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활동✨ 1994-2024 2024-08-26   5066

기억⋅심판⋅약속의 유권자운동

2016년, 참여연대와 1000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2016총선시민네트워크를 발족하고 기억·심판·약속운동, 투표 참여 운동, 국가기관 선거개입 감시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후보자 정보제공 웹사이트인 ‘3분 총선’을 열어 지역구와 후보자명을 검색하면 후보자의 기억(평가) 정보, 약속 정보, 심판 정보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2000년과 2004년, 총선시민연대의 부패·반개혁 정치인에 대한 낙천낙선운동은 시민사회가 정치권에 개입해 시민의 힘으로 정치를 바꾸는 새로운 유권자운동이었다. 당시 국민들의 높은 지지와 응원 속에서 집중 낙선대상자가 대폭 낙마하는 등 커다란 성과가 있었지만, 낙선운동의 불가피한 특성상 개별 후보자의 낙선에 한정되었고 보다 구조적인 정치개혁은 낙천낙선운동으로 변화된 환경에 맡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한국정치는 크게 나아지거나 달라지지 않았고, 유권자의 시각에서 선거와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후보자 선택의 기준과 척도를 제공하는 등 유권자운동의 필요성은 여전했다.

2010년대 이후 시민사회단체의 유권자운동은 기억·심판·약속운동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기억운동은 후보자들이 어떤 전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의정활동을 펼쳤는지, 어떤 법안이나 정책에 찬성하거나 반대했는지, 어떤 법안(개혁법안 또는 반개혁법안)을 발의하거나 통과시키는데 기여를 했는지 등을 꼼꼼하게 기록하여 공개하는 일종의 정보공개운동이다. 유권자 알권리를 위해 범죄전력 등 기본 정보부터 개혁법안에 대한 찬반입장을 공개하는 활동이 주를 이룬다. 심판운동은 시민사회단체가 정한 기준에 따라 낙천낙선 명단을 발표하고 이를 알리는 활동으로, 개별 후보자에 대한 직접적인 ‘심판’운동이자 낙선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선거의 가치, 기준을 제공하는 활동이다. 과거 낙천낙선의 기준이 주로 부패전력이었다면, 2012년 총선 이후에는 개혁정책이나 법안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이 주요한 기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약속운동은 개별 후보자들이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정책들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확인하여 공개하거나, 정당과 정책협약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의 약속이자 시민사회가 제시한 사회개혁의 이행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후보자 약속운동은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대다수 후보자들의 약속을 받아 이후 입법으로 이어진 성공적인 사례이다. 각각의 방식은 선거시기 마다의 정치⋅사회적 요구에 따라 중심점을 달리하며 이어져왔다.

낙천낙선운동이 아닌 약속운동을 중심으로 한 유권자운동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2010년 참여연대는 녹색연합과 환경운동연합,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등 전국 350개 단체와 2010유권자희망연대를 결성해 ‘밥과 강을 위한 유권자 권리 선언’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들은 ‘4대강 사업 중단’과 ‘친환경 무상급식 실현’ 등을 선거의 핵심 요구로 내세우며 여러 정당들과 정책협약을 추진했다. 이명박 정부의 낮은 지지율 속에서 시민사회가 제시한 무상급식 정책은 핵심 선거쟁점이 되었고, 이에 관한 후보자들의 찬반 입장은 유권자의 후보자 선택에 주요한 정보이자 기준점이 되었다.

2010년 정책중심의 유권자운동의 필요성을 확인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2012총선유권자네트워크를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2012년 총선은 이명박 정부 5년차에 치러진 선거로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를 파괴하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드높은 시기였다. 또한 2012년은 참여연대의 오랜 유권자 선거표현의 자유 보장 운동의 결과로 온라인 선거운동이 합법화 된 이후 첫 선거였다. 이미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2011년 말 한미FTA비준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킨 의원들의 명단을 총선 낙선 명단으로 만들어 온라인상에서 확산시키고 있었다.

2012총선유권자네트워크는 처음으로 ‘기억, 심판, 약속’을 주요한 활동 방향으로 채택하고 리멤버뎀(rememberthem) 사이트를 구축해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약속을 받은 결과를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용산참사 책임자, 한미FTA 비준 책임, 4대강 사업 찬동, 역사교과서 개악 주도 등 12개 기준을 바탕으로 140명 심판 후보 명단을 발표했으며 한미FTA 폐기, 비정규직 철폐 및 권리보장, 4대강 사업 재자연화 추진 등 33개 정책과제 약속운동을 진행해 총 214명의 후보자가 약속운동에 동참했다.

박근혜 정권이 말기로 접어들던 2016년, 참여연대와 1000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2016총선시민네트워크를 발족하고 기억·심판·약속운동, 투표 참여 운동, 국가기관 선거개입 감시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의 댓글공작 등 선거 개입이 드러난 바 있는 만큼, 시민사회단체들은 국가기관과 관변단체의 선거개입이 재발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로 했다. 2016총선시민네트워크는 1차, 2차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하고, 35명의 낙선대상자와 1만 유권자가 온라인으로 투표하는 ‘Worst10 후보, Best10 정책’도 발표했다. 후보자 정보제공 웹사이트인 ‘3분 총선’을 열어 지역구와 후보자명을 검색하면 후보자의 기억(평가) 정보, 약속 정보, 심판 정보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선거에 임박해서는 ‘집중심판대상자’의 선거사무실 앞에서 전국 낙선투어 기자회견을 십여 차례 개최했다.

그러나 선거시기마다 진행해온 유권자운동에 선관위와 검⋅경은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의 사무실로 이용되었던 참여연대 사무실과 활동가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고, 활동가 22명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정당한 유권자운동을 불법 낙선운동으로 낙인찍는 경찰의 수사와 검찰의 기소가 부당하고 무리한 것이었지만, 근본적으로 규제 일변도에 규제기관의 자의적인 법해석이 가능하도록 한 선거법에 문제가 있었다.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활동가들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참여연대가 제기한 선거법 93조 등 독소조항 헌법소원에 대해 2022년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 및 위헌 결정을 내렸고 이어진 2023년 재심에서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았다.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2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감염병이 한국사회를 휩쓸었다. 선거운동 자체가 쉽지 않았으며 총선이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까지도 정책과 공약은 보이지 않았다. 또한 반쪽짜리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허점을 악용해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혼란한 상황이었다.

이에 참여연대와 환경 및 노동단체들은 2020총선시민네트워크를 결성해 실종된 정책들을 되찾고 당면한 사회적 과제를 제기하고 유권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활동을 펼쳐나갔다. 2020총선시민네트워크는 자산과 주거, 노동 등 불공정·불평등 타파, 젠더 차별 혐오 근절, 기후위기 등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 정치·권력기관 개혁, 우리가 만드는 평화 등 5가지를 핵심 의제로 제시했다. 이를 중심으로 정당 정책을 평가하고 총선 후보자들이 이러한 문제 해결에 적합한 인물인지 관련 자료를 조사해 온라인을 통해 알리는 활동으로 이어갔다.

기억하고 심판해야 할 후보자로 세월호 참사 및 희생자를 모욕한 후보자, 젠더혐오 및 소수자 차별 후보자, 반개혁 친재벌 후보자 등 유권자가 기억해야 할 나쁜 후보 178명을 발표하며 후보자 선택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했다. 한편 참여연대는 위헌⋅위법적인 위성정당과 이를 허용한 중앙선관위를 규탄하면서 선관위에 위성정당의 후보자 등록 거부를 촉구했고, 헌법재판소에 위성정당 비례명부 수리 처분 취소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했다.

시민들의 힘으로 어렵게 쌓아올렸던 인권과 민주주의, 환경과 평화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던 시기, 22대 총선은 윤석열 정부 2년차임에도 정권 심판의 열기가 어느때보다 높았던 선거였다. 복합적인 위기가 닥쳤음에도 정치가 이를 극복할 방안을 논쟁하기보다 퇴행적 정치와 대립의 정치를 반복하고 있어, “위기와 혐오를 넘어 희망의 정치”를 모토로 전국 17개 의제별 연대기구와 73개 시민사회단체는 2024총선시민네트워크를 발족해 유권자운동을 이어나갔다. 21대 국회 평가 등을 통해 반개혁 법안을 추진하거나 개혁을 반대해온 국회의원들의 명단 발표, 22대 국회에서 추진되어야 할 입법정책 과제 제안, 부적격 후보에 대한 공천반대·낙선명단 발표와 시민캠페인을 진행했다.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시민이 뽑은 22대 총선 최악의 후보, 최우선 정책 TOP 5 온라인 투표도 진행했다.

시민사회단체는 각각의 시기마다 시대적 요구에 착목해, 퇴출해야 할 후보자를 선별하고 알리는 활동을 전개해왔다.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과 역량, 도덕성을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특히 주요 입법·정책 과제에 대한 후보자와 정당의 입장과 태도를 조사하여 공개함으로써 시민사회단체들의 정책적 비전이 선거 과정에서 평가의 잣대, 후보 선택의 기준이 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외에도 유권자 선거 표현의 자유 침해 행위에 대한 저항과 개혁 입법 운동,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에 대한 감시 활동, 일하는 사람을 위한 투표시간 보장 캠페인, 투표참여 캠페인 등을 통해 유권자 스스로 권리를 옹호하고 지켜낼 수 있도록 활동했다.

기억·심판·약속의 유권자운동은 어떤 시기에는 주목을 받았고, 또 어떤 시기에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최소한의 활동에 만족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민들이 정치, 선거와 관련된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더 많은 시민에게 전달되고 활용되게 하려면, 시민운동도 접근방식과 소통방식이 크게 달라져야 하는 큰 숙제가 남아있다. 그러나 여러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선거시기에 기억과 심판이 사회적 약자들의 무기이자 주권자의 책무라는 점에서 시민사회단체가 그 소임을 변함없이 수행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유권자운동의 또 한번의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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