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호모아줌마데스
사진 오유진

20대 청년을 만나 물었다. 세월이 흘러 마흔 살쯤 되었을 때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소설가로 등단을 했으면 좋겠고, 옆에 여자가 한 명 있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개인적으로 가장 고민이 되는 건?
“여자 친구 만들기죠. 결혼도 살짝 고민이 되긴 해요. 지금은 흥청망청 쓰고 있거든요. 나중에 좋아하는 여자가 결혼하자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
아, 그럼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연애와 미래에 닥칠 지도 모르는 결혼 문제인 거죠? 하고 되물으니 이 청년 퍼뜩 정신을 차리고 모범답안을 들이민다.
“아니, 기사에 대한 고민도 있어요.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기사에 대해 고민하죠.”
크흐흐흐. 오늘 인터뷰 기대된다.
초보기자의 우당탕탕 적응기
대부분의 시간을 기사에 대한 고민으로 채운다는 이 20대 청년의 현업은? 정답, 기자.
“원래 기자가 꿈은 아니었어요. 대학원에 가고 싶었는데 입시 전형이 바뀌는 바람에 그만 두게 됐죠. 부모님은 공무원시험 보라고 하셨는데 전 하기 싫더라구요. 계속 백수로 지내자니 눈치가 보여 여기저기 인턴 프로그램에 지원을 했어요. 참여연대 인턴도 했고, 한겨레21에서도 2달 정도 인턴기자로 있었고.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친구들 하고 어울리다 보니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서 몇 군데 원서를 넣었죠. 그렇게 기자가 되었어요.”
목을 맨 것도, 엄청난 준비를 했던 것도 아닌데 어찌하다 보니 기자가 돼 있었다, 라는 건데…. 잠시 눈치를 보다 묻는다. 근데, 어쨌든, 기자로서의 사명감 이런 것도 있죠?
“아, 그런 답이 나와야 하는 거구나. 하하하”
입사한 지 5개월밖에 안 된 병아리기자이지만 감각은 무디지 않다.
“전 운이 좋은 편이죠. 제가 일하는 ‘미디어오늘’은 스펙전쟁에서 살짝 빗겨나 있는 곳이거든요. 근데 솔직히 기자가 되고 나서도 고민이 많았어요. 일과 삶이 분리도 안 되고 주말에도 아이템 고민해야 하고 틈날 때마다 신문 봐야하고.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더라구요.”
그래도 기자로서 보람을 느낄 때가 있을 텐데요?
“솔직히 이런 거 누가 볼까 싶은데 기사 써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요. 내가 뭐라고 저한테 막 ‘기자님’ 이러면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할 땐 고마움을 넘어 부담스럽기까지 하죠.”
초보기자생활 5개월 차.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 그에게 최근엔 충격적인 사건마저 터졌다.
“지난주에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연락이 왔어요. 기자들이 소송당하는 게 흔한 일이긴 한데 막상 저한테 손해배상이니 소송이니 이런 일이 닥치니까 생각보다 충격이 커요.”
문제가 된 기사는 그가 에이즈인권단체 활동가들과 진행한 인터뷰였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에이즈전문요양병원으로 지정된 곳에서 일어난 인권침해문제와 그 후폭풍으로 치료받을 곳이 없어진 에이즈환자들의 현실을 썼던 것뿐인데, 문제의 그 병원이 그에게 소송을 걸었다. 기자라서 겪어야 하는 일은 또 있다. ‘기레기(기자+쓰레기)’라고 욕먹는 일도 그 중 하나다.
“어찌 보면 기자는 기레기 같은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의 희생양이죠. 열심히 취재해서 기업의 문제를 고발하는 기사를 써와도 언론사에서는 기사를 수정하거나 내려주는 조건으로 기사를 기업체의 광고와 바꿔먹어요. 기자들에게 광고영업의 압박이 가해지는 곳도 많고, 광고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건 보수언론이나 진보언론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럴수록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초심일 것이다. 나는 왜 기자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만이 흔들리는 중심을 잡아주는 무게추가 될 터이니.
“기자란,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을 향해 말하는 사람들은 많죠. 그런데 들어주는 사람은 없어요. 기자는 자기 말을 하기보다는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고 그걸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들어주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듣는 사람이 없는 약자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죠. 그래서 때로는 기사거리가 되지 않더라도 하소연이나마 들어주려고 노력해요.”
참아야만 하는 존재의 가벼움
대학원엔 왜 가려고 했어요? 하고 싶은 공부가 있었나요?
“일종의 도피용이죠. 돈 벌기는 싫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대부분의 대학원생들도 비슷할 거라 생각해요. 피하고 싶은 게 무엇이든 말이죠.”
꾸밈없이 솔직한 대답에서 왜 나는 세상에 대한 공격성이 느껴졌을까? 그가 20대라서? 비상식적으로 높은 청년실업률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동료가 아니라 적으로 만나야하는 세상이어서? 복잡한 생각을 뒤로 하고 그가 썼던 기사에 대해 물었다. 제목이 도발적이다. ‘지겹지도 않나…, 우리가 미생에서 힐링을 찾는 이유’라.
“‘미생’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난 정규직이라 다행이다, 이거였어요. 요즘 비정규직투쟁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죠. 만약 장그래가 정규직이었다면 이런 전방위적인 공감대 형성은 힘들었을 거예요.”
그가 드라마 ‘미생’에 대해 쓴 기사의 핵심은 이거다. 원인진단도 해결책도 희망도 없이 현실의 냉혹함만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는 것.>
“직업이 있어 다행이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백수생활이 불안하긴 해도 시간도 많고 좋은 것 같아요.”
백수 때 뭐 했는데요?
“늦게 일어나고, 카페에 가서 책 보고, 친구들 하고 놀고, 축구하고, 먹고는 살아야하니 알바도 좀 하고 그랬죠. 들어가고 싶은 회사가 있는 친구들 보면 신기하고, 죽어라 취업 준비하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 가고, 왜 쟤들은 노예생활을 못해서 안달인 거지, 이런 생각도 들고.”
그러면서 인생의 갈림길에서 무언가 선택을 할 때 삐그덕거림이 없다면 그건 자신의 선택이 아닐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제 친구들 대부분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나온 애들이에요. 약간의 기득권을 지녔다고 할 수 있죠. 근데 가만 보면 오히려 이 친구들이 학력이 낮은 친구들보다 지금 20대가 겪는 온갖 문제들에 더 절박하게 매달려요. 그걸 보면 제도권 내에서 코스에 따라 길러진 아이들이 최고급 노예가 되는 거구나 싶어요. 근데 스펙이 어쨌든 나중엔 결국 다 버려질 건데, 그러고 나면 살기 힘든 건 다 비슷할 건데, 그럴 바에야 계속 버려지고 있는 그 시간 안에서 진짜 나를 한번 찾아보자,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포기할 수 없는 꿈
버려지는 시간 안에서 그가 찾은 진짜 ‘나’는 대체 무엇일까?
“글을 쓰고 싶어요. 소설가로 등단하고 싶은 꿈이 있는데, 준비하다가 안 되면 공무원 시험이라도 봐서 일단 생계는 해결해 놓고 어떻게든 계속 글을 써야겠다, 이렇게 생각했죠.”
페이스북의 메모칸은 그가 쓴 짧은 글들로 빼곡하다. 읽어봤다고 말하자 갑자기 그의 얼굴이 붉어진다.
“아, 되게 민망하네요. 기자가 되고 나서 옛날에 썼던 글들을 다시 보는 게 힘들어요. 너무 못 쓰기도 했고 다듬어지지 않은 것들이라.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딱히 공부를 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그저 책 보고, 내 생각들을 글로 옮겨 보는 정도인데 이런 과정들을 거쳐 언젠가 내공이 쌓인다면 소설을 써 보고 싶어요.”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데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거부감 없이 표현하고 싶어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기사든 소설이든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잖아요. 그런 거부감 없이 가난한 이들의 삶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어요.”
그가 감명 깊게 읽은 소설로 꼽은 건 카프카의 <변신>.
“가족은 따뜻함과 같은 긍정적인 단어랑 자동적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꼭 그렇진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따뜻해야 하는 거지 모든 가족이 따뜻한 것은 아닌데. 이렇게 우리가 당연하다고 교육받은 내용들을 깨주는 소설이 마음에 들어요.”
그러나 정작 그에게 힘을 주는 작가들은 김연수, 정유정 같은 이들이다. 특히 정유정은 42살에 등단한 늦깎이 작가로서 열한 번 공모전에서 낙방하고 열두 번째 시도 끝에 소설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런 그녀처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도 언젠간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끈, 지금 그가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것은 이것 하나다.
참여연대에서 인턴으로 있었을 땐 어땠나요?
“무척 재밌었어요. 간사님들이 일시키면 안 하고 도망가고, 하하하. 그땐 나름 진지하게 시민운동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죠. 그러나 활동가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며 느낀 건, 활동가를 하려면 타인의 삶에 푹 빠져들 정도의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럴 자신은 없더라구요. 거기에 비해 기자는 타인의 삶과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있는 느낌이에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40대쯤 되면 어떻게 살고 싶어요?
“소설가로 등단을 했으면 좋겠고, 결혼을 했던 안 했던 옆에 여자가 한 명 있었으면 좋겠고. 빌어먹지 않고 밥벌이 정도 하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와 비슷한 꿈을 가진 소설가가 있었다.
‘돈이 있었으면 좋겠다. 상냥한 여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담한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들만 있으면 문학도 버리겠다고 장담해본다. 쓴다는 것도 결국은 아편. 말라만 가고 헛소리를 하게 되고. 아아,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파이프를 물고 소파에 파묻혀 앉은 독자가 되고 싶다.’ – 김승옥, <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중
인간은 연애를 통해서 가장 성숙해지는 것 같다는 그에게 하루빨리 상냥한 여인이 생겼으면 좋겠다. 언젠간 그 상냥한 여인 덕에 그가 멋진 소설을 쓰게 되면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미래의 어느 날, 나는 파이프를 물고 소파에 파묻혀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가 되리라.
소설가의 일
작가 김연수를 좋아한다고 했으니 최근에 그가 낸 책 『소설가의 일』을 그도 봤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도 나처럼 이 대목에서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을까.
‘가지지 못한 것들이 우리를 밀고 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부터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많이 원하자고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도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고 마음먹었다. 어쨌든 결말은 해피엔딩 아니면 새드엔딩이다. 그게 무엇이든 엔딩이 찾아오면 이야기는 완성된다. 인생 역시 이야기라면 마찬가지리라. 이 인생은 나의 성공과 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에 얼마나 대단한 걸 원했는가, 그래서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가. 그래서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 다만 그 질문만이 중요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훗날 그가 써낼 소설 속에서 읽게 되기를, 독자로서 감히 바란다.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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