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글
행복의 이유는 몇 개입니까?
어느 가난한 나라의 사내가 바닷가에서 여유롭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 어느 부유한 나라의 사내가 물었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보다시피 고기를 잡고 있소” 부유한 나라 사람이 다시 물었다. “이렇게 하루 일하면 며칠을 살 수 있습니까?” “대략 일주일은 먹고살 수 있을 거요” 묻는 이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아니, 날마다 열심히 일하면 큰 배도 사고 부유하게 살 수 있을 것 아니오?” 그 말에 고기를 낚던 사내가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도 날마다 행복하오.”
이 이야기는 과다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는 일화로 소개되곤 한다. 이 문답을 들은 사람들은 대개 수긍하고 자신의 내면에 깃든 욕망을 부끄러워하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이어지는 사회를 걱정한다. 그러나 이 문답이 모두에게 두루 옳기만 한 것일까? 이런 생각, 이런 삶의 방식이 어느 곳, 어느 사람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논리일까? 무소유 혹은 소욕지족, 나아가 안빈낙도의 삶은 지구별 수십억 사람들에게 적용이 가능할 것인가? 가능하지 않다. 인간을 몰라도 한참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런 삶은 획일적으로 적용되지도 않고,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러기에 맹자가 그 옛날에도 항심恒心과 항산恒産을 말했을 것이다. “항산이 없이도 항심을 갖는다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할 수 있다. 일반 백성들은 항산이 없으면 따라서 항심도 없다. 진실로 항심이 없으면 방탕, 편벽, 사악, 사치 등을 아니하는 것이 없다” 『맹자』 「양혜왕」편에 나오는 말이다. 항산이란 의식주의 안정을 말한다. 요즘말로 하면 직업, 의료, 교육, 복지 등이 안정적이어야 사람들이 불안하지 않고, 사회가 질서 있게 유지된다는 말이다. 행복을 개인의 의지와 신념, 주관적인 정서로 규정하거나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사회, 어느 국가든 행복은 탄탄한 항산의 기반에서 쌓아 올릴 수 있다. 부정할 수 없는 법칙이다. 그런데 개개인의 불행과 행복, 한 사회 구성원들의 불행과 행복 또한 이런 물질로 표상되는 탐욕과 독점, 불평등과 불공정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적절한 분배와 평등 아래 사람들은 만족과 안정을 누리고, 그러하지 못하면 불안을 느끼고 불행하게 된다.
그래서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이 행복을 연구하고 방안을 내놓게 되었다. 종교인들은 절제하고 자족하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철학자는 정의가 곧 행복이라고 말한다. 공리주의자들은 양적 행복과 질적 행복을 말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만들기 위해 지표와 숫자로 행복한 국가를 발표하기도 한다. 이런 흐름은 곧 맹자가 말한 항산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행복한가?” 경제학자 바츨라프 스밀의 책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2021, 김영사)는 각 나라의 행복을 숫자로 분석하고 해석한다. 책에 따르면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는 2012년 이후 매년 〈세계 행복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는데 2019년 기준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를 차지했으며 한국은 54위, 일본 58위, 중국 93위, 아프가니스탄은 154위였다. 행복 점수는 여섯 가지 요인을 토대로 매겨지는데, 1인당 GDP, 곤란한 상황에 믿을 만한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지 여부, 건강한 기대 수명, 선택의 자유, 자선단체에 기부한 적이 있는지 묻는 관용, 정부와 기업의 부패 지수 등이다. 이런 요인들 또한 경제와 사회의 안정이라는 ‘항산’과 맥을 같이한다.
물론 인간의 행복은 주관적 판단이나 감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자연인’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의식주와 건강, 노후의 생활 안정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기에 숫자가 말하는 사실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또한 숫자는 우리에게 착각을 주기도 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이 숫자의 허구성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다.
다시 선진국과 행복을 생각한다. 공자는 무엇보다도 개념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명正名이 바로 그것이다. 선진국, 무엇이 앞서가고 있다는 말인가? GNP국민총생산와 GDP국내총생산, 거대한 기업, 국방력 등의 수치가 높으면 선진국일까? 행복, 숫자로 말하는 선진국 대열에 들면 행복한가? 강대국은 선진국인가? 강대국에 사는 사람들은 정의롭고 행복한가? 이제 우리는 당연히 여기던 것들에 대해 다시 물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관점에서 물음의 항목을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당신은 몇 개의 행복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까? 선진사회는 어떤 다양한 모습이어야 합니까?
글.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으며 현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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