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여행자의 고향
태국 방콕
아! 방콕에 다시 갈 수 있다면
며칠 전, 모임에서 한 친구가 비행기를 타고 싶다고 했다.
“제주도만 가도 탈 수 있잖아.”
“아니지! 자고로 기내식을 먹어야 비행기를 탔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는 말이구나.”
“응. 좌석에서 기내식을 받았을 때 그제야 실감 나더라고.”
“나는 비행기 문밖으로 나왔을 때 느껴지는 그 후끈한 열기와 습함!”
그 순간 우리 모두 ‘아! 방콕 가고 싶다’가 감탄사처럼 쏟아졌다. 후끈한 열기와 습함이라면 역시 방콕이 으뜸이니까. 너 나 할 것 없이 방콕 예찬이 시작되었다.
“난 매번 돈므앙 공항에 내려서 그랬는지 악명 높은 도로 체증을 마주해야 방콕에 도착한 기분이 나더라. 뭔가 더위 때문에 꼼짝 못 하는 듯한 느릿함…. 뜨거운 물에 슬라임을 풀어 놓으면 그런 느낌 아닐까? 아무튼 핑크색 택시에 앉아서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안도감 같은 게 생기더라고. ‘아! 도착했구나’ 뭐 이런 거?”
“난 태국 세븐일레븐의 통쾌한 시원함이 그립다. 머리 꼭대기까지 뜨거워져도 편의점만 들어가면 시원하다 못해 춥잖아. 마땅히 살 게 없어도 한 번씩 들어가 줘야 방콕 여행의 도리 아니겠어?”
“여름휴가 때마다 방콕에 갔는데 그래서인지 시원하게 퍼붓는 스콜이 그리워. 국숫집에 앉아 땅바닥에서 튀어 오르는 빗방울을 맞으면서 ‘그럼 그렇지! 이래야 방콕이지’ 했는데. 올여름 내내 동남아 우기처럼 막 쏟아지다가 멈추던 장맛비 덕분에 잠깐씩 방콕에 간 것 같은 기분이었어.”
어느새 우리는 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각자 기억 속의 방콕 여행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나는 방콕을 생각할 때마다 수상 택시 위의 풍경이 떠오른다.
태국 방콕의 교통수단, 수상택시 ⓒ김은덕, 백종민
짐 톰슨 하우스➊와 가까운 곳에 숙소가 있었는데 어딘가 가려면 방콕 사람들처럼 샛강을 따라 움직이는 수상 택시를 타는 게 편했다. 선착장에 서 있으면 내 눈을 간지럽히던 강물에 반사된 햇빛, 배 난간 위를 걸어 다니며 손님들한테 요금을 받던 승무원의 몸짓 그리고 똥색 강물이 튀어 오르면 막으라고 만들어 둔 물막이 커튼까지. 물막이 커튼이 있어도 튀어 오르는 물방울을 모두 막지는 못해 얼굴에 묻은 똥색 강물을 손으로 씻어 내던 감촉도 기억이 난다. 여행이 다시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인지 방콕을 이야기할수록 그 순간이 더 그리워졌다.
우리가 사랑했던 방콕을 다시 만날 그날까지
공기, 온도, 소나기 등 몸으로 느껴지던 감촉을 떠들고 나니 이내 혀끝에서 맴돌던 맛들도 떠올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된 음식 예찬 타임.
“쏨땀이 너무 먹고 싶어. 그 쿰쿰한 생선 젓갈 냄새가 너무 그립네. 쏨땀이랑 돼지고기 튀김이랑 같이 시켜 놓으면 맥주를 안 시킬 수 없는 맛인데….”
“난 카오카무. 한국에서 먹고 남은 족발로 한 번 해봤는데 그 맛이 안 나더라고. 이건 꼭 가게 입구에 큰 냄비 걸어 놓고 자글자글 끓이고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먹어야 해!”
“방콕에 갈 때마다 묶는 숙소가 있거든. 그 앞에서 먹는 노점 쌀국수. 리어카도 아니야. 그거 있잖아. 자전거 뒤에 유리로 벽 만들어 놓고 국수 파는 노점상. 국수 하나 시켜서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서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먹어도 참 맛있었어.”
“여러분! 모두 방콕에 다녀온 지 너무 오래됐구먼. 방콕, 하면 똠얌꿍이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모두 감을 잃었네!”
그러고 보면 방콕은 참 이상한 도시다. 날씨도 한국이랑 너무 다르고 음식도 비슷한 게 없다. 툭툭이나 썽태우 같은 교통수단도 닮은 구석이 없는데 너 나 할 것 없이 공유할 만한 기억을 가진 곳이니 말이다. 뭐랄까? 여행자의 고향 같은 곳이다. 지금은 막혀 버린 해외여행을 떠올릴 때 제일 먼저 생각이 나기도 하고 누구나 방콕의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여행이 가까이 있을 때는 그 순간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비행기 티켓을 사서 날아가면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제야 다른 환경이, 낯선 음식이 그리고 사소한 기억 모두가 소중한 여행의 순간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다시 여행의 시간이 찾아오면 연락이 끊겼던 친구를 찾아준 것처럼 고마워해야지.
➊ 방콕 시암 근처에 있는 관광지로 태국 실크를 세계에 널리 알린 미국인 짐 톰슨이 살았던 곳이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글·사진.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함께 글 쓰며 사는 부부 작가이다.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며,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마흔 번의 한달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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