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3년 04월 2013-04-05   3354

[살림] 고시원 체류기

고시원 체류기

–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고시원의 사치를 누리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기획팀장

 

 

일러스트 조경원

 

고시원 입성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돈 계산에 들어갔다. 지갑에 있는 현금 액수와 통장에 남아있는 아슬아슬한 잔고, 그리고 앞으로 들어올 예상 수익(지금 쓰고 있는 글의 원고료도 포함되어 있다. 흡……)을 계산해본 뒤 앞으로 필요한 생활비 지출과 대조해보는 작업이다. 얼추 숫자가 맞아떨어진다는 판단이 들자마자 짐을 싸기 시작했다.

 

베란다 한 켠에 뉘어있는 큼지막한 여행용 캐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홈쇼핑에서 할인해서 팔고 있길래 ‘나중에 해외여행 갈 때 쓰자’라는 합리화로 엄마님이 질러버린 녀석이지만, 애석하게도 2년째 먼지만 쓰고 있다. 대충 욱여넣으니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들이 들어간다. 

 

낑낑거리면서 얼마 전에 눈여겨 봐둔 고시원에 당당히 입성한다. 25만 원의 한 달 임대료는 선불로 냈다. 동네가 구석탱이에 박혀 있고, 좀 낡은 고시원이라서 무진장 저렴한 축에 속한다. 나의 뜬금없는 고시원 표류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고시원

 

대학생들의 주거권을 실현하기 위한 ‘훌륭한’ 단체인 대학생주거권네트워크에서 올해 초 재미있는 실태 조사를 진행하였다. 대학생들의 자취방과 서울시 평균적인 아파트의 평당 임대료를 비교해 본 것이다. 이 조사에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은 타워팰리스와 고시원의 평당 임대료를 비교한 자료이다.

 

부동산 자료를 뒤지다보면 타워팰리스를 월세로 내놓은 럭셔리한 매물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보증금 3천만 원에 월세 300만 원, 이런 식이다. 이를 토대로 계산해보니 타워팰리스의 평당 임대료는 11만 8천 원 수준이다. 고시원은 어떨까? 서울시내 7개 구 고시원의 평균 월세는 38만 9천 원이며, 이를 면적으로 나눠서 환산하면 평당 13만 6천 원에 달한다. 이런 젠장. 1.5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웅크려 잠드는 비루한 인생들이 알고 보면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는 대한민국 최상류층이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이런 재벌 가문의 고시원 자취생들을 대상으로 경제민주화 투쟁을 해야겠다.

 

 

창문 있는 방은 VIP룸

 

대한민국에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듯, 자취생들에게도 귀천이 있다. 원룸을 혼자서 차지하고 있는 자취생은 가히 귀족에 해당한다. 공공 기숙사 또한 쾌적한 입지와 저렴한 임대료로 후한 등급을 인정한다. 민간 기업이 건설하는 민자 기숙사는 그 임대료가 원룸과 맞먹어서 등급이 좀 낮다. 그 뒤에 반지하, 옥탑방, 하숙집 등등이 따라붙다가 고시원은 제일 미천한 신분으로 떨어진다. 천민들이 고시원을 찾는 이유는 보증금이 없기 때문이다. 500만 원 남짓의 보증금을 마련할 길이 없는 천민들은 내몰리고 내몰리다가 고시원에 웅크린다. 이렇게 1.5평 남짓의 고시원에 기거하는 천민들은 서울에서만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똑같은 고시원이라도 방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다름 아닌 창문이다. 고시원의 특성상 벽에 붙어있는 방에만 바깥쪽으로 창문이 달리게 되는데, 이런 방은 보통 월 임대료가 2~5만 원 정도 비싸다. 창문의 유무에 따라 발생하는 천민들의 빈부격차는 생각보다 치명적이다. 그다음으로 눈여겨 봐야 하는 입지는 출입구, 화장실과의 거리이다. 가까울수록 좋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수십 명의 인원이 공동으로 이용하다 보니 바로 옆방이면 새벽에 물 내려가는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한다. 무조건 멀수록 좋다. 개인적으로는 운이 좋게 이 모든 조건을 갖춘 VIP룸에 입성할 수 있었다. 창문 없는 화장실 옆방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고충은 굳이 상상하고 싶지 않다. 환기도 제대로 안 되는 1.5평의 방에서 살다보면 정상적인 인류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시원의 장점은 방이 좁다보니 청소를 금방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방이 좁다보니 다시 5분 만에 더러워진다는 것이다. 고시원의 장점은 밥과 김치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점이다. 단점은 이것들을 가지러 공동 취사장으로 나가기가 너무 귀찮다는 것이다. 그래도 고시원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다보면 나름대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된다. 식대를 아끼기 위해 반찬과 재료를 사다가 밥을 해먹기도 하고, 빨래와 청소도 부지런히 하게 된다. 알량한 공간에서 나름대로 독립적인 살림을 꾸리게 되는 것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왕성한 힘을 가진 청년들이 부모의 지원을 벗어나 독립적인 살림을 꾸리는 일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인 청년층에게 허락된 독립의 공간이 1.5평에 불과하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진보를 위해서든, 정의를 위해서든, 상식을 위해서든, 저출산 대책을 위해서든,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에게는 이보다 높은 수준의 주거 환경이 필요하다. 이를 고민하는 삶의 자세에서 우리들의 새로운 운동과 정치가 승리할 것이라 생각한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기획팀장과 백수를 겸임하고 있다. 쉽게 용인되지 않는 문장을 구사해서 자주 욕을 먹지만, 별로 개의치 않아 한다.

 

 

김민수 필자의 [살림] 마지막 기고입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