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1년 05월 2021-05-01   1674

[여성] 구속된 몸의 해방을 위하여

구속된 몸의 해방을 위하여

 

“짐승같이 되는 것이 좋다. 

먹고, 으르렁거리고, 감각과 관련된 

모든 것은 긍정적이다. 개처럼 여성을 

그리는 것은 전적으로 그럴 듯하다” 

 

‘개-여자’ 연작을 그린 파울라 헤구Paula Rego의 그림 속 여성 인물들은 개처럼 엎드려서 눈을 치켜뜬 채 으르렁대거나, 울퉁불퉁한 근육을 드러내고 몸을 아무렇지 않게 편한 상태로 둔다. 통념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헤구가 말한 ‘짐승처럼 되는 것’은 대체로 여성에게 덧씌운 굴레를 벗어난 인간이다. 교양은커녕 전혀 교육받지 않은 비인간처럼 보인다. 파울라 헤구의 그림 속에서 여성들은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때로는 이빨을 드러낸 여자의 얼굴에서 폭력성까지 읽힌다. 그는 동물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연출하여 여성에게 새로운 신체적 자유를 획득하도록 한다.

 

여성에 요구되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길 

파울라 헤구는 1935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부터 영국으로 이주한 그는 영국과 포르투갈을 오가며 작업했다. 현재 여든이 훨씬 넘었지만, 그는 여전히 활동하는 작가이다. 포르투갈 카스카이스에 헤구 미술관이 있으니 자신의 이름으로 된 미술관을 살아서 보는 작가이다. 다작을 하는 작가라서 작품이 양적으로도 방대하다. 회화만이 아니라 꼴라주와 설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했다. 작업 초기인 60년대에는 초현실주의 영향을 받았고, 특히 스페인 출신 화가 호안 미로Joan Miro 작품에서 강한 인상을 받는다. 이 당시에 헤구는 포르투갈의 독재자 살라자르를 비판하는 정치적인 작업을 적극적으로 했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헤구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품위와 정숙이라는 이름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길 갈망했다. 헤구의 말대로 당시에 노동계층 여성은 무슨 일이든 해야 겨우 살 수 있었다면 중산층 여성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는 일 외에는 한 인간으로서 추구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의 ‘개-여자’ 연작은 이러한 갈망의 산물이다.

 

〈춤추는 타조Dancing Ostriches〉(1995)처럼 90년대에 많이 그린 발레리나의 모습들은 우리가 흔히 그림 속에서 보는 화사하고 부드러운 소녀 발레리나의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는 선을 강하게 표현하면서 힘세고 거친 몸으로 여성을 표현한다. 특히 헤구는 파스텔을 선호했다. 파스텔은 붓을 사용하는 물감과 달리 손에 직접 닿는 재료다. 종이와 손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고 손으로 문지르며 재료의 물성을 더 가깝게 느낀다. 같은 파스텔화이지만 헤구의 그림 속 발레리나는 에드가 드가가 보여주었던 발레리나 소녀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여성의 몸이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5월호 (통권 285호)

파울라 헤구, 〈춤추는 타조Dancing Ostriches〉, 1995

이미지 출처 Wikioo.org

 

“그땐 다 그랬다” 불법 임신중단으로 목숨 잃은 여성들 

영국에서 슬레이트 미술학교에 다닐 때 헤구는 미래의 남편이자 동료 예술가인 빅터 윌링Victor Willing을 만났다. 윌링은 당시 촉망받는 젊은 화가였으나 이미 아내가 있는 기혼이었다. 헤구는 윌링과 정식으로 결혼하기 전에 여러 차례 임신중단한다. 헤구의 아들 닉 윌링이 만든 다큐멘터리 〈파울라 헤구 : 비밀과 이야기〉에서 헤구는 당시 여자들이 불법 임신중단을 하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고 한다. 합법적으로 임신중단을 할 수 없자 심지어는 임신한 여자친구를 죽이는 남자도 있었지만 그것은 살인이 되지도 않았다. 헤구는 “그때는 다 그랬다”고 말한다.

 

다발성 경화증으로 오랜 투병을 했던 남편 윌링의 사망 후 헤구의 작품은 결을 달리하고 훨씬 더 적극적으로 여성 억압에 맞서는 그림을 그린다. 윌링이 사망한 해인 1988년의 작품 〈춤The Dance〉에서 누구와도 손 잡지 않고 홀로 춤추는 왼쪽 인물은 바로 헤구 자신이다.

 

90년대에 헤구는 그의 인생 역작인 〈임신중단 시리즈Abortion Series〉를 집중적으로 그렸다. 합법적으로 임신중단을 할 수 없어서 여성들이 위험한 방식으로 시술을 하는 상황을 다양하게 그려냈다. 실제로 낙태죄는 임신중단을 줄이는 효과보다는 여성의 몸을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간다. 1998년 포르투갈에서는 낙태죄를 폐지하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으나 투표율이 과반에 이르지 못해 무효처리 되었다. 헤구는 그 이후 임신중단 시리즈를 더 열심히 그렸고, 두 번째 국민투표가 실시될 때까지 그의 작품은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목소리로 많이 활용되었다. 2007년 두 번째 국민투표를 통해 드디어 포르투갈에서 낙태죄는 폐지되었다. 헤구는 자신의 작업 중에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작업이 임신중단 시리즈라고 했다.

 

2019년 4월 한국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269조 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66년 만에 낙태죄는 사라지게 되었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했으나 국회에서 기한 내에 입법이 안 되었다. 낙태죄는 폐지되었어도 안전하게 합법적으로 임신중단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했다. 여성의 몸은 여전히 구속받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헤구가 남긴 〈천사Angel〉(1998)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5월호 (통권 285호)

파울라 헤구, 〈천사Angel〉, 1998 

이미지 제공 Yann Caradec

 


글.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예술과 정치, 그리고 먹을 것을 고민하는 글쓰기와 창작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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