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4년 05월 2024-04-26   2421

[여는글] 총선이 남긴 과제

Element5 Digital, Unsplash

상극의 대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그야말로 야당의 압승, 여당의 참패이다. 사람들은 2년간의 윤석열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한다. 정치평론가들은 야당인 민주당이 잘해서 185석을 얻은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민심 이반이라고 평가한다. 이는 현재 한국 정치의 수준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여론이다. 유권자들은 ‘누가 누가 잘하나’를 따져 표를 던지기보다 ‘누가 누가 더 못하나’를 판단하고 최악을 피해서 선택해야 했다. 상대방의 실책을 부풀리고 혐오를 만드는 ‘반사이익 구조’의 정치문화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런 정치 구조 속에서 국민은 편을 나눠 정치적, 심리적 내전을 치르느라 피곤하다. 무도하고 무능한 정권에 대한 심판, 위대한 국민의 승리라는 정치적 수사를 넘어 한국 사회의 이 극심한 분열과 대결을 어찌할까? 승자는 기고만장하고 패자는 영혼 없는 반성문을 읽는 이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낼까? 총선이 끝난 지금, 진영 논리를 떠나 정치인과 국민은 함께 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생명에 대한 연민 없는 정치

갈등葛藤은 칡넝쿨과 등나무 줄기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을 말한다. 살아가면서 갈등이 없을 수야 없지만 해결 과정이 지혜롭지 못하면 갈등은 점점 악화되고 풀어갈 길이 난망하다. 정치의 임무는 사회적 갈등을 잘 들여다보고 대화와 조정으로 사회를 건강하게 통합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정과 통합이라는 정치의 원칙이 왜 무너지고 있을까? 그것은 정치인들이 당리당략 즉, 이해득실의 잣대로 사태를 해석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디는 일곱 가지 사회악 중 최우선으로 ‘원칙 없는 정치’를 말하였다. 이어서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성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헌신 없는 종교를 들었다. 건강한 사회를 해치는 사회악을 꼽는 간디의 통찰이 놀랍다. 일곱 가지 사회악의 공통분모는 ‘생명에 대한 연민의 부재’이다.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생명에 대한 애틋함이 없다면 어떤 가치도 자리 잡을 수 없다. 양심, 인격, 도덕성, 인간성, 헌신은 연민의 바탕에서 뿌리내린다.

대통령, 국회의원, 행정부와 사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결여된 채 자기 분야의 전문 지식만으로 일하고 있다면, 그는 당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사람에 대한 연민은 정치인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덕목이다.

언덕을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다. 당사자인 윤석열과 한동훈은 왜 이토록 낮은 평점을 받았을까? 정책의 실패, 불통과 고집,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모습, 민주주의의 퇴행, 오만불손한 언행, 무지와 무능 등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모습은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빌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선거 구호로 부시를 이겼다. 이 문장을 ‘검사’ 윤석열과 한동훈에게 ‘문제는 정치야’로 돌려주면 어떨까?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민생을 어렵게 만들면서 끊임없이 극한의 갈등을 만드는 두 사람의 문제는 무엇일까? 바로 ‘검사’를 버리고 ‘정치인’으로 변신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의 의식은 여전히 검사의 덫에 갇혀 있다. 검사와 정치인의 철학은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무엇을 버리고 어떻게 거듭나야 하는가?

사벌등안捨筏登岸, 언덕을 오르려면 강을 건넜던 뗏목을 버리라는 뜻이다. 또 장자는 득어망전得魚忘筌이라고 했다. 고기를 잡고 나서 수단인 통발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의 성공에 갇혀 과감히 쇄신하지 못함을 꾸짖는다. 성공이 만들어낸 자기 신념의 뗏목과 통발을 놓지 못한다면 새로운 길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함석헌 선생은 ‘열두 바구니’1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골리앗을 때려 넘겼기로서 조약돌을
비단에 싸서 제단에 둘 거야 없지 않는가?
(중략)
세상에 조약돌을 섬기는 자 어찌 그리 많은고!
골리앗 죽었거든 돌을 집어 내던져라!
다음 싸움은 그것으로 못한다.

대통령 윤석열은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길 때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그럴듯한 말을 했다. 다시 클린턴의 말을 빌려본다. ‘문제는 당신의 의식이야!’

격동의 총선이 끝났다. 이제 우리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총선의 열기와 정권 심판이라는 뗏목과 통발을 버리고 상생의 언덕을 오를 준비를 해야 한다. 연민을 품은 원칙 있는 정치, 이것이 총선이 남긴 과제이다.

  1. 《씨알의 소리-함석헌선집 1》, 함석헌선집편집위원회, 한길사, 2016. ↩︎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으로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현재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수행 중이며 지은 책으로 인문에세이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중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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