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활동✨ 1994-2024 2024-08-26   4860

집회의 자유 보장을 위한 공익소송

집회는 보일 수 있고, 들릴 수 있는 곳에서

2016.10.20. 청년참여연대는 청와대 연풍문 앞에서 노동개악, 위안부합의, 입학금문제 등을 주제로 대통령께 올리는 상소문 백일장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집회신고를 했다. 경찰은 집회금지통고를 했고, 참여연대는 금지처분 취소소송으로 맞섰다. 동시에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해, 청와대 앞 100미터 내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제11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아냈다.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은 ‘밥상용 쌀’ 수입반대와 박근혜 대통령의 쌀값 21만원 공약 이행을 요구하기 위해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졌다. 이후 317일 동안 사투를 벌이다 끝내 세상을 떠났다. 경찰의 직사 물대포에 생명을 잃은 고 백남기 농민 사건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국가폭력 사건이었다. 참여연대는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망사건의 제대로 된 수사를 요구하는 동시에, 경찰의 무차별적인 물대포 사용을 금지하고 누구든 안전하고 평화로운 집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집회·시위의 자유 확보와 물대포 추방 캠페인’을 한달 여간 진행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개정 및 물대포 사용금지 청원인을 모집하고, 국회와 청와대 등 집시법이 금지하는 장소에 릴레이 집회신고 후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직접행동 캠페인이었다.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대통령 관저,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등의 경계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누구든지 집회 시위를 예외없이 금지하는 집시법 제11조는 1962년 제정 이후 일부 내용의 변화는 있었으나 그 원형을 그대로 둔 채 유지되고 있었다. 실제로 시민들은 집시법 제11조로 인해 국회, 청와대, 법원 등 주요 국가기관 인근에서 집회·시위 신고 자체를 거의 하지 못했다. 집회신고를 하면 예외없이 금지되었고, 해당 기관을 항의의 대상으로 하지 않거나 행진의 일부 구간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에도 예외없이 전부 금지통고를 받았다. 집회 장소 선택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약되고 있었다.

민주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집회 시위의 자유 보장을 위해 활동해온 참여연대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 집회 시위의 자유가 지속적으로 후퇴하는 상황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공익법센터를 중심으로 ‘집회와 시위의 자유 확보 사업단’을 구성하고 집시법 제11조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하기로 했다.

절대적 집회금지 장소를 정한 집시법 제11조에 대한 문제의식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2011년 11월, 이태호 당시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한미FTA 비준동의에 반대하며 국회 담장 근처까지 행진했다는 이유로 집시법 제11조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재판과정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벌금 250만 원을 선고했다. 참여연대는 2013년 9월, 이태호 사무처장을 청구인으로 하여 집시법 제11조 제1호 국회의사당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참여연대는 국회가 대의기관으로서 시민들의 의견에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하며, 주권자의 의사가 국회에 충분히 전달되고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들어 국회 앞 100미터 이내 집회금지 조항의 위헌성을 주장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는 국회에 닿기 어렵기 때문에 평범한 시민과 소수자를 위한 소통과 연대의 권리로 집회시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집시법에 의해 유독 권력이 행사되는 장소에서는 100미터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사실을 강조했다.

5년여 시간이 훌쩍 지난 2018년 5월 31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국회 100미터 이내 집회·시위를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집시법이 국회가 수행하는 헌법적 기능을 침해할 가능성이 없는 정당한 집회·시위까지 필요 이상으로 금지하여 집회의 자유를 침해했음을 명백히 선언한 것이다.

참여연대는 법원 경계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집회 시위를 금지하는 조항에 대해서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아냈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지를 제작, 배포하여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활동가 동글이씨는 명예훼손으로 과도하게 수사하는 검찰을 비판하기 위해 시민 10여 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다 체포되었고 이후 집시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기자회견 장소였던 대검찰청 정문 앞이 대법원 담장으로부터 100미터 내에 있어, 법원 100미터 내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집시법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참여연대는 법원을 상대로 한 집회가 아님에도 단지 물리적 장소가 법원 앞 100미터 이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이며, 법원을 상대로 한 집회라 하더라도 재판의 독립과 공정성에 직접적인 위협을 초래하지 않는 집회시위까지 금지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해 2018년 7월 26일,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 냈다.

2016년 10월, 고 백남기 농민 사망 이후 ‘집회·시위의 자유 확보와 물대포 추방 캠페인’의 일환으로, 청년참여연대는 청와대 연풍문 앞에서 30여 명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상소문 백일장을 개최하겠다는 집회신고를 했다. 여기에 그 어떤 물리적 힘의 행사나 질서를 교란할 수 있는 요소는 없었다. 그럼에도 경찰은 역시나 집시법 제11조를 이유로 금지통고처분을 했고, 참여연대는 이를 다투는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2018년 1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청와대 100미터 이내 집회금지 조항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2022년 12월 22일, 헌법재판소는 마침내 청와대 앞 100미터 이내 집회금지에 대해서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회, 법원에 이어 청와대까지 주요 국가기관 인근에서의 집회를 절대 금지하는 조항이 위헌적임이 거듭 확인된 것이다. 집시법 제11조의 부당함과 위헌성을 끊임없이 제기해 온 참여연대 활동의 소중한 결실이었다.

참여연대는 여러 사례들을 통해 집시법 제11조의 위헌성과 문제점을 공론화하기 위해 ‘집시법 11조 적용 현황 보고서’를 발표하고 집시법 개정안 입법청원 등 정책제안도 함께 제시했다. 또한 2016년 1월 한국을 방문한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 마이나 키아이(Maina Kiai)에게 한국의 집회결사의 자유 실태를 알리고 현행 집시법이 장소제한, 시간제한, 방법제한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헌법상 권리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는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집회시위 자유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일련의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던 참여연대는 2016년 11월,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외치는 시민들이 청와대 앞까지 행진이 가능하도록 하는 역사적인 법원의 결정을 이끌어 냈다. 2016년 10월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로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실체가 드러나던 시기, 첫 주말집회가 있던 10월 29일 행진 행렬은 교통소통 방해, 폭력시위로 변질 등의 이유로 광화문 앞에서 가로막혔다. 이에 참여연대는 11월 5일 곧바로 경찰의 집회금지에 대한 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이 인용 결정을 하면서 촛불시민들이 합법적으로 광화문 사거리를 행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에도 경찰은 거듭되는 청와대 인근으로의 집회·행진을 조건부 허용으로 막으려 했으나 그때마다 참여연대는 가처분 신청을 내, 11월 11일 결국 사직로-율곡로 구간까지 인용이 결정난 데 이어 사상 최초로 참가 인원이 200만 명을 넘어선 12월 3일 촛불집회는 마침내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행진이 가능하게 되었다. 헌정사상 청와대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집회와 행진이 보장되는 기념비적인 결정이었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참여단체로서 참여연대는 다섯 차례에 걸쳐 주말 집회 때마다 집행정지 가처분 사건을 도맡아 진행했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의 집회신고와 경찰의 집회금지통고처분, 경찰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심문, 법원의 인용 결정까지 탄핵 국면에서 집회시위의 자유 보장을 위한 싸움은 매주 급박하지만 집중력 있게 진행되었다. 역사적인 법원의 결정을 이끌어 낸 참여연대와 시민사회의 활동으로 수십, 수백만 시민들은 평화롭고 안전하게 청와대 앞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무너뜨린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외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경찰이 금지통고할 때마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통해 집회의 자유를 회복, 또는 허락 받아야 하는 상황이 계속 되었다는 점에서 집회의 자유가 원칙이고,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한 헌법 제21조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그동안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집회의 자유를 더 확대하는 결정들을 내린 것과 배치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서 듣겠다는 명분으로 대통령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했으면서도, 집시법 제11조가 100미터 이내 집회 금지 장소로 정하고 있는 ‘대통령관저’에 대통령집무실이 포함된다고 해석하여 대통령집무실 앞 100미터 이내에서의 집회시위를 제한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대통령집무실은 공적 업무 공간으로 관저와는 다르며, 국민의 의사표현이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함에도 경찰은 자의적인 법해석으로 참여연대의 집회신고 뿐 아니라 용산 집무실 인근에서의 시민사회단체 집회신고를 일률적으로 금지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1심부터 대법원까지 일관되게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은 문언상으로도 별개의 공간으로 구별된다고 판단해 대통령집무실 앞 집회를 금지통고한 처분이 위법하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국회와 법원, 청와대 앞 100미터 이내에서의 집회시위를 예외없이 금지한 집시법 제11조를 헌법적 심판대에 올려 결국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받아냈다. 1962년 제정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국가기능을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사실상 집회시위를 억압하기 위한 방안으로 주요 국가기관을 절대적 성역으로 만들었던 권위주의 입법이 60여 년만에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집회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살리고 헌법재판소의 위헌성 확인이 입법절차를 통해 구체화되어야 할 시점에, 국회는 유감스럽게도 절대적 집회 금지장소를 몇 가지 예외적 허용 요건을 두는 선에서 타협했다. 대규모 집회로 확산될 ‘우려’나 기관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에 한해서만 집회를 허용함으로써 오히려 경찰의 자의적 해석 범위를 확대하고 권한만 강화해 버린 것이다.

우리 헌법 21조 1항에서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는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한 불가결한 근본요소에 해당한다.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하고, 집회 장소는 집회의 목적과 효과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할 것인가를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헌 요소만 제거하고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입법은 무책임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집회의 자유 확대와 함께 전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를 이끌어 온 중요한 국면마다 집회를 불온시하고 규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공권력과 협소한 법조문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21조에 충실하고도 충분한 집시법, 집회는 ‘보일 수 있고, 들릴 수 있는 곳에서’라는 기본 원칙을 구현하는 집시법을 만들기 위해, 다시 참여연대는 신발끈을 조여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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