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7-07   1435

과학기술과여성위원회에서는 지금…

난 일요일엔 국회 도서관을 다녀왔다. 하늘엔 온통 구름이 드리워져 있어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질 것 같은 날씨였다. 공휴일인 관계로 여의도역에서 탈 수 있을 거라던 셔틀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2주마다 있는 시민과학센터 산하 과학기술과여성위원회(이하 여위) 회원들의 정기모임을 요번에는 국회 도서관에서 가졌다. 5월에 있었던 토론회(제목: 그녀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이유)의 후속으로 기획된 개별 인터뷰 준비를 위한 논문 검색 및 자료수집이 이 날의 목적이었다. 국회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자료들이 생각보다 없었고 우리는 국회 도서관 입구 쪽 로비에 앉아서 각자 가져온 자료들을 읽고 요약·정리하는 선에서 끝냈다.

모임에서 가장 후발주자이며 초보여서 계속 더듬거리고 있긴 하지만, 여위의 활동 자체는 나한테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격주 일요일 12시마다 서울대역 롯데리아로 향하는 발걸음에 즐거움과 설렘이 같이 묻어간다고 말하면 우리 모임 멤버들 눈이 휘둥그래질 듯. 그 동안 나는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의 뉴스레터를 전자메일로 받아보면서 머리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매회 뉴스레터에서 번역가를 모집한다는 안내가 나왔는데, 선뜻 자원을 했었다. 하지만 솔직히 거기까지였고, 이후로 나는 양치기 소년의 역할만을 다해오고 있었다. 말로만 그쳐선 안 되겠다 싶어 두 달 전, 작정하고 참여연대를 찾아갔고 시민과학센터의 배태섭 간사님을 만났다. 이런저런 얘길 나누던 중 “과학과 젠더”에 관심이 있다

는 내 얘길 들은 간사님이 다리를 놓아 주셔서 지금 여위의 일원으로 영광스럽게 편입하게 되었다.

지난 5월말부터 여위에 참가하면서 느낀 점은 많다. 나는 우리가 하는 식의 기획과 설문조사를 아주 거창하고 지독하게 전문적인 분야로 보았기 때문에 열 명 남짓한 여위의 회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다음 번 작업의 안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자료를 수집, 검토하고, 각자 나름의 견해를 피력해가면서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나가는 과정이 솔직히 경이로웠다. 하나의 중심 과제를 놓고 공동작업을 해나가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모두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서두르는 일없이 착착 진척시켜나가는 여위의 추진력과, 멤버들의 학구적이고 지적인 면면들은 지금까지 내가 보고 겪은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함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처음 얼마동안은 당황도 했었다. 왜냐하면 회원 모두가 석사 학력 이상인데다 내가 만난 여위 회원들은 모두 서울대 출신이었으니까. 공대 선후배라는, 견고해 보이는 이들의 연결 고리는 자칫 나 같은 신입회원에게 배타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자아냈다. 게다가 모임에 들어와서 보니 초보회원에 불과한 내가 여위에선 제일 연장자가 아닌가. 내 심정은 ‘맙소사’ 그 자체였다. 지금 와서 밝히지만 여위 모임에 처음 다녀온 날 이후로 이러저러한 심적 충격 때문에 며칠 동안 한숨만 토해냈다는 사실.

초기의 당황감은 이제 완전히 떨쳐냈고 공

동 협력 작업에 매료되어 나도 기쁜 마음으로 활동에 임하고 있다. 격주 모임에선 진행 중인 우리의 연구 조사에 대한 얘기 뿐 아니라 여러 일상생활 체험도 같이 나오기 마련. 웃고 맞장구치고 취미생활 얘기에, 때론 진지한 조언도 주고받으면서 신나는 한때를 보낸다.

나랑 같이 활동하는 여위 회원들 대부분이 대학시절 학과에서 “마이너리티”였다는 사실을 알고 났을 때, 뭐랄까 안쓰러움 같은 게 일었다. 한편으론 공대(또는 이공계) 여학생으로서의 마이너리티가 긍정적으로 결실을 맺은 것이 “과학기술과여성위원회”가 아닌가란 생각도 들고.

우리 모임의 홈페이지는 지금 구축 중에 있다. 여러 코너를 만들어 문서 자료들을 올리고 있는데 차곡차곡 쌓이려면 시간이 더 걸릴 듯하다. ‘그녀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이유’를 주제로 한 설문 결과 발표 및 토론회가 4월에 공식적으로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앞서의 설문조사에 보충적이고 보완적인 인터뷰를 준비하는 중이다. 과학도 지망생(중고교)과 과학 전공 대학(원)생 및 과학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개별 인터뷰를 위해 인터뷰 요령 및 주의사항, 인터뷰 항목 등을 문헌과 논문을 통해 조사 중. 여건 봐서 인터뷰용 Voice Recorder도 살 계획이다.

인터뷰를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 에 관해 논의하던 도중에 수경 씨가 아주 즐거운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 이번 인터뷰 끝나면 이 다음에는 00 가지고 설문조사 한 번 해 보자고.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반사적으로 수경 씨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금 하는 일이 하나도 수고스럽지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혹시 이게 여위의 저력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번역가로 지원했다가 애초 목적지와는 약간 다른 데로 발길이 돌아가 버린 형편이지만 하여튼 요즘 나는 굉장히 신나고 재밌다.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을 여럿이서 힘을 모아 해나간다는 사실과, 소탈하고 정감 넘치는 인간미와 샤프하고 지적인 매력을 겸비한, 여위 여러 회원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특별한 즐거움을 안겨 주므로. 두 달 전 회사에다 적당히 둘러대고 일찍 나와서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를 불쑥 찾아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자꾸 자꾸 든다.

최소희 | 시민과학센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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