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6년 05월 2016-04-29   1919

[통인] 성실함이 만드는 신뢰감 – 하태훈 참여연대 신임 공동대표

 

성실함이 만드는 신뢰감

하태훈 참여연대 신임 공동대표

 

 

글. 박근용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사진. 박영록

 

오후 4시. 철쭉이 화사하게 핀 고려대학교 교정을 지나 약속 시간에 맞추어 신법학관 3층에 도착했다. 연구실 문을 노크하자, 도착하기를 기다렸는지 곧바로 문이 열린다. 연구실 한 쪽 벽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책이 정돈되어 있었고, 테이블도 불필요한 물건 하나 없이 깨끗했다. 평소 깔끔하고 반듯하기로 유명한 분이지만, 그를 닮은 연구실을 보니 주변의 평가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닌 모양이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올해부터 새롭게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된 하태훈 교수다.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지 엿새 뒤에 진행된 인터뷰는 선거 이야기로 시작됐다.

 

참여사회 2016년 5월호 (통권 234호)

    

취임한 직후에 총선이 치러졌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참여연대가 정당은 아니지만 창립 때부터 정당을 대신하는 활동을 하기도 해서 총·대선에 신경을 안 쓸 수 없잖아요. 결과가 안 좋으면 우리 책임 같기도 하고. 근데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이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자면 참여연대가 일정정도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와 함께 낙선 대상자를 선정하고 낙선투어를 한 것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불러일으킨 게 아닐까 생각해요.

 

선거 결과가 이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 못했는데, 돌아보니 여러 논의가 길어지면서 총선준비가 늦어진 게 아쉬운 것 같아요.
언론 지형이 2000년대 초반하고는 완전히 달라져서 준비하는 사람도 흥이 안 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언론의 주목도 받고 성과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야 의욕이 생기는데 그런 게 안 보이니까. 분위기가 비관적이어서 우리 활동을 통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안 들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주어진 역할을 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온 거라고 믿어야죠.

 

사법 감시나 사법 개혁도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사법개혁은 정말 20년 전이랑 크게 달라지지 않은 거 같아요. 진부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계속해서 같은 주장을 반복했죠. 하지만 전혀 안 변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의욕을 가지고 해야죠. 이명박 정부 이후 안 좋은 일들이 많았지만, 우리가 활동을 안했으면 더 막 나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최근에 검사들을 만났는데 우리가 냈던 검찰보고서에 대해 언짢은 투로 얘기하더라고요. 그런걸 보면 그들의 활동을 조금이라도 제약하는 효과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1997년부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으로 활동하셨어요. 세간에 참여연대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시절이었는데,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어요?
참여연대를 알고는 있었는데 독일 유학을 5년 갔다 온 뒤여서 학자들을 잘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던 차에 한인섭 선생님(당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현재 서울대 법대 교수)이 전화를 하셔서 참여하게 됐죠. 당시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성향이 드러난 게 아닐까 싶어요.(웃음) 그리고 홍익대학교에서 교수협의회 활동을 했던 것들을 고려했던 거 같아요.

 

그 후에 사법감시센터 소장(2009~2012)을 거쳐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과 운영위원장을 거쳐 20년째 참여연대에서 활동하고 계세요. 활동기구 실행위원을 거쳐 참여연대 대표까지 이어서 하게 된 경우는 임종대 전 공동대표에 이어 두 번째인데, 대표직 제안을 받고 어떠셨어요?
상임집행위원과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분야를 조금씩 알게 되었고, 좀 더 공부한 다음에 대표를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물론 시켜줘야 하는 거지만요(웃음). 정년퇴임 즈음하면 시간도 많으니까 상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너무 빨리 제안을 받아서 주저되긴 했죠. 참여연대는 경제, 노동, 복지, 평화 등 많은 분야에서 활동을 하잖아요. 근데 사법감시만 하다보니까 다른 부분에 관한 식견이 없어서 상임집행위원회 회의 때도 발언을 많이는 못했거든요. 그래서 대표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앞으로 계속 공부해야겠죠.

 

그에게 대표직을 제안하자고 했을 때 임원후보추천위원 모두가 주저하지 않고 찬성했다. 한결같이 성실한 모습을 보인 그에 대한 신뢰가 높았던 것이다. 

 

 

선생님을 보면 굉장히 성실하고, 약속을 잘 지키시는 거 같아요. 
저도 그렇게 성실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그런 인상을 주도록 노력을 많이 하죠. 독일에서 유학할 때 그 사람들 생활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약속을 잘 지키고 소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더라고요. 거기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부모님이나 다른 환경의 영향은 없었나요?
그런 영향도 있죠. 저희 어머니가 오로지 공부밖에 몰랐거든요. 초등학교만 나오셨는데 본인의 한이 있어서 그런지 학교 공부를 강조하신 덕분에 성실해 진 것도 있는 거 같아요.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일찍부터 교장을 하셨는데, 선생님들이 선물 같은 걸 사오면 야단쳐서 돌려보냈거든요. 그래서 원칙을 지키는 걸 중요하게 여기게 된 거 아닌가 생각해요. 

 

하 대표에게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회의를 할 때 재밌는 표현을 종종 사용해서 참여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근래에는 재치 있는 건배사를 제안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평소 차분한 성격의 하 대표에게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진지하시지만 재밌는 건배사를 하기도 하고, 상집이나 운영위 회의를 할 때 재밌는 표현을 종종 쓰시잖아요. 
총회에서 인사말 할 때 누구는 좌우를 쳐다보는데(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프롬프터를 좌우로 쳐다보며 읽은 것을 비유) 저는 써온 걸 보고 하겠다고 말해서 많은 분들이 웃으셨는데, 준비를 조금 해야 재밌는 말이 나오거든요. 강의를 준비하면서 어떤 말로 학생들을 재밌게 하고 졸지 않게 할 건지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기도 하고, 상투적인 말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준비를 하는 거죠.

 

참여사회 2016년 5월호 (통권 234호)

 

인생에서 일탈한 기억도 없다는 하대표는 고려대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법학을 가르치는 지금까지 법학의 한 길을 걸어왔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던 1998년에 대검 검찰제도개혁위원회 위원이 된 것을 시작으로, 1999년에는 대통령 직속 사법개혁추진위원회, 노무현 정부 기간에는 사법개혁위원회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 참여했다. 그 시절은 사법개혁 분야에 큰 진전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 검찰개혁 논의가 시작됐는데, 위원으로 많이 참여하셨죠?
김대중 정부 때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들어가서 쭉 활동했죠. 적극적으로 의제를 던지지는 못했지만 의제가 정해지면 연구해서 의견을 내는 역할을 했어요. 노무현 정부 때는 사개위 전문위원이었는데, 후속작업을 위해 사개추위를 꾸렸어요. 사개위에서 개혁 방안들을 마련했는데 법무부가 입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내지 않으면 실현이 안 되니까요. 저는 사개추위 기획추진단에서 6개월 동안 상근하면서 형사소송법 개정을 담당했었어요. 심혈을 기울여서 노력했는데 현실적으로는 검찰의 벽에 부딪쳐서 처음 마련했던 방안이랑 달라져서 많이 안타까웠죠.

 

고대 출신 법률가들도 많으니까 사법개혁 운동할 때 부딪치는 일이 많았을 거 같아요.
그때만 해도 사법개혁에 법원과 검찰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분위기여서 갈등은 없었는데 보수 정부 이후, 그리고 제가 사법감시센터 소장된 이후에는 불편한 관계가 있었죠. 정치검찰 발표 할때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싫은 소리 많이 들었어요. 많은 고대 교우들이 왜 대통령을 안 도와주고 비판을 하냐고 하기도 했어요. 저는 항상 같은 고대라도 나쁜 고대와 좋은 고대가 있어서 좋은 고대 사람이라면 그런 일을 안 한다고 반응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도 활동하면서 조금 위축될 때가 있었을 거 같아요.
조금 위축되긴 했죠. 사회 처음 나오면 관계 형성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발언이나 행동을 할 때 주위를 살필 필요가 없는데, 위원회도 참여하면서 이런저런 인연을 갖게 되니까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그래서 나이 들면 보수적이 되나보다 생각했어요. 또 정치검찰 보고서에 사실 관계를 하나 잘못 파악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항의 전화를 많이 받기도 했고요.

 

그런 활동들 때문인지 사법 분야도 변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개혁은 어떤 것들인가요?
오래전부터 우리가 주장해왔던 사법의 민주화 관점에서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것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죠. 또 공판중심주의, 조서 재판에서 탈피하는 증거법 부분이 개정된 것도 중요하고요. ‘조서 재판’으로 가는 원인 중의 하나가 검찰이 피의자 심문조서를 증거로 인정하는 거였는데, 제약을 많이 가하는 것으로 형사소송법이 바뀌었어요. 검찰의 반발로 원했던 만큼 개정하지는 못했지만요.

 

참여연대는 검찰개혁을 위해 몇 년 전부터 ‘지방검사장 직선제’를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법무부장관-검찰총장-지방검찰청장(검사장)으로 이어지는 위계구조를 깨뜨리고, 지역별로 주민들이 검사장을 뽑는 방식이다. 

 

참여연대는 요즘 ‘지방검사장 직선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검사출신들이 얼마나 많이 국회에 진출했는지 모르지만, 법 개정의 주도권을 법무부와 국회 법사위가 가지고 있으니까 저항이 클 거 같긴 해요. 하지만 충분히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개혁방안 아닐까 싶어요.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타난 민의가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대한 심판이라고 본다면, 검찰의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검찰이 중립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공감한다면 국민들을 설득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시간은 좀 걸리겠죠. 국민참여재판도 90년대 초반부터 제안을 해서 2008년에 도입되었고, 로스쿨 도입운동도 15년 정도 운동을 했거든요. 

 

참여사회 2016년 5월호 (통권 234호)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보는 낙관주의, 시민운동에 적합한 성품이다. 대학 시절 하 대표는 잠깐 야학교사로 활동한 적이 있다. 1970년대 도시산업선교회가 서울 영등포나 구로, 인천 등의 공장 노동자 중에 초중등 교육기회를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해 야학교실을 열었을 때, 하 대표도 구로지역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교사로 참여했다. 그 때 시작한 사회참여 활동이 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년을 참여연대와 함께 하셨는데, 참여연대가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참여연대가 상근자-전문가-회원 구조로 돼 있는데 세 그룹이 잘 소통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아요. 시민단체 영향력이 떨어졌다고 하잖아요. 참여연대는 도덕성 문제는 없는 거 같고, 정치적 편향성은 보수가 만든 논리여서 큰 문제는 아닌데 내부 민주주의가 어떤가가 중요한 문제죠. 회원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형성해서 대변하는가. 그리고 조직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가. 그리고 회원이 아닌 분들에게 참여연대를 알리는 노력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됐다고 언론에 기사가 나오니까 중·고등학교 동기들이 연락을 해왔는데, 많이 배운 사람들인데도 참여연대를 잘 모르더라고요. 또 회비만 내는 것이 아니라 적극 참여하는 회원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회원 모임이나 운영위도 나오는 분들만 나오니까요.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더 많이 마련해야 될 거 같아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마음에 담아두는 경구는 무엇인지 물었다. 하태훈 대표는 “특별한 건 없지만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게 있죠. 더 중요한 사람과의 약속 때문에 앞서 약속한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는데, 사실 그 자체가 기분 나쁜 일이거든요. 약속을 지키는 것이 신뢰사회를 만드는 기본이잖아요”라고 답했다. 요즘은 대표직을 열심히 수행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홈페이지에 올라온 자료도 찾아 읽고, 몇 년 전에 참여연대가 냈던 『고장난 나라 수선합니다』같은 책도 보고 있다고. 사진을 보면서 상근자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다는 그의 말을 들으니, 그의 성실함이 신뢰감을 만드는 원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실함과 신뢰감. 1994년 용산에서 조그마한 단체로 출발했던 참여연대가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민운동단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개혁과 퇴행을 반복하는 사법감시 활동을 20년째 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하태훈 대표 같은 분들이 참여연대가 신뢰를 얻는 바탕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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