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서 마음으로
– 빈 필하모닉과 ‘봄의 소리’
이채훈 MBC 해직 PD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봄의 소리> 왈츠.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Voice Spring 1987 Karajan을 검색하세요.
요한 슈트라우스 1세 <라데츠키> 행진곡.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Wiener Neujahreskonzer 2012 Jansons를 검색하세요.
http://youtu.be/Bnoqcgi0X_8 (링크 2:26:55부터)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성큼 다가왔으니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봄의 소리> 왈츠를 들어보자. 빈 필하모닉은 해마다 1월 1일 전 세계 40여 개국에 생중계되는 신년음악회Neujahreskonzert로 유명하다. 음악뿐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발레 장면을 곁들여 색다르게 연출한 화면도 흥미롭다. 빈필 신년음악회의 명장면 중 하나는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 지휘를 맡은 1987년 연주다. 79세의 노老지휘자 카라얀과 젊은 소프라노 배틀Kathleen Battle이 완벽하게 호흡을 맞춰 이 왈츠를 독립 성악곡으로 격상시킨 명연주다.
“종달새가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고 / 부드러운 바람, 사랑스런 숨결은 들판에 입 맞추며 봄을 깨우네 / 만물은 봄과 함께 빛을 더해 가고 / 아, 모든 고난은 이제 끝났어라 / 슬픔은 사라지고 행복한 기대가 피어나네 / 아, 만물은 웃음으로 다시 깨어나네”
매혹적인 선율에 행복감을 느낀다. 카라얀이 지휘하던 손을 멈추고 음악에 몸을 맡긴 채 미소 짓는다. 늘 근엄하게 눈을 감고 지휘하기로 유명한 카라얀이 웃음을 보이다니, 희귀한 장면이다. 캐슬린 배틀 뒤에서 연주하던 바이올리니스트도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지휘자와 성악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두 함께 음악을 느끼며 행복해 한다. 청중들도 그 순간 똑같은 행복감을 맛보았으리라. 음악을 통한 마음과 마음의 소통이다.
빈필 신년음악회는 나치 선전상 괴벨스의 기획으로 시작된 어두운 역사가 있다. 1941년 클레멘스 크라우스 지휘로 처음 신년음악회가 열렸을 때 빈필 단원의 절반 이상이 나치 당원이었다는 섬뜩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빈필 악장 빌리 보스코프스키가 25회나 지휘하며 빈 시민들의 사랑을 받게 된 뒤 빈필의 과거를 아무도 문제 삼지 않게 됐다. 빈필은 음악을 통해 빈 시민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어두운 과거를 딛고 일어선 셈이다.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한 2012 빈필 신년음악회 앨범
“우리의 목표는 전 세계의 인간 공동체를 위해 음악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세계화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했지만 그럴수록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라는 이 구호는 연주할 때 우리의 기본자세입니다.”
빈필은 단원들이 지휘자를 결정하는 전통을 살려 해마다 새로운 지휘자를 초빙한다. 클라이버, 무티, 아바도, 메타 등 당대 최고의 실력 있는 지휘자들이 이 자리에 선 바 있다. 2012년 신년음악회는 연주 수준과 화면 연출이 단연 돋보였다. 라트비아 출신의 대지휘자 마리스 얀손스Mariss Jansons가 2006년에 이어 두 번째로 포디엄podium, 지휘대에 섰다. 해마다 이 음악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들어보자.
지휘대로 걸어 나오면서 드럼 연주자에게 큐를 주는 얀손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행진곡을 연주할 때는 청중들도 손뼉을 치며 함께 연주에 참여하고, 지휘자도 오케스트라와 청중을 번갈아 보며 지휘한다. 오케스트라와 청중의 벽을 아예 허물어 버리고, 음악회장을 메운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소통한다. 권력자의 부패와 거짓말, 유체이탈 화법 때문에 소통이 꽉 막힌 요즘, 이 장면이 유난히 가슴 안타깝게 다가온다.
다시 <봄의 소리>를 듣는다. 카라얀 지휘로 빈 필하모닉이 <봄의 소리>를 연주한 1987년, 한국은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으로 민심이 술렁였지만 전두환은 4월 13일 ‘호헌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묵살했다. 불통의 나날이었다. 그해 6월, 성난 파도처럼 일어난 민심은 군부독재의 항복을 받아냈고, 기어이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또다시 기나긴 불통의 세월이 이어지고 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산하山河는 봄 햇살에 미소 지으며 푸른 싹을 틔우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싸늘하게 얼어붙어 있다. 올봄, 음악은 차가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소통을 촉진할 수 있을까.
빈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봄의 소리>를 한 번 더 듣는다. 겨울이 가고 소통불능의 이 시대가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 만물이 환하게 피어나는 봄, 사람들도 다시 깨어나 광장에서 소통할 수 있으려나.
이채훈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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