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3년 10월 2013-10-07   2562

[특집] 한국인, 세금을 믿고 내지 못 하는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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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국인, 세금을 믿고 내지 못 하는 사연은?

 

피할 수 없는 조세

 

인간이 살아가면서 두 가지 피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바로 ‘죽음과 세금’이다. 죽어서야 벗어나는 것이 세금이다. 하지만 죽어서는 인식을 못하기 때문이고 살아서 해결 못한 세금이 추징되므로 결국 세금이 더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세금은 생활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중앙집권적인 권력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조세체계가 상대적으로 완비되었다. 세종 때에 국력이 신장하고 노비들에게 130일의 출산 전후 휴가까지 줄 수 있었던 것은 안정된 조세체계 덕분이었다. 

 

결론적으로 조선의 부흥은 세종 시대에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조세체계가 무너지고, 중소농민이나 상업에 부과하는 각종 조세로 대체된다. 지대에 공정하게 부과되던 소득세가 양반이나 왕실에 대한 각종 감면 등으로 서민들에게 전가되고, 군역도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된다. 특산물 등에 부과하는 소비세가 증가한 셈이다.

 

재정 운용 실패한 대한제국의 멸망

 

조선이 패망하게 된 것은 상징적 의미라도 공평한 조세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종황제는 과세 대상에 빠진 토지를 파악하고 근대적 조세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양전사업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러일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러한 노력은 제대로 부각될 수 없었다. 더구나 한일강제병합 후 조선총독부가 토지조사령을 통해 역으로 활용하게 된다.

 

문제는 그나마 있던 재정의 쓰임새였다. 고종황제는 국가와 왕실을 구분하여 생각하는 정도로 나아가지 못했다. 태조 이성계가 만들어 이어온 내수사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재정을 왕실을 위해 사용하고 국가 재정이 허울만 남게 된 것이다. 거기다 일본의 강요든 꾐이든, 대규모 토건사업에 지출을 하게 된다. 빚을 져가면서, 그것도 외국자본에 맡겨가면서까지 무리하게 추진한다.

 

따라서 근대화의 재원이 낭비되고 일반 국민은 교육 등 재정의 혜택을 받지 못 하니 조세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더 나아가 체제에 대한 애착이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조선이 패망하고 9년 후 만들어진 상해 임시정부가 공화정을 천명한 것은 바로 이러한 왕실 중심의 조선 체제에 대한 환멸도 작용했다.

 

일제강점기의 수탈적인 조세체계

 

조선총독부의 통치는 재정으로만 보면 철저히 수탈적인 체제였다. 조선총독부의 재정은 일본 대장성의 통할을 받아 운영되었다. 자치적으로 운영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조세도 일반적 흐름대로 수익세에서 소비세로, 소득세로 나아갔다. 해방이 되었을 때 조선은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세원이 부족하다는 것은 경제 발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에 식민지의 통치 비용은 조선에서 나왔다. 유일하게 일본 본토에서 들어온 재정 수입인 충당금은 일본인 관리의 조선 근무 수당으로 쓰였다. 오히려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로서 지출해야 할 각종 비용이 조선의 재정으로 충당되었다. 그렇게 건설된 철도에서 조선인은 일본인에 비해 더 많은 요금을 내고 타야하는 차별까지 감수해야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담배다. 조세를 포함한 재정 수입의 적지 않은 비용이 담배 전매 사업으로 이루어졌다. 32년 간 철도에서 10억 엔의 적자를 냈으나 담배에서 6억 엔의 흑자를 내어 충당할 정도였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담배는 우리 생활에 문화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일강제병합 이후에는 세금을 걷기 위해 연초세를 제정하고 전매령을 공포해 대대적으로 단속한다. 그래서 담뱃값이 폭등했고 격렬한 저항이 일어났다. 단속원을 살해하는 일도 일어났다. 이처럼 연초세와 전매령은 3·1운동의 간접적인 원인 중 하나일 정도였다. 조선왕조 때에는 없던 담배에 대한 세금이 생기니 백성들은 당연히 분노했다.

 

그러나 일제 총독부는 조선에서 거둔 세금의 20%가 담배세였기 때문에 타협하지 않고 강력하게 시행했다. 당시 전매령 위반자가 매년 2만 명으로 전체 형사범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으니 저항과 단속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일제는 당시 일장기를 상표로 하는 아편도 전매했을 정도였으니 대중에게서 세금을 빼내는 데 물불을 가리지 않은 셈이다. 이러한 과정은 술에서 걷는 주세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걷는 과정에서 분노를 일으키고, 사용할 때에도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사용되는 세금에 대해 정서적으로 강한 저항 의식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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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수립 이후 조세는 민주화가 결정

 

해방 이후 미군정 때부터 조세체계의 새판 짜기가 시도되었다. 하지만 그나마 소득세로 방향이 잡혀지던 조세체계가 다시 지세와 대중 과세 중심으로 역행하게 된다. 미군정 성립 직후 소농과 서민에 대한 집중 과세가 이루어지고, 그나마 일본인이 남기고간 재산은 재원 부족을 이유로 정치적인 이해가 얽혀있는 세력들에 적산불하敵産拂下라는 이름으로 넘겨진다. 우리의 국공유지가 20%남짓에 불과하여 유럽의 40~50%대의 국가처럼 공공적인 토지 활용을 진행하지 못하는 것도 이때 소중한 자산들을 팔아버린 결과이다.

 

초기부터 경제발전이라는 이유로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대한 특혜가 있었고, 전시 체제에서는 심한 경우에는 현물미라는 쌀을 직접 내도록하는 제도까지 시행했다. 휴전 후에는 소비세를 집중적으로 거두었다. 물론 원조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농민 이외의 직접세가 매우 적어 도시의 고소득자들은 계속해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국세청을 신설하는 등 조세공평성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있었으나 1977년 부가세를 도입하는 것으로 소비세제가 완성되고, 소득세에서는 종합소득세보다는 근로소득세에 집중하면서 의미를 상실한다. 더구나 대기업에 대한 각종 세제 특혜가 본격화된다. 

 

이런 추세가 바뀐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이다. 경제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법인세와 근로소득세가 급증한 것이다. 또한 토지공개념의 도입에 따라 그전까지 손대지 못했던 토지 관련 자산에 대한 과세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1997년 외환위기로 다시 역풍이 불고, 각종 세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무산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더구나 이러한 시기에 크게 이익을 본 지도자들의 탈세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 채 이러한 탈세 등에 관대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법제도적 통제가 어렵게 되었다.

 

공평 과세와 재정지출이 과제

 

우리 국민들은 조세에 대해 근본적으로 불신하고 있다. 이는 물론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의 제도적 불합리와 지배 세력의 탈세 불감증 등으로 인해 생긴 불신은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더구나 그렇게 거둔 돈을 제대로 쓰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는 불신이 더욱 문제를 심화시킨다.

최근 증세 여론이 높아지는 것은 복지가 조금이나마 확대되면서 세금의 효용에 대해 체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세와 복지 지출 확대는 동전의 양면이며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과제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경실련과 함께하는시민행동에서 밑빠진독상 등으로 예산감시운동을 진행했다. 공공예산을 분석하는 나라살림연구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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