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이용마 MBC 해직기자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면 누가 제정신일 수 있겠소. 너무 똑바른 정신을 가진 것이 미친 짓이오.”
– 돈키호테 중에서
선거 전후 달라진 정부와 여당의 태도
학생들이 200명이 넘게 탄 배가 침몰했다. 그런데 누구 한 사람 배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구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온 국민이 그저 눈을 뜬 채 지켜본 것이다. 어떻게 된 걸까? 세월호 유족들의 요구는 간단명료하다. 왜 배가 침몰했고, 왜 제대로 구조가 안 되었는지, 정부의 대응은 적절했는지, 분명히 밝히자는 것이다. 그래야 또 다시 발생할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6.4 지방선거 이전에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눈물을 흘리며 세월호 참사 전후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고 국가개조론까지 들고 나왔다. 국가개조를 주장하는 마당에 유족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데 선거 판세가 여당이 우세하다고 판단될 즈음부터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족들을 만나는 것조차 피하기 시작했다. 생명을 건 단식투쟁에 대해서도 철저히 외면했다. 유족들의 생명보다 자신의 치부를 감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으리라.
여당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교통사고 피해자들에게 과도한 보상은 안 된다는 논리로 세월호 참사를 폄하하기 시작했다. 유족들의 단식은 단순한 ‘쇼’로 매도하고, 외부 반체제세력이 유족들에게 개입했다는 색깔론까지 등장했다.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유족들을 향해 위로는커녕 돌멩이를 던지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행태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동조하는 우리 사회의 소위 ‘주류’가 있다.

까다로운 대한민국 ‘인간의 조건’
보수 언론까지 찬양을 마다하지 않는 교황은 짧은 방한기간 동안 세월호 유족들을 수차례 만났다. 미사와 시복식 등 거의 모든 행사장에서 유족들을 만나 이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했다. 정치적 편향성 시비를 막기 위해 가슴의 노란 리본을 떼라는 말에는 “인간적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응수했다.
교황 주재의 명동성당 미사에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과 밀양 송전탑 건설지 주민들, 용산참사 피해자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위안부 할머니들이 초대를 받았다. 우리 사회의 개발 과정에서 인간적 고통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소외당하고 있는 분들이다. 교황은 이들 모두에게 인간의 존엄을 찾아주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인간의 조건은 아직도 까다롭기만 하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 개발주의가 아직도 우리 사회를 횡행하고 있다. 정부도, 기업도, 심지어 학교조차도 오로지 개발과 성장, 자본의 논리만을 내세우고 있다. 인간의 생명과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은 몇 푼의 이윤 앞에 쉽게 무릎을 꿇는다.
세월호 참사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세월호 이전에 삼풍백화점 붕괴를 비롯한 수많은 부실건축, 쌍용차와 한진중공업 등 수많은 정리해고, 용산참사와 밀양 송전탑 건설 등이 모두 몇 푼의 이윤을 좇는 탐욕으로 인해 발생한 참사들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조건은 존재하지 않았다. 참사 직후 잠깐 떠올렸을지라도 곧바로 엄중한 자본의 논리, 탐욕에 묻혀버렸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이 앞장서서 똑같은 상황을 재촉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경제가 침체되었으니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얄팍한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는 세월호 참사를 잊고,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도 관심을 끄고, 적당한 선에서 그만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있다. 마치 악마의 화신인 유병언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식이다.
교황은 취임 이후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일 뿐이고, 경제적 불평등 해소가 시급한 과제임을 역설해왔다. 교회 역시 가진 자들의 품에서 낮은 곳을 향해야 한다며 몸소 실천하고 있다. 자본의 논리만 판치는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이용마
정치학 박사.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관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부지런함의 공존 불가를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게으름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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