배제하기 위해 악용하고 있다.

 
김승휘 이번 파업 참가로 나중에 캐스팅이 안 되는 불이익을 받더라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다. 힘든 결정을 내리고 파업에 동참했다. 옳은 일이니 국민들이 이해하고 지지해 주실 거란 믿음이 있다.

 

_MG_0172

KBS새노조는 언론장악 청문회를 요구한다.

 

KBS를 리셋하라

 

 

아나운서는 방송을 업으로 하는 월급쟁이들이다. 이들에게 당장의 방송보다도, 다달이 찍히는 월급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단다. KBS새노조가 만들고 정세진 아나운서가 진행을 맡은 리셋KBS 뉴스를 보면, 이들이 내세우는 공정방송의 가치가 이런 모습이려니 헤아릴 수 있다.

 

 

리셋뉴스를 보면서, 사측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면 뉴스 생산자들이 이렇게 빼어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거로구나 싶었다. 반응이 어떤가?

이광용 지난 3월 사찰 문건 때는 폭발적이었다. 리셋KBS 뉴스 팀이 다룬 바로 다음날 방송3사가 9시 뉴스 톱으로 다뤘잖은가. 그런데 만약 이 소스가 KBS보도국 안에 들어갔다면, 그 뉴스의 가치가 과연 얼마나 제대로 구현됐을지 의문이다.

 
정세진 리셋KBS 뉴스 녹화할 때 보면 ‘KBS 뉴스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것들인데…’ 싶어서 안타깝다. 장비도 형편없고, 기자들이 고생이 많다. 내가 꼭 매주 만들어야 하냐며 말리려 들면, 기자들은 오히려 하고픈 아이템이 넘친단다. 아주 즐겁게 열심히 한다.

 

 

파업이 끝나도 리셋KBS 뉴스를 계속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세진 ‘리셋KBS’라는 브랜드가 형성됐으니 대안 매체로 적극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앵커를 맡은 건 파업이 50일을 넘기며 길어지자 동력을 보태자 싶은 마음에서였다. 내가 앵커를 계속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의미 있는 뉴스를 나 혼자 하려고 드는 것도 욕심이다.

이광용 정세진 아나운서 개인의 욕심이 아니라, 새노조 아나운서 전체의 욕심이다. 정세진 아나운서가 계속 리셋뉴스 앵커를 맡는 게 말이다.

 

 
이날 여의도 희망캠프 촛불문화제 진행을 맡은 이광용 아나운서가 “저는 이만. 아, 오늘 말 너무 많았네…”라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세진 아나운서가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시원하지, 들어주셔서?”라고 거든다. 하고픈 말이 너무 많은 사람들. 누가 이들의 입을 막았는가.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데,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정세진, 김승휘 구노조에서는 다음 사장 선임부터는 공정하게 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간의 경과를 알리는 청문회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어떻게까지 했는지, 현 상황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자는 거다. 국민들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는데, 이번 파업을 통해 배운 게 있다면?

정세진 9시 뉴스를 진행할 때는 그 자리가 날 만들어줬다면, 그 다음 단계는 내가 내 이름으로 바로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0년 파업이 그 첫 계기였고, 2년이 지나 이번 파업을 맞이하며 제법 단단히 여물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나로서 정립을 한 듯한 느낌이다.

김승휘 우리 또래가 개인적인 생각에 젖어 사는 세대들인데, 이번 파업을 거치면서 어렴풋이나마 ‘연대’라는 걸 경험해보았다. 아무리 작은 목소리라도 외면하지 말자는 깨달음 같은 게 있었다. 가령, 요즘은 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도 물리치는 법이 없다. 주는 대로 다 받는다.
정세진 나도, 나도! (웃음)

 

 

옳다. 외면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연대가 시작된다. 1980년 5월의 봄에도 우리 공영방송은 죽어 있었다. 광주의 외침은 화면 어디에도 없었고, 기자 시절의 김인규가 전하는 5공 찬양 방송과 같은 권력의 목소리만 그득했다. 지금, 비리가 계속 터지는데 뉴스는 여전히 권력 해바라기다.

 
방송에서 들리지 않으나 틀림없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 있다. 방송 일꾼들은 국민이 희망이라 외치지만, 그들이 또한 국민들의 참 희망이다. 방송 현실을 함께 들여다보고, 함께 분노하자. 희망은 비관하거나 냉소할 때가 아니라, 그렇게 함께할 때 그 온기로 싹을 틔울 테니까. 여의도 희망캠프에서 인터뷰를 한 그날은 묘하게도 5월 18일이었다.

 

 

 

박유안
기웃기웃 번역자. 바람구두라는 출판사 일도 하고 있지만, 연애, 여행, 혁명 등 일 아닌 다른 온갖 것들을 읽고 쓰고 옮기는 일에 더 재미가 좋다. ‘까칠해도 친절하게’를 모토로 한 친절당 당수의 꿈이 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