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선거, 불편한 진실을 말하다
선거의 핵심 주체인
‘유권자’는 어디에?
이선미 의정감시센터 간사
시끌시끌한 게 맞다.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선거를 앞두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식사자리와 술자리에서, 신문 지면과 택시 안에서, 선거 후보자와 정책을 놓고 열띤 토론이 이뤄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모든 과정의 핵심 주체는 시민이고 유권자여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무엇이 유권자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있나
# 철도노동조합원들에게 집행부의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교육하는 선전업무를 담당하는 A씨는 “12.19 닥치고 투표, 기권하면 민영화 한다. 꼭 해~”라는 제목으로 철도민영화 추진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제작해 조합원들에게 배부했다.
# 회사원 B씨는 유동 인구가 많은 시내에서 “삽질지옥, 투표천국, 4대강 죽음의 삽질을 중단하고 회개하라. 심판의 날이 가까이 왔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을 요구하는 C씨는 지방선거 후보자들과 정책협약식을 통해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채택해 줄 것을 요구하고 기자회견 및 대국민 지지서명을 받았다.
철도민영화, 4대강 사업, 무상급식은 지금까지도 격론이 이어지는 정책이다. 주요 정책은 선거에서 쟁점으로 부각되고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찬반 의견,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지지와 반대 표명은 정치적 말할 자유와 직결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위의 사례들은 각각 벌금 150만원(1심), 벌금 50만원 선고유예, 벌금 200만원(3심) 선고 받은 ‘위법한’ 행위다. 위에 열거한 사례들에 적용된 법조항은 각기 다르지만 핵심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에 해당하여 위법하다는 것이다.
정책선거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책에 대한 활발한 정보 교환과 상호 토론이 있어야 한다. 정책선거 활성화를 위한 우선 방안은 위의 사례처럼 유인물, 설치물, 서명 운동과 같이 정책 캠페인의 주요 수단을 금지하는 독소조항을 폐지해 유권자들의 자유로운 정책 토론을 보장하는 것이다. 만약 어느 유권자가 특정 정책에 찬성하여 많은 후보자들이 이 정책을 공약화하고 추진하길 바란다면, 그는 해당 정책의 좋은 점을 널리 알리고 이에 반대하는 후보자에게는 표를 주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다른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고자 할 것이다. 정치적 기본권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해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2011년 12월, 선거법 93조1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 결정과 이후 법 개정으로 선거 당일을 제외한 온라인 선거운동이 상시 허용되었다. 선거 시기 표현의 자유가 한 단계 진전한 것은 분명하다. 오프라인에서의 정치적 표현은 제한적이지만 온라인이라도 허용되었으니 유권자들은 ‘절반의 자유’에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그 절반이나마 제대로 보장받고 있는 걸까? 지난 대선 시기 A후보와 관련하여 ‘빨갱이’ 등의 비방 글을 인터넷에 올린 유권자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무죄, 다른 한 명은 벌금 250만원을 선고받았다. 적용된 법 조항은 공직 선거법 제 251조에서 정한 후보자 비방죄다. 후보자 비방죄는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당선이나 낙선시킬 목적으로 후보자를 비방하는 경우에는 처벌한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표현이 사실인지 단순한 의견 표명인지 불분명하고, 비방인지 비판인지 판단 기준이 모호해 자의적으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는 것도 큰 문제다.
유권자에게 투표권을 허許하라
오프라인과 온라인 곳곳에서 선거 과정의 핵심 주체인 유권자들의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선거 당일 투표는 충분히, 편히 할 수 있을까? 어느 여당 의원은 한국의 투표 환경이 OECD 국가 중에서도 최상이라고 말하지만, 투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유권자는 다양한 업종과 현장에 존재한다. 2012년 10월부터 참여연대,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 아이쿱iCOOP소비자활동연합회 등 전국 200여개 노동·시민단체가 구성한 <투표권 보장 공동행동>에 접수된 투표권 침해 사례는 지금의 투표 환경이 얼마나 많은 유권자들을 배제하고 있는지 증명했다. 참정권의 가장 기본인 ‘투표할 권리’로부터 배제된 유권자는 백화점, 마트, 콜센터, 학원, 병원, 공영주차장, 인쇄소, 건설 현장 등 곳곳에 있었다. 투표할 수 없는 환경도 갖가지다. 선거 당일 늦은 저녁까지 정상 근무는 물론이고, 선거 당일 출장이나 선거일을 포함해 1박 2일 워크숍 등 행사를 계획한 사례도 나타났다.
# 선거 당일 출근 시간은 동일하지만 퇴근 시간은 1시간 앞당겨 5시 퇴근으로 공지됐어요. 그런데 5시 퇴근하고 6시까지 집 근처 투표소까지 가서 투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직원의 투표권 보장을 막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요.
# 선거일에 정상 근무하고 대체 휴무를 한다고 합니다. 투표일에 투표를 못 하는데 대체 휴무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 각자 알아서 투표하라고 합니다. 적극적으로 투표할 시간을 보장해주지도 않고 출퇴근 시간 조정은 없습니다. 요구하는 것도 눈치 보여요.
헌법과 선거법은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도 근로자가 선거권에 필요한 시간을 청구할 경우 사업주는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위반할 시에는 처벌 조항까지 두고 있다.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공민권 행사 규정이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갑을 관계에 놓여 있는 노동자가 이를 근거로 투표할 시간을 요구하기도 매우 어렵다.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이지만 누군가는 투표할 권리를 얻기 위해 ‘해고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조금이나마 다행인 것은 사전투표제도의 도입이다. 사전투표제도는 선거 5일 전, 이틀 간 별도의 부재자 신고 없이 전국 어디에서나 투표할 수 있는 제도로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전국 단위의 선거로는 처음으로 시행된다. 투표의 편의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환영할 일이다. 그럼에도 투표시간 연장이나 선거일 유급 휴일 지정, 사업주의 노동자 투표시간 보장 의무를 강화하는 방안 등은 아직도 유효하다. 후보 결정이 선거에 임박해 이루어지고 선거운동기간도 길지 않은 선거 현실에서 막 도착한 선거 공보물만으로 선거 5일 전에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한 투표 환경이 아니다. 사전투표제도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제도지만, 부재자투표를 보완하는 보조적 수단일 뿐이지 위험할 정도로 낮은 투표율을 제고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다. 투표할 권리는 참정권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최대한 두텁게 보장하는 것이 옳다.
모든 선거 과정의 핵심 주체는 유권자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현행 제도는 지나치게 후보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유권자는 배제되고 누락된다. 유권자의 자발적인 정책 캠페인과 투표 독려 캠페인 보장, 표현의 자유 확대, 실질적인 투표권 보장 등은 유권자 중심의 선거 문화로 변모하는 길이다. 과열되지 않고 조용한 선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선미
2011년부터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를 지키고 있다. 월간 『참여사회』에 여섯 번째 글을 기고 하게 된 (준)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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