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은 검찰수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검증하는 차원에서 실시해야
1. ‘안기부 X파일’과 관련해 검찰 수사 방향에 대한 비판은 물론 추가테이프의 공개여부, 수사주체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과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혼선과 논란이 계속되는 일차적인 이유는 검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 및 이와 관련된 여타의 법집행은 검찰의 몫이지만, 뿌리 깊은 검찰에 대한 불신은 그 역할을 검찰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게 한다. 이같은 검찰 불신은 경험적이기도 하지만 이번 사건수사와 관련한 미온적인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각종 불법행위를 담은 녹취록의 내용이 보도되었지만, 정작 검찰은 시민단체의 고발만을 기다렸으며, 사건이 발생하면 철저수사를 공언하던 평상시의 태도와도 다른 것으로 초반부터 수사의지를 의심케 했다.
수사에 착수한 이후에도 검찰이 보인 태도는 석연치 않은 것이었다. 정작 삼성의 정관계 불법로비에 대한 수사는 미룬 채, 눈에 보이는 도청행위와 보도의 위법성 여부에만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이는 분명 균형감각을 상실한 것이다. 물론 아직 수사초기라는 점에서 이같은 수사방향이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자체로 중대한 범죄행위인 안기부 불법도청행위의 진상을 밝히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며, 삼성과 권력층의 유착관계를 수사하기 위한 단서가 되는 테이프 내용의 진위여부를 판단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계속해서 수사의 초점이 불법도청 테이프와 녹취록의 악용, 그리고 관련 내용의 보도과정에만 집중된다면, 이는 불법로비에 대한 수사를 왜곡하거나 본질을 흐리기 위한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2. 한편 검찰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한 추가테이프의 공개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참여연대는 테이프의 내용을 곧바로, 그리고 모두 공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다름 아닌 국가기관이 실정법을 위반하면서 불법도청자료를 전부 공개할 수는 없다. 국가기관은 언론과 달리 다른 방식으로도 공익에 부합하도록 그 내용을 국민에게 공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테이프의 내용이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까지를 포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모두 공개할 경우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 비록 공인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다. 테이프의 전면공개에 따른 이같은 부작용과 다른 법익의 침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검찰이 테이프에 담긴 불법행위 부분을 수사하고 이를 토대로 수사결과를 발표하거나 재판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공개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은 테이프의 내용공개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이나 혼란이 비공개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려하는 사회적 파장과 혼란은 불법행위의 당사자들이나 이 과정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에게 중요할지 모르지만, 불법과 부정, 부패 청산을 원하는 국민들이 고려할 사항은 아니다. 특히나 불법행위를 파헤치고 이의 처벌을 구하는 법집행기관인 검찰이 고려할 사항은 더더욱 아니다.
3. 이와 관련해 검찰이 삼성의 불법로비뿐만 아니라 추가테이프의 내용까지도 철저히 수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과 불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수사 혹은 진상규명의 주체를 누구로 하느냐의 논란이 일고 있다. 여기에는 검찰 역시 테이프에 담긴 불법행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과 앞서 지적했듯이 검찰에 대한 경험적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검찰 스스로가 관련된 사건을 맡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이해충돌과 추가테이프의 내용을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검찰이 수사 혹은 공개의 범위를 전적으로 결정하도록 맡겨 놓기에는 신뢰가 부족하다는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그 해결책은 진실규명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기하고, 동시에 수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
참여연대는 단계적 접근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즉 검찰에게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우선 규명토록 하고, 특검이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검증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테이프에 담긴 불법행위들은 오래전 일이거나, 당사자들간에 이뤄진 은밀한 범죄행위라는 점에서 이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검찰이 지닌 수사인력과 경험, 그리고 수사기법 등이 충분히 활용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현재 거론되고 있는 특검이든 제3의 민간기구이든 이들이 수사나 진실규명에 착수할 때까지는 법제정이나 특검 임명 등과 관련해 상당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적어도 2, 3개월의 기간동안 진실규명이 늦어질 뿐만 아니라, 정치적 공방 속에 오히려 사건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을 검찰에게만 맡겨 놓기에는 사건수사의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다. 이같은 점들을 고려한다면 검찰수사가 선행되고, 특검은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검증하고 미진한 부분과 추가 의혹을 수사하도록 해야 한다.
4. 특검과 약간 다른 차원에서 제3의 민간기구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기관이 어떤 역할과 권한을 지니는지 구체화 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는 추가테이프의 공개여부를 판단하는 기관으로 보인다. 테이프를 보유하고 있는 검찰이 이를 원칙에서 벗어나 선별적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를 막기 위한 취지로 보이며,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공개여부만을 판단하는 기관을 별도로 둘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사건들은 공개와 진상규명이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테이프의 공개여부만을 판단한다하더라도 최소한의 사실관계 확인은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이는 결국 수사권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렇다고 수사권을 부여한다면 특검과 다를 게 없다. 그리고 사법처벌을 전제로 한 수사와 단순한 과거청산 차원의 진상규명이 분명히 구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불법행위의 공소시효를 미리 단정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 수사를 통해 범죄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면, 이를 토대로 공소시효를 검토하고 법적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3기관 문제는 향후 여러 논의를 통해 그 구체적인 상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내용만으로 본다면 실효성을 지니지 못한 정치적 구호이상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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