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술의 개발에 있어 대중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번역 이명재_시민과학센터 회원
출전 : Smith, Jeremy and Tom Wakeford (2003), ‘Who”s in Control,’ The Ecologist (May 2003) pp.40-41
UN의 제재 안이 이라크 어린이 50만명의 죽음 보다 가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시 UN 미국 대사였던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는 ‘예,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인도의 보팔에서 일어난 화학 폭발의 희생자들이 받은 얼마 안 되는 보상에 대해 질문을 던졌을 때, 다우케미칼의 전 CEO이었던 마이클 파커(Michael Parker)는 ‘500달러는 인도 사람들에게 충분히 많은 돈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이익을 얻는 소수)에게는 아마도 그 돈이 지불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만의 상처받은 이라크 가족들, 보팔에서 만성 질병을 얻은 20만의 사람들, 체르노빌 사고 이후 18년이 지났지만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을 경작할 수 없는 수 천명의 우크라이나 농민들에게 무슨 소용인가. 이렇게 상처입은 그들은 기름이나 살충제나 원자력이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 그들에게 이런 질문이라고 던져본 적이 있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아무도 이런 물음에 대답한 적은 없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야 우리는 해당 기술이 과연 가치있는 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DDT나 탈리도마이드, 혹은 프레온가스(CFC)를 생각해 보라. 이런 물질들은 피해가 발생하고 나서야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동일한 일이 나노 기술의 경우에도 벌어지고 있다. 잘못 사용되었을 때 장애를 가지게 된 수천의 어린아이들이나 오존층의 구멍이 마치 바다에 있는 미세한 물방울처럼 보이는 것이다.
공학적인 동의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대체로 이와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 우선 기술이 닫힌 문 뒤편에서 개발된다. 그러면 대중은 놀라운 진보와, 삶을 향상시키는 만병통치약에 대한 숨가쁜 발표에 승복한다. 이것이 끝나야 비로소 통제를 위한 제도가 만들어지고 이미 만들어진 상품에 맞게 적응된다. 기술발전을 위한 투자가 일단 이루어지면 잠재적으로 위험한 사회적·환경적 피해가 밝혀지더라도 기술을 다시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나노기술은 두 번째 단계에 와 있다. 프랑스의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L”oreal)의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나노좀(nanosome)’은 젊은 피부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나노입자가 혈관이나 심장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얘기는 말하지 않는다.
유전자 변형(GM) 농산물은 이러한 3단계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1990년대 동안 제초제와 벌레에 저항력이 있는 다양한 종류의 GM 농산물을 만들기 위한 대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GM 농산물이 농민이나 토양에 이익이 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이 이루어지기 전에 벌어졌다. 1990년대 중반까지 소비자들이 쉽게 받아들이게 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보통 토마토 보다 더 싼 GM 토마토로 만든 퓨레(puree)를 통해 이루어 졌다. 이런 계획은 유전자 변형 작물들이 우리들의 일상적인 식단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를 익숙하게 만들려는 시도였다. 마지막으로 GM을 만든 회사는 다국적 기업들이 이익을 챙기면서 대부분의 위험을 농민과 소비자가 떠안는, “우호적인 제도”를 만들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이 때 사람들은 GM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램프의 요정 지니는 이미 병 밖으로 나온 것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대중이 원하는 기술의 발전방향에 대한 진지한 논의 대신, 저항의 하나로 이미 씨가 뿌려진 밭의 작물을 뽑아내는 일이 일어났다. 최근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정부는 이미 GM 농산물의 상업적 재배를 지지하기로 결정했었다. 따라서 영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중적 논쟁이 단지 GM에 대한 홍보활동에 지나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미 결정된 사안에 대한 고무도장 찍기로 시민 참여를 이용하는 이러한 예와는 반대로 영국과 인도의 최근 많은 사업들은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접근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은, 새로운 기술의 연구개발과정에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서로에게 수용될 수 있는 목적을 결정하기 위해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시민 포사이트 Citizen Foresight
공개적인 브레인스토밍이 끝난 다음, 시민 포사이트에서는 영국의 대중에게 미래의 식품과 농업에 대한 선택사항들을 제시하도록 요구하였다. 12명의 패널은 GM 농산물과 같은 특정 기술에 국한되지 않고 토론 내용을 정하였다. 그들은 서로 다른 선택지들 중 어떤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 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정했으며 자신들이 예상하지 못한 쟁점에 대해서 외부의 증인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결론은 만장일치로 얻어졌는 데, 이 중에는, 저렴하면서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자연 식품을 장려하기 위하여 영국의 농업시스템을 완전히 개혁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 여기에서 GM 식품은 불필요하며 공중보건에 대한 위험을 감수할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GM을 거부한 인도
이와 비슷하게 인도에서도 시나리오 워크숍 모델을 활용해서 위태로운 처지에 있는(marginal) 안드라 프라데시(Andhra Pradesh)의 농민 배심원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공간의 농업과 식품의 미래에 대한 서로 다른 세 걔의 “비전”을 선택하도록 하는 ‘프라자티르푸(Prajateerpu)’ 과정이 있었다. 이러한 “비전”들은 각각을 옹호하는 “증인들”로부터의 발언이 있은 후에 짧은 다큐멘터리 식의 비디오로 구성되어 제시되었다. 이런 정보들은 주최측이 전체적인 틀을 구성한 것이었지만, 배심원들은 심도있는 숙의 과정을 통해 독립적인 의견을 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토지를 거의 소유하지 못한 농민들은 대부 제도와 그에 따른 강압, 비료에 의존하는 농업과 이로 인해 자신들이 짊어지게 된 빚 등을 모두 비판할 수 있었다. 다국적 기업에 의해 통제되는 농업보다 자기-의존적인(self-reliant) 농업 시스템을 선호하는 이들이 GM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신에 대한 규제
왓슨(Jim Watson)은 50년 전에 DNA의 구조를 ‘발견한’ 것으로 명성이 높은 과학자 중의 한 명이다. 과학자들이 사회적, 윤리적 함의가 매우 큰 계획을 규제하는 가장 적합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최근 ‘과학자들이 신의 역할을 하려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는가?’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지난 3월 왕립학회가 주최한 시민 과학정상회담(Royal Society”s People”s Science Summit)에서 왕립학회 과학과 사회 위원회 위원장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폴 너어스(Paul Nurse) 경은, 유전공학 기술은 민주적 구제의 대상이라고 제안했다. 너어스는 DNA 출생증명서처럼 우려스러운 기술발전을 막는 데에 비전문가의 의견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였다.
의제결정 과정에 과학자들 보다 일반 대중이 참여하였을 때 더욱 극적인 교훈들이 얻어진다. 현존하는 기술이 사회적 정의에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가라는 문제에 있어서, 민주적 숙의 과정은 급작스런 기술적 ‘해결책’에 대한 관심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독립기구인 유전학의 미래 배심원단(Genetic Future Jury, GFJ)이 지적했듯이, 일반 대중들이 ‘반-과학적’이지는 않으며 새로운 기술이란 단지 흥미 있는 것이고 현재의 기술로도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로부터 관심과 자원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GFJ는 과학에 대한 시민의 참여를 증진하기 위하여 (과학자들인) 만든 조직이다. GFJ는 자연과 사회의 유전화(geneticisation)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논의하였다. 완전히 비전문가였던 구성원들은 판단을 내리게 될 즈음에는 유전학의 미래를 분석하는데 있어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비록 과학자들이 갖고 있는 것같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국회의원들이 하는 식으로 여러 지식들을 종합할 수는 있었다. 우리가 새로운 나노기술 시대에 필요로 하는 것은 이러한 민주적 발의를 가속화하는 것이며 이런 과정에 과학자들과 결정권자의 활발한 참여가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은 지역적으로 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도 이루어 져야 한다.
그러한 접근 방법이 받아들여지게 되면, 50년 후의 과학자들은 오늘날 왓슨이 ‘신의 역할하기(playing-God)’이라고 말한 것을 마치 일전에 마가렛 대처의 ‘사회 같은 것은 없다(No-such-thing-as society)’는 발언을 오늘날 평가하는 것처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과학을 참된 민주적 통제에 놓이게 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존재할 때에야 미래에 나노기술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노기술에 대한 통제
공개 토론이 가장 중요하며,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다.
1. 일시적 정지(모라토리움)
ETC의 집행위원장인 패트 무니(Pat Mooney)에 의하면 ‘나노기술 물질을 다루는데 있어 어떤 종류의 실험실 규약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연구의 완전한 일시적 중지를 요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이다.’
2. 전 지구적 나노기술 안전성 의정서
잠재적인 유해 물질의 통제에 대한 기존의 협약에 의거하여 사전예방 원칙에 기반을 둔 나노기술 안전 규약이 만들어 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나노 입자, 나노 물질, 나노 기기, 나노 생명공학의 취급, 이동, 사용, 개발이 통제되어야 한다.
3. 새로운 기술의 평가에 대한 국제적 협약
새로운 기술이 민주주의, 생활, 문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국제연합이 새로운 기술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4. 나노물질 사용 표시제
나노입자 물질의 사용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다면 사용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GMO에 대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나노입자의 생산자들은 제조물의 리콜에 대비하여 나노입자의 사용을 확인하고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5. 제조물 책임
상업적으로 팔려나간 나노입자가 건강, 환경, 전통적 생활방식, 문화에 유해하다고 밝혀지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직접적인 통제 시스템이 지금 당장 만들어져야 한다.
6. 물질 특허의 금지
나노물질에 대한 특허를 인정하는 것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이 법적인 독점적 통제 하에 놓이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나노 물질에 대한 특허를 무효화시킬 수 있는 규칙이 필요하다.
7. 무기 통제
독일 도르트문트 대학의 위르겐 알트만(Jurgen Altmann)과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마크 구브루드(Mark Gubrud)는 생화학 무기와 재래식 무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나노기술 무기에 대해 적용해야 함을 제안하였다.
8. 생산의 청정성 기준
나노기술는 청정생산체계 내에서 개발되는가? 유기체 기준(organic standard)에 따라 유전적 조작이 금지되는 것처럼 원자수준의 조작도 금지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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