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6년 03월 2016-02-29   1349

[듣자] 음악은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음악은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글. 이채훈 MBC 해직PD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등.

 

“환희여, 신성하고 아름다운 빛이여, 엘리지움의 딸이여! 우리는 불에 취하여 너의 성스런 땅을 내딛네. 너의 마술은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은 사람들을 결합시키고, 네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는 곳에서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네!” 

평화를 예찬한 실러의 <환희의 송가>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통해 불멸의 생명을 얻었다. 음악은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아니, 음악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줄 힘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음악은 이상향의 소리를 들려줄 뿐, 현실의 갈등은 인간의 지성과 노력으로 풀어야 한다. 저절로 주어지는 평화는 없기 때문이다. 음악은 평화를 향한 험난한 길에서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음악가에게서 배울 점은 없을까? 이스라엘 국적의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계 미국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1998년,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설했다. ‘서동시집’은 괴테의 시집 제목으로, 다른 문화와 사상의 만남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란의 청소년들로 구성된 이 오케스트라는 해마다 분쟁의 현장을 찾아가서 연주하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적대감을 줄여서 중동 평화에 보탬이 되려고 노력한다. 바렌보임은 이 목표가 쉽게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참여사회 2016년 3월호(통권 232호)

2005년 분쟁지역인 라말라에서 연주한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평화를 위한 프로젝트라는 말은 듣기 좋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지를 제거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하는 게 맞겠지요. 입장이 다르더라도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이해할 수는 있죠. 상대에게 동의하지 않는다고 꼭 칼을 뽑아들어야 할까요? 우리 오케스트라는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2005년 8월 21일의 역사적인 라말라 연주회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한국에도 소개됐다. 이스라엘 코앞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수도 라말라는 위험 지역이었다. 이곳에서 연주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젊은이들에겐 특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연주장 밖은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연주 시작 30분 전, 객석은 이미 꽉 찼지만 인파는 계속해서 모여들었다. 오케스트라에서는 이스라엘 젊은이와 팔레스타인 젊은이를 가리지 않고 한 마음으로 음악에 집중했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4악장 피날레가 끝났을 때 5분이 넘게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운명> 교향곡은 이 연주회에서 ‘희망의 교향곡’이란 이름으로 거듭났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2005년 라말라 연주 실황)

이 곡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Beethoven 5 Barenboim Ramallah를 검색하세요.
https://youtu.be/3pM6nD5ZNFI

 

팔레스타인 지식정보부 장관 나벨 샤트는 바렌보임을 “휴머니스트이자 평화의 사도”라고 찬양했다. 바렌보임은 청중을 향해 말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운명은 뗄 수 없이 얽혀 있습니다. 끝까지 증오하며 서로 죽일 것이냐, 아니면 나눌 수 있는 것을 함께 나눌 것이냐, 우리는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이스라엘 태생의 젊은 단원 나벨 아부드 아슈카르는 말했다. “이 곳에서 연주하는 건 믿을 수 없이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라말라에 와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실제로 본 것은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이 연주회는 상징적인 사건이지만 아주 힘찬 몸짓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평화의 메시지는 연설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를 앵콜곡으로 연주했다. 엘가는 실의에 빠져서 작곡을 포기하려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친구 님로드가 꿈에 나타나서 “베토벤처럼 역경을 이기고 더 아름다운 음악을 써야 한다”고 격려해 줬다는 것이다. 열정을 품은 채 평화롭게 흐르는 ‘님로드’의 선율은 이 다큐멘터리의 클로징 음악으로 사용됐다.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 (2005년 라말라 연주 실황)
이 곡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Elgar Nimrod Barenboim Ramallah를 검색하세요.
https://youtu.be/6aWJ8IDwo0Y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한국에서도 연주한 적이 있다. 2011년 8월 15일, 임진각에서 열린 평화콘서트.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를 연주하기 직전 바렌보임은 남과 북의 평화를 염원하며 이렇게 말했다. “베토벤은 1827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인류애의 메시지를 던지고, 인간이 함께 살아갈 뿐 아니라 함께 좋은 일을 할 능력과 가능성이 있다고 역설합니다. 이 메시지를 분단국가인 한국에 전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평화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을까? 2016년 봄, 한반도는 평화롭지 못하다. 오히려 갈등의 불길 한복판에 스스로 뛰어든 형국이다. 외국의 음악가들이 우리의 평화를 걱정해 주는데, 정작 이 땅의 위정자는 귀머거리가 되어 증오와 대립을 키우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평화를 추구한다는 거창한 슬로건보다 ‘무지를 제거해야 한다’는 소박한 목표를 추구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누가 평화를 어지럽히고 민심을 혼란케 만드는지 냉정하게 꿰뚫어 보아야 할 것이다. 5년 전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가 들려준 <환희의 송가>를 회상하니 이 땅의 평화가 더욱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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