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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연구소가 2002년부터 발간하고 있는 《시민과 세계》의 창간호와 최근에 발간한 25호, 제호는 신영복 교수(성공회대)가 쓰셨다. |
┃ 배경과 문제의식 ┃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창립 초기부터 정세 분석과 정책 대안 제시, 진보 담론의 구축을 위한 정기적인 소책자 발간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잡지 형태의 간행물 발간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낙천낙선운동이 있었던 2000년 하반기였다.
당시 시민운동은 1990년대를 거치며 규모와 다양성의 측면에서 그 외연이 비약적으로 확대돼 있었고, 사회적 영향력과 신뢰도 또한 크게 높아져 있었다. 시민단체는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행위자가 됐고, 제도 정치에 환멸을 느낀 많은 시민으로부터 기대를 받았다. 2000년 4·13 총선에서는 900여 개가 넘는 시민단체들이 함께 낙천낙선운동을 벌여 정치 개혁의 가능성을 열었다. 하지만 그 이후 나타난 정치권의 구태의연한 모습은 시민운동 내부에서도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게 하는 계기가 됐고, 더욱이 ‘정권의 홍위병’, ‘시민 없는 시민운동’, ‘백화점식 운동’ 등 시민운동에 대한 공세는 시민운동의 입지를 위협했다. 이런 상황은 문제 제기와 현안 해결에 치중해 온 시민운동이 앞으로는 보다 이론적, 정책적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계기로 작용, 《시민과 세계》의 창간을 재촉하는 동기가 됐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참여사회연구소는 참여연대의 활동을 포함해 시민운동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진보적 시각에서 시민운동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를 시민사회에서 널리 공유하고 토론하는 공론장의 하나로 잡지의 필요성에 주목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포럼, 각종 세미나 등을 통해 도출된 연구 성과들을 발전시키고 한 데 모아낸다는 측면에서도 매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나아가 민족과 계급이라는 기존의 대항 담론을 넘어서는 시민적 진보 담론의 형성과 이에 기초한 역사 인식, 시대 인식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진보적 공론지를 만들어 보자는 공감대가 참여사회연구소 내에서 두터워졌다. 그 결과로 연구소는 발간모임을 구성하고, 편집위원회에 참여할 연구소 내부 인사 이외의 외부 연구자들을 섭외해가면서 본격적으로 잡지 발간 준비에 나서기 시작했다.
┃ 주요 활동 경과 ┃
창간 준비와 창간
참여사회연구소는 2000년 7월 ‘계간지 발간 준비 모임’을 구성하고, 잡지의 지향과 성격, 구성 등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참여민주주의론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 현 단계의 위치와 시대정신을 분석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민운동의 동향과 전망을 담아내는 것을 편집의 중심 방향으로 설정했다. 이를 통해 시민적 진보 담론을 구성해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논의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출판사 섭외에 들어갔다. 영리만을 목적으로 하거나, 시혜적인 생각에서 계간지 발간을 맡을 출판사가 아닌, 계간지 발간을 통해 출판사의 위상을 제고하거나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고자 하는 출판사를 물색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록 《시민과 세계》의 출판을 맡겠다는 출판사를 찾지 못했다. 추진 단위의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당초 《시민과 세계》는 계간지 형태로 준비됐으나, 출판사 섭외를 비롯해 재정적 여건과 인적 역량 측면 모두에서 당장 계간지로 발간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듬해인 2001년, 추후 역량이 축적되면 계간지로 전환하기로 하고, 잡지 발간 주기를 반년간으로 우회했다. 이후 창간까지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당대 출판사 박미옥 사장이 출판을 맡기로 하고, 장애인들과 더불어 어렵게 사회적 기업의 새 분야를 개척하고 있던 오픈에쓰이(Open SE) 최민 사장이 재정 지원을 약속하면서 잡지를 현실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틀을 갖췄다. 초대 편집위원으로는 권혁범 대전대 교수, 김균 고려대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발행인), 김상봉 문예아카데미 교장, 김호기 연세대 교수, 문순홍 대화문화아카데미 ‘바람과물연구소’ 소장, 박순성 동국대 교수, 이병천 강원대 교수(공동편집인),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 전창환 한신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홍윤기 동국대 교수(공동편집인)가 참여했다. 출판 관련 업무를 맡다가 사직한 이광일 연구실장에 이어 박정은과 신중식이 편집간사를 맡았다. 마지막으로 잡지의 제호를 두고 ‘시민비평’과 ‘시민과 세계’가 경합했는데, 잡지의 지향을 보다 선명히 드러내는 ‘시민과 세계’로 결정하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제호를 썼다. 그리고 2002년 2월 《시민과 세계》 창간호가 세상에 나왔다.
주요 기획
《시민과 세계》 창간호의 권두언 제목은 “열린 연대로 시민적 진보를 지향하며”였다. 《시민과 세계》가 지향하는 가치와 담고자 하는 내용을 응축해 표현한 것이다. 《시민과 세계》의 고유한 성격을 보여주는 기획으로는 ‘시민, 권력, 민주주의’(창간호), ‘시민정치, 국민 그리고 세계시민’(5호), ‘한국 자본주의 개혁 논쟁’(5호, 6호, 9호), ‘공화국과 시민’(6호), ‘나르시스의 꿈을 넘어서 – 탈식민주의와 시민적 주체성의 진보’(7호), ‘해방 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8호), ‘안보국가를 넘어 평화국가로’(10호), ‘공공성, 민주주의 그리고 한국사회’(11호), ‘대한민국사의 재인식 – 48년 체제와 민주공화국’(14호), ‘촛불, 새로운 시민사회를 상상하다’(14호), ‘시민정치와 새로운 진보’(16호), ‘복지국가와 한국형 복지동맹의 모색’(19호) ‘시민적 진보와 한국사회’(21호, 22호),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34~37호) , ‘한국사회의 능력주의’(38호), ‘동아시아 시민사회’(41호)등을 들 수 있다. 15호에 실린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는 것 – ‘민주적 애국주의’의 가능성과 필요〉는 화제를 낳으며, 《시민과 세계》 뿐 아니라 일간지를 통해 지상 논쟁으로 번지기도 했고, 포퓰리즘과 능력주의 연구는 학술계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런 일련의 기획을 통해 《시민과 세계》는 시민적 주체, 시민민주주의, 애국주의, 민족주의, 공화국, 공공성,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평화국가, 시민국가, 시민정치, 시민경제, 대한민국의 48년 체제, 87년 체제 등을 아우르는 시민적 진보의 기본 생각과 쟁점들을 담아냈다.
등재지로의 개편과 연구기금 운영
《시민과 세계》는 2018년 한국연구재단에 의해 등재후보학술지로, 2021년에는 등재학술지로 선정되었다. 연구의 의미가 국가기관이 부여한 자격만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학계의 연구자들에게 연구물이 ‘등재지’에 실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공인된 연구라는 증표가 되기도 한다. 《시민과 세계》가 비등재지를 유지했던 것은 연구자들이 전형적인 논문의 틀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시민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학술적인 언어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언어로 시민에게 다가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학계에서 자리잡기 위한 요건들이 강화되면서 연구실적이 되지 않는 비등재지인 상황에서는 필진 섭외가 점차 쉽지 않은 상황이 지속되었다. 현실적인 상황은 받아들이되 시민사회운동과 학술계 양측 모두에 기여하는 학술지가 되겠다는 목표하에 2015년 등재지로의 전환을 준비하기 시작하였고, 2018년 등재후보지, 2021년 등재지가 되었다. 시민단체가 발행하는 잡지가 등재학술지가 되었다는 것은 기념할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한편 참여사회연구소는 시민사회운동과 대안정책 관련 연구를 위한 연구기금을 조성해 연구를 지원하고 이러한 연구를 《시민과 세계》에 싣고 있는데, 연구과제 지원을 통해 만들어진 기획들이 2020년의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연구, 2021년의 능력주의 연구, 2022년의 동아시아 시민사회와 취약계층 노동 연구 등이다. 더불어 참여사회연구소는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수자의 삶을 알리고 개선하기 위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하는 인문사회과학연구자들을 응원하고 이들의 연구활동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연구기금과 클라우드펀딩을 재원으로 하여 2018년부터 신진학자를 대상으로 한 논문상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구성
《시민과 세계》는 2024년 6월말 현재 44호가 발간됐다. 《시민과 세계》의 구성은 크게 두 번 바뀌었다. 첫 번째 변화 시기는 16호를 발행한 2009년이었다. 16호부터는 ‘주제기획’란과 ‘특집’란을 통합하여 담론과 정책 관련한 조금은 무거운 논의를 줄이고, 그 대신 활동가가 시민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소개하는 ‘현장’란, 한국 사회의 문화적 현상과 문화 예술계의 현안을 분석하는 ‘시민문화’란을 신설하였다. 또 저자를 초청해 북토크 형식의 행사를 진행한 후 행사의 내용을 ‘서평’란에 싣는 시도도 하였다. 두 번째 변화 시기는 27호를 발행한 2015년이었다. 이때부터 《시민과 세계》는 등재지로의 전환을 위해 책의 구성을 크게 논문 섹션과 비논문 섹션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개편을 하였다. 논문 섹션은 편집위원회나 운영위원회가 기획한 주제의 연구를 담아내는 ‘기획논문’란, 연구자들의 투고로 만들어지는 ‘일반논문’란으로, 비논문 섹션은 시민사회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거나 주요 이슈에 대해 연구소가 기획한 좌담의 내용을 싣는 ‘소통과 논쟁’란, 그리고 ‘서평’란으로 구성하였고 현재까지도 이러한 구성을 유지하고 있다.
2024년 현재 편집위원으로 김주호 경상국립대학교 교수(편집위원장), 김만권 경희대학교 교수, 소준철 이화여자대학교 연령통합고령사회연구소 박사후과정연구원,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관후 건국대학교 교수, 이병천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이정연 경북대학교 교수, 이항우 충북대학교 교수, 이헌미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정세은 충남대학교 교수, 정준호 강원대학교 교수, 최현 제주대학교 교수, 홍성태 고려대학교 강사가 참여하고 있다. 한편 《시민과 세계》는 학술자료를 종이보다는 디지털파일로 이용하는 추세, 종이 소비를 되도록 줄이려는 노력에서 43호(2023년)부터 인쇄본을 발간하지 않고 있다.
┃ 성과와 의미 ┃
《시민과 세계》는 우리 시대의 개혁과 진보 담론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산실 역할을 자임해왔다. 2002년 창간부터 20여 년간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의 문제의식과 쟁점을 담아내고 시민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전략에 대해 학자와 활동가,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현장의 활동가들에게는 자신의 운동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운동의 방향과 전망을 수립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잡지이자, 연구자들과 일반 시민들에게는 시민운동 현장의 고민을 공감하고 보다 넓은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에 대한 실용적 연구와 이에 대한 논의를 함께할 수 있는 잡지가 되고자 노력해왔다.
2023년에 한국연구재단에서 발표한 사회과학분야 학술지에 대한 인용지수 자료에 따르면 《시민과 세계》는 사회과학분야 학술지 중 상위 20%에 들고 있다. 등재지가 된지 3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고, 학회가 아닌 시민단체 부설 연구소가 발행하는 학술지인 점을 감안한다면 나쁘지 않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2008년부터 학술논문 제공 사이트인 디비피아에 《시민과 세계》 콘텐츠를 제공해 접근 편의성을 개선하였고, 2009년 지면 구성의 변화를 통해 가독성을 높이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시민과 세계》의 확장성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 2015년 등재지로의 전환을 준비하기 시작한 이후 《시민과 세계》는 일반 시민과 소통하는 잡지라기보다는 학술지로서의 성격을 굳혀 가고 있다. 연구자를 넘어 시민사회운동과 민주주의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비상한 고민이 필요하다.
《시민과 세계》는 줄곧 시민 공동체와 시민적 주체를 강조해왔는데, 이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억압받고 배제된 민중과 소수자와의 열린 연대를 통해 형성되고 쟁취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었다. 날로 심각해지는 양극화 구조 속에 놓인 현실의 ‘시민’이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시민 정치의 주체로 나아가기 위한 실천 가능한 과정을 규명하는 것은 앞으로 《시민과 세계》가 천착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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