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3년 04월 2013-04-05   2402

[읽자] 핵으로 다가온 상상할 수 없는 미래

핵으로 다가온 

상상할 수 없는 미래

 

 

박태근 알라딘 인문MD가 권하는 4월의 책

 

 

핵을 체감할 수 있을까? 끔찍한 원전사고를 두고 이런 상상을 하는 게 온당치 않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자. 세계 3대 원자력발전 사고로 꼽히는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1979년 3월 28일),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년 4월26일), 후쿠시마 원전사고(2011년 3월 11일). 솔직히 말해 80년대에 태어난 내 연배의 친구들은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는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이고, 체르노빌 원전 사고 역시 그다지 실감나는 사건은 아니다. 게다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한국의 원전 개발에 (아직까지)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 듯하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람이 떠난 그곳은 어떻게 살아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일이 일어날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어느새 우리는 한 걸음씩 그 미래로 다가서고 있는 게 아닐까.

 

 

체르노빌에서 만난 예상 밖의 풍경

 

체르노빌의 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금지 구역은 여전히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여러 차례 검문과 검색을 거친 후 안전장치를 갖춰야만 살짝이라도 그곳을 엿볼 수 있다. 만약 당신에게 그곳에 가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할 텐가. 사진이든 그림이든 그곳을 기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담아오고 싶은가. 프랑스 만화가 엠마뉘엘 르파주가 그린 『체르노빌의 봄』은 잿빛 반 푸름 반이다. 손에는 장갑을 끼고 입과 코는 마스크로 막는다. 방사능 수치가 높은 바닥에 닿지 않으려 접이식 의자 위에 앉아 스케치를 하고 색을 입힌다.

 

그런데 웬일일까. 끔찍한 재앙을 그리려고 온 그의 눈앞에는 생기 넘치는 사람들의 얼굴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전해진다. 이곳에서 죽음을 증거하는 건 삑삑 소리를 내는 방사능 측정기뿐이다. 금지구역 주변에 터를 잡고 여전히 각자의 삶을 이끌어가는 주민들의 신산함 때문일까, 아니면 사람이 떠난 이곳의 고요와 침묵이 빚어낸 자연의 비현실적인 빛깔 때문일까. 어쩌면 여전히 정답을 정해놓고 그것을 찾으려 하는 인간의 무지에 대한 그곳의 대답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이란 제목을 보고 ‘아차’ 싶었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는 그곳에 동물이 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진과 쓰나미 피해 영상에서 떠내려가는 동물을 숱하게 보았지만, 사람이 모두 떠난 그곳에 여전히 그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진작가 오오타 야스스케는 동물보호활동가에게 그곳의 상황을 전해들은 후, 사료와 물을 싣고 곧장 후쿠시마로 달려갔다. 수십 차례 그곳에 오가며 개, 고양이, 닭을 구했고, 때로는 피난 간 주인과 남겨진 반려동물 사이의 소식통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곳에서 만난 동물의 모습은 처참하고 쓸쓸하다. 주인이 떠난 집을 홀로 지키는 개, 배가 고파 먹이에 다가서고 싶지만 사람을 피하고파 갈팡질팡하는 고양이. 그래도 움직임이 자유로운 개와 고양이는 나은 편이라고 해야 할까. 금세 돌아올 생각으로 우리에 가둬둔 가축은 태반이 목숨을 잃었고, 그나마 숨이 붙어있는 경우에도 싸늘하게 식어버린 친구들 곁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목숨을 잃은 동물이 이미 수백만에 이른다. 사람의 필요에 의해,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왔으니, 이렇게 버려져도 괜찮은 걸까. 그럼에도 그들은 그곳을 지키고 살아남아 있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기다리는 그날이기에, 희망하고 노력해야만 한다.

 

 

핵, 그 이후의 이야기

 

핵충이 나타났다!

 

전면 핵전쟁이 발발한 후, 완전히 소멸한 호모 사피엔스를 대신해 ‘핵충’이란 신인류가 탄생했다. 이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이들은 인간이 탄수화물에서 열량을 섭취하듯 중금속을 씹어 삼킨 후 핵분열시켜 열량을 섭취한다. 인류의 핵 개발사는 이들에게 영광의 역사이고, 반전반핵 운동은 변절자의 역사로 기억된다. 이들의 역사는 B.C.나 A.D.가 아닌 A.F.After Fire로 기록된다. 신기활 작가가 1989년에 그린 『핵충이 나타났다!』는 A.F.100년 즈음의 여러 상황을 옴니버스 구성으로 보여준다. 이 정도 설명을 듣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손사래를 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예상처럼 핵충의 시대가 ‘아직’ 오지 않았고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왠지 익숙한 핑계 아닌가?

 

원전의 위험을 가리고 사고를 숨기는 이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한편 이 풍자만화는 핵의 디스토피아뿐 아니라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인류의 탐욕도 함께 그려낸다. 줄어드는 핵 먹을거리를 두고 벌이는 다툼과 빈익빈부익부의 현실, 권력자의 속임수와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핵충들을 보면, 그와 비슷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핵충의 현실을 만들어낸 가까운 미래의 우리가 한데 겹쳐 보인다. 어쩌면 핵충들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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