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대외원조ODA 2025-08-27   1085668

토크 : 필리핀 선주민의 목소리

글. 정예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활동가

2025.08.27 토크: 필리핀 선주민의 목소리 (사진=참여연대)

개발 사업은 언제나 파괴를 수반한다. 새로운 것을 짓기 위해서는 무언가 무너지고 없어진다. 댐을 지을 때 파괴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지역 선주민의 마을 공동체, 인간보다 더 오래 그 자리에서 연결망을 형성해 온 생태계, 그 지역에 살았고, 살고 있으며, 살게 될 것 모두. 2000년, 세계댐위원회(World Commission on Dams)는 대형 댐들이 “선주민과 부족민의 삶, 생계, 문화, 그리고 영적인 부분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끼쳐 왔”다고 선언했다. 

한국의 자본으로 필리핀 할라우강에 지은 댐으로 인해 가족과 공동체를 잃은 선주민과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물었다. 필리핀 파나이섬 일로일로주 할라우강에는 왜 댐이 세워져야 했는가. 왜 이리 많은 생명이 죽어야 했는가. 우리는 어떻게 그것에 연루되어 있는가.  

잘못된 시작

할라우강의 다목적댐 사업은 1960년, 일로일로주에 다목적 댐을 설치하고 완료될 때까지 지원하는 연방법에 따라 처음 시작되었다. 1단계는 관개 시설 재건 사업으로,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1단계 사업이 완료됐을 때, 필리핀 정부는 이 사업의 내부 수익률이 매우 낮으며 부적격하다고 평가해 다음 단계를 진행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2009년 필리핀 관개청(NIA)은 갑작스레 할라우강 다목적 사업 2단계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진행해 이 지역에 다목적 댐 3개를 건설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때, 타당성 조사 이전에 진행되어야 했을 ‘자발적 의사에 따른 사전 인지 동의(FPIC : Free Prior Informed Consent)’의 과정이 조사 보고서 제출 이후 행해지는 등 절차적 부정의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한국 수출입은행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은 대규모 차관을 지원한다. 

지역 선주민들은 댐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할라우강과 파나이강 인근에 조상 대대로 거주해 온 선주민 투만독(TUMANDUK)이 중심이 되어 이들은 총회를 개최했고, 할라우 댐을 반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댐 사업은 이들의 마을, 공동체, 생계 수단, 환경과 유산 모두를 파괴하는 문화적 말살(cultural ethnocide)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차관을 제공한 한국에도 책임을 묻고, 한국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댐 건설 반대 운동을 이어 나갔다. 한국 시민단체 등은 현지 조사, 수출입은행 질의 등의 활동을 했다. 2013년 발족한 할라우강을 위한 민중 행동(JRPM: Jalaur River for the People’s Movement) 활동가 등도 방한해 함께했다.

이들의 반대운동은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2016년 종료될 예정이었던 사업은 2018년에서야 시작됐다. 사업 진행을 위해 필리핀 정부 측은 선주민들에게 강제로 뇌물을 부여하고 강제 이주시켰다. 한국 기업 대우 건설은 공사를 수주해 2019년 공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2024년 말, 공사를 도맡아 하던 대우 건설은 공식적 계약을 종료했고, 남은 과정은 필리핀 관개청에 이관했다. 2025년 8월 현재, 사업의 약 80%가 완공되었지만 지역에서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강제 이주, 인권침해 그리고 학살

발표자 정법모 부경대 교수와 JRPM 활동가 존은 댐 건설 그 자체가 유발한 피해뿐만 아니라 건설 반대 운동을 하며 발생한 인권침해 문제의 심각성에 관해 설명했다. 댐 개발은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데, 가장 큰 문제는 수몰 지역이 발생하고 강제 이주를 해야 하는 사람이 생기는 점이라고 정 교수는 강조했다. 불가피 개발을 해야 한다면 비자발적인 이주에 대한 대책과 보상 필요할 것인데, 그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선주민들은 더 깊숙한 산으로, 자기 뿌리가 되는 터를 떠나야만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선주민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과 그들에게 가해지는 위협의 문제다. 필리핀 정부는 투만독(TUMANDUK)선주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인정할 수 있는 선주민은 술로돈(Sulodon)과 부키드논(Bukidnon) 뿐이라며, 투만독 자체를 지우려 한다. 술로돈은 안, 자궁을 의미하고, 부키드논은 산사람(mountain people)을 뜻한다. 개별 민족을 존중하지 않고 전체 선주민에 그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정부는 지역을 군사화하여, 오랜 기간 댐 건설에 반대해온 선주민을 ‘빨갱이’로 낙인 찍으며(red tagging) 위협하기도 했다. 지난 2020년에는 군과 경찰에 의해 투만독 선주민 지도자 9명이 살해되고 17명의 주민이 연행되는 일이 발생했다. 투만독 사람들은 이를 ‘학살’이라고 부른다.  

존은 이 학살로 인해 공동체가 큰 위기를 겪었다고 설명했다. 지도자의 죽음은 트라우마로 남아, 많은 주민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등을 앓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고 공동체 간 신뢰, 지역의 유산 모두 상실했다. 땅 마저 잃었으므로, 그들은 외지인이 되었다. 수출입은행은 이 초국적 살해 사건에 대해, 그들의 죽음이 사업과는 무관하다고 항변했다. ‘빨갱이라서 위협받았다’는 필리핀 정부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무책임한 대응이다.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사업이 진행될 이유는 일절 없어 보인다. 통상 난개발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경제성 등의 논리도 부족하고, 사업 과정만 본다면 이로 인해 득보는 듯한 이해관계자가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존은 필리핀의 개발사업은 정부 부패와 크게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원조 사업 진행 시, 집행자들이 지원금 명목의 돈을 일부 횡령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횡령은 제도화되어 있어 사업을 집행하는 정치인, 기업 등이 쉽게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사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규모가 커질수록 이들은 더 많은 이익을 본다. 그러나 존은 그들이 얻는 것보다 선주민과 시민들은 더 많은 것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입은행 웹사이트에 따르면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은 “개발도상국의 산업화 및 경제발전을 지원하고 우리나라와 이들 국가와의 경제교류를 증진하기 위하여 1987년 설립된 정책 기금”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의 일곱 개 이행원칙 중 하나는 “환경사회 리스크 관리”로, OECD Common Approaches 및 EDCF 세이프가드를 준수해 환경사회 리스크를 완화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할라우강 유역의 현실은 어떠한가. 할라우 다목적댐 사업은 EDCF 세이프가드가 적용된 첫 사례다. 그럼에도 발생한 심각한 환경 파괴와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서, 수출입은행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할라우강 다목적댐 사업은 필리핀 정부의 부패, 이행 과정에서의 부정의, 인권침해 등의 문제에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렇게 초국가적인 부정의에 대해서,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질 수 있을까? 국가 내부의 문제와도 깊게 연루되어 있을 때 제3국은 어떤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정법모 교수는 일본의 사례를 들어, 유상원조를 지급하는 국가는 부조리 시정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ODA 자금으로 지어진 댐 건설 과정에서도 비슷한 인권침해 등의 문제가 발생했고, 일본 시민사회는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으며, 이에 일본 수상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더 이상 자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압박했다. 수출입은행 EDCF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잔금 지급을 중단할 수 있다. 세이프가드 절차에 맞게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문제에 대해 적법하게 조사하고 책임을 다할 수 있다.

이번의 방한 일정에서 선주민과 JRPM활동가는 한국시민사회와 함께 필리핀 할라우댐 사업이 한국수출입은행 EDCF 세이프가드와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수출입은행과 두 번째로 면담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그 응답과 태도가 긍정적이지는 않았다고 존은 말했다. 이번 방한 일정에서 또 그는 국회 토론회에 참여하고, 인권위원회와 면담도 진행했는데, 그때 만난 국회의원과 인권위 관계자들과의 만남은 꽤 고무적이었다고 한다.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인지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계속해서 해결할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응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자 한재광(발전대안 피다 대표)는 이 사업과 문제에 대해 꾸준히 모니터링을 하며 문제제기 해야 한다며, 자신은 다가오는 국정감사에서 관련 내용을 묻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누군가의 삶이 짖밟힌다면 우리는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각자의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선주민 A씨를 잘 기억하고 싶다. 그는 간담회 자리에서 다소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관심을 가져주어 고맙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 달라는 간단한 말만을 전했다. 그는 영어도, 한국어도 구사하지 못한다. 우리는 타갈로그어도, 투만독 선주민 언어도 구사하지 못한다. 그녀가 한국에 있는 동안 나는 그와 몇 번 인사를 나누었지만 제대로 소통을 하지는 못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살해당한 선주민 지도자의 자녀다. 그 때문에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고, 방한 일정 내내 어느 곳에서도 사진이 찍히거나 이름이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을 테다. 한국에서 흘러간 돈은 그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그의 가족을 파괴하고 그의 삶과 유산 모두를 사라지게 했다. 사소하지  않은 상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와 함께, 땅, 삶, 권리가 얻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투쟁할 것이다. (We will continue to struggle until land, life, and rights are won, 존이 발표 말미에 띄운 문장)

2025.08.27 토크: 필리핀 선주민의 목소리 (사진=참여연대)

필리핀 선주민의 목소리

프로그램

  • 사회 :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
  • 이야기손님
    • 존 알렌시아가 (할라우강을 위한 민중행동 활동가)
    • 선주민 투만독 A씨
    • 정법모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 영한 순차통역 제공


공동주최 : 기업과인권네트워크, 대안적국제개발시민사회네트워크 KOSODA (국제민주연대,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웤, 발전대안 피다, 사단법인 아디, 해외주민운동연대), 플랫폼c,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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