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여자의 산골 표류기
행복편
글 도시여자
한번은 말이야. 서울로 가는 전철을 타려고 춘천역에 갔어. 서울에서 온 어떤 남자가 춘천역에 내리면서 옆 친구에게 말하는 거야. “야~ 좋구나. 사람은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말이지.” 순간 난 내가 ‘이곳에 살아서 좋은가?’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어. 사실 이런 질문 종종 받거든. “행복해?”, “도시 떠나니 좋니?” 내 대답은 말이야, 글쎄…….
퍼즐의 맛
얼마 전이야. 농번기가 시작되어 남자는 정신없이 바빠. 해가 뜨는 동시에 밭으로 나가고, 해가 져 어둠이 깔려야 내 눈앞에 나타나. 혹시 흡혈귀가 아닐까? 해가 떠 있는 동안 관에 들어가 몸을 피하고 오는 괴물 말이야. 눈은 벌겋고 온몸은 땀범벅이지. 씻고 밥 먹고. 그다음에 퍼즐을 시작해. 자다 깨보면 새벽 2시까지 할 때도 있는 거야. 난 걱정을 넘어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지. 제발 좀 자란 말이야. 그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이 거친 산골에서 여리고 예쁜 나를 혼자 살게 할 셈이야? 어?
나흘째 되는 날 자정. 난 거실로 나갔어. “안 자?” “응. 금방 잘 거야.” “언제?” “이거 하나만 더 맞추고.” 참 내……. 난 데리고 들어가려고 작정하고 계속 잔소리를 하며 기다리기로 했어. 그러면서 나도 퍼즐 몇 개를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기를 시작했는데, 이럴 수가. 어쩌다 하나가 맞춰졌는데, 그 짜릿함이 너무 기분 좋은 거야. 퍼즐이란 게 참 묘한 것 같아. 맞을 것 같은데 안 맞고, 안 맞을 것 같은데 맞고. 혹ㅋ시나 해서 대입했을 때, 쩍 하고 맞춰지며 전체 그림을 하나하나 완성해가는 그 맛이란. 이 재밌는 것을 그동안 혼자서만 했단 말이지? 흥!
남자는 전체 그림을 보아가며 퍼즐 조각을 맞추는데, 난 몇 개의 조각을 이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보다가 맞추는 직관력을 발휘했지. 남자가 나보고 천재래. 그 칭찬에 기분이 좋아 미친 듯이 퍼즐 속으로 빨려 들어갔어. 나 참 단순하지?
두 시간이 지나자, 남자는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가는 거야. 난 계속 같이 하자고 했어. 하지만 남자는 도저히 피곤해 더 못하겠다고 하더군. 난 배신자라 욕을 퍼부었지. 그날부터 남자와 나는 ‘우리’가 되어 500피스, 1,000피스를 넘어 4,000피스 세계지도 퍼즐까지 도전하고 있어. 4,000피스는 좀 어렵더군. 올가을까지 천천히 맞춰볼 작정이야. 다 맞추면 이 퍼즐은 어떡하지? 다시 분해하기 아까운데 말이야.
어머, 사람은 이런 데서 살아야 해!
행복이 뭘까? 거창한 행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하다는 느낌을 주는 감정을 행복감이라고 부른다면, 혹시나 말이야, 퍼즐처럼……, 저걸 언제 다 맞추나 싶지만 어쩌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조각이 ‘탁’ 맞을 때, 답답한 응어리가 ‘훅’ 하고 해소되는 그 느낌 있잖아. 바로 그 순간, 아쉽게도 그 기분은 금방 꺼지지. 하지만 노력하면 또 가질 수 있는 느낌이잖아. 그 찰나의 순간이 행복감이 아닐까. 또한 그 순간을 가지는 자신만의 방법을 두 개, 또는 세 개, 더 나아가 많이 알면 알수록 행복한 사람일 거고.
난 요즘 행복감을 주는 찰나의 순간 하나를 간곡히 바라고 있어. 바로 배달이 되는 야식이야. 하지만 내가 사는 이곳으로는 아무 음식도 배달되지 않아. 난 오늘도 마당 한구석에 있는 향긋하면서도 쌉싸래한 엄나무 순을 따서 남자가 농사 지은 참기름, 이웃 어르신이 직접 담근 된장에 조물조물 무치고, 뒷산에서 딴 두릅을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데쳐 먹었어. 몸 안의 혈액이 깨끗해지는 소리가 들려. 하지만 뇌의 한구석에서는 조미료 가득 들어간 양념치킨에 시원한 맥주를 달라고 아우성이야. 물론 양념치킨은 내가 직접 만들면 되고, 맥주는 미리 사다놓을 수 있지만,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하고 싶을 때가 있어. 배달 음식이 ‘짠~’ 하고 현관문을 들어오는 행복감을 난 언제 다시 맛볼 수 있을까? 게으르고도 게으른 난 또 꿈을 꾸지. 도시로 가고 싶어!!! 가끔 서울에 도착하면 외치지. “야~ 좋구나. 사람은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말이야.” 하고.
도시여자 춘천의 별빛산골교육센터에 산골유학 온 도시 아이들을 돌보며 지낸 지 벌써 4년. 마음만은 성격만은 원하든 원치 않든 여전히 도시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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