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4년 10월 2024-09-30   7811

[이슈] 신조어에 가려진 것들

김헌식 중원대학교 특임교수,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2024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 현장, 서울국제도서전 공식 유튜브 영상 갈무리

텍스트힙에 숨겨진 세대론, 오해

텍스트힙과 세대론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직구를 날린다면 텍스트힙 현상에 내포된 세대론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정 세대가 텍스트힙을 일으키고 있는 점을 거론하니 말이다. 그 세대는 바로 Z세대다. 대개 Z세대는 M세대와 맞물려 MZ세대로 불린다. 하지만 입장은 다르다. 10년이 넘게 차이 나는 세대와 한 세대로 엮인다는 일 자체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뜻하는 M세대는 이미 40줄에 들어섰고 Z세대는 20대인데 이런 거리낌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개취(개인의 취향)가 갈수록 세밀하게 강화되는 시대에 20년을 같은 세대로 묶는 것이 가당키나 한지 의구심이 들긴 한다.

그런 상황에서 텍스트힙을 Z세대가 오롯이 일으키고 있는 것이라니! 드디어 M세대가 Z세대와 분리됐다. 그런데 텍스트힙의 중심에 Z세대가 있다는 점을 부각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텍스트힙이라는 신조어는 그 배경에 젊은 세대에 대한 기존 인식과 그에 대한 반전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개 젊은 세대는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미 X세대부터 ‘문자보다 영상에 더 익숙한 세대’라는 규정이 있었으니 밀레니얼 세대를 넘어 Z세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더구나 Z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접하고 자란 세대이기 때문에, 더욱 책이나 독서와 거리가 멀 것이라는 생각이 기성세대의 뇌리에 자리 잡았다. 젊은 세대가 책과 독서에 관심이 있다니 화젯거리가 될 만하다. 밀레니얼 세대보다 더 어린 Z세대가 텍스트힙에 연관될수록 가치 있는 기삿거리가 되는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비대면 문화의 확산이 그들에 대한 오해를 더욱 가속한 면도 있었다. 가상현실이 시대적 대세가 될 수 있다고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Z세대는 당연히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 플랫폼에서 활동하리라 생각했다. 심지어 가상 인간 캐릭터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이 부각되고 실제로 주목을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징조는 이미 있었다. 전 세계를 주름잡았던 가상 인간 캐릭터는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국내에서 자체 개발했던 가상 인간 모델도 이제 더는 언급되지 않는다. 가상 인간 그룹보다는 뉴진스와 같이 친근한 또래 아티스트 그룹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가상 인간은 대면 소통을 할 수 없는 절대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의 온라인 공연에 열광했던 Z세대는 실제 대면 투어나 팬미팅에 더 열광한다.

극장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영화 티켓이 비싸서 극장에 가지 않는 면이 분명 존재하지만, 오히려 더 비싼 콘서트와 뮤지컬 시장은 폭발적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극장은 결국 비대면 콘텐츠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언제라도 같은 내용이 반복된다. 하지만, 공연은 매번 가도 같은 내용일 수가 없다. 그렇기에 콘서트 실황 다큐멘터리에도 그들은 쇄도한다. 또한, 한류 팬들조차 비대면 SNS로 봤던 한국을 체험하기 위해 직접 방문을 하고 있다. 체험의 경제학이 다시금 중요해진 상황을 맞이했다. 중요한 것은 가격이 아니라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충족하려는 가치 소비에 있다.

텍스트힙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Z세대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데 열성적이다. 그것이 올드미디어인 책이라도 마다할 리가 없다. 밀레니얼 세대는 오히려 책에서 거리를 두고 디지털 모바일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으면서 기존 세대와 구별 짓기를 했다. 이런 점에서 Z세대와는 분명 다른 특성을 공유한다. 오히려 Z세대는 기성세대보다 편견이 없을 수 있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접한 스마트 모바일 환경에서 정보와 콘텐츠를 취하고 성장해서 그럴 수 있다. 그들을 바라볼 때 중요한 것은 어떤 사물이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아니다. 그것의 활용과 쓰임이다. 유용함을 넘어서서 공유와 인정을 통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행위가 매우 중요하다. 과거의 물건이나 콘텐츠라고 해도 그것을 자신의 의지와 개념으로 다시금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들에게 공유하면서 만족감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Z세대의 텍스트 소비 문화

전 세대에 걸쳐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은 불문율이다. 더 이상 책은 선망의 대상도 이상적인 문화적 행위도 아니었다. 어느 순간 독서가 취미라고 밝히는 사람도 없어졌다. 베스트셀러라도 한 권씩 버스나 지하철에 들고 다니거나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며 책을 펴는 모습도 사라졌다. 그것보다 멋있고 힙한 것은 아이폰 최신 모델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다. 스마트폰을 마치 선진 문물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책을 즐겨 있던 기성세대일수록 더욱 열광적이었다. 이런 문화적 풍경에 새로운 세대가 달리 움직이고 있는 현상을 묶은 개념 가운데 하나가 텍스트힙으로 보인다.

Z세대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나 인상적인 표현 또는 구절을 사진으로 찍어서 SNS에 공유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를 보면, 성인 6명 가운데 1명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같은 조사에서 성인의 종합 독서율은 43.0%인데, 20대의 독서율은 무려 74.5%였다. 올해 6월 서울국제도서전의 방문객은 20~30대가 73%였고, 30대(28%)보다 20대(45%)가 더 많았다. 이뿐만이 아니라 시집 전문 서점에는 70% 이상이 20대 고객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책을 선택할까? 2024년 봄, 1998년 처음 출간된 양귀자 장편소설 《모순》이 역주행하더니 소설 분야 1위에 올라서기도 했는데 26년 전 책이 다시 이렇게 선택받은 이유는 20대 덕분이다. 20대 구매 비율이 38.5%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그 책이 20대 여성의 인생 선택에 대한 보편적인 화두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만이 아니다. 시 낭독회에는 때에 따라 절반 이상을 그들이 채우기도 한다. 2023년 교보문고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대는 전체 시집 판매 비중의 25%를 차지했는데 30대는 20.4%로 이에 미치지 못했다. 시집 판매량이 전체적으로 늘었던 핵심 원인 가운데는 이런 20대의 관심과 선택이 있었다. 새삼 젊은 시인들이 스타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시가 주목받는 것은 시가 짧지만, 압축적으로 흥미를 돋우면서도 자신들의 마음을 잘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짧은 서사와 텍스트에 익숙한 Z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르가 시집일 수 있다.

그들이 책을 찾게 되는 것을 여러 이유로 분석할 수 있다. 우선 자극적인 모바일 동영상 콘텐츠가 일으키는 피로 현상에 따른 반작용으로 분석할 수 있다. 책이나 독서는 자신이 통제력을 발휘하고 조절할 수 있지만, 유튜브 동영상 플랫폼 등은 알고리즘에 따라서 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구동하는 데 필요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책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SNS 갓생’ 문화다. 이는 매일매일 사소한 일일지라도 열심히 하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가운데 SNS에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면서 심지어 자신이 공부하는 것까지 공유하는 그들에게 독서와 책 인증샷은 낯선 것이 아니다.

Z세대 함부로 차지 마라, 당신은 한 번이라도 읽는 사람이었던가

하지만 이런 텍스트힙에 대해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일종의 과시 현상이나 동조 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특히, 유명한 아이돌이나 배우들이 읽는 책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짜 책 커버를 사서 사진만 찍는 행위 때문에 관련 제품의 판매 상승도 있었다. 마치 세트장의 방송용 소품처럼 갖추는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과연 지금 세대에게만 일어난 현상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전 세대들도 집안에 그럴듯한 사상서 세트나 소설 전집을 장식처럼 구매했고, 서재를 갖는 것이 꿈인 이들도 많았다. 아이들에게 사주던 동화책이나 명작 고전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대학생들도 사회과학서적이나 문학 계간지를 괜히 들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런 책들을 과연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책을 가지고만 있어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네바다 주립대학교 리노 캠퍼스의 마리아 에반스 교수팀에 따르면 책을 가진 것만으로도 독서의 효과가 있었는데 20년 동안 27개국의 7만여 사례를 분석한 결과였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장식걸이처럼 책을 구매하는 것도 나름의 쓰임이 있다.

다만, SNS에서 올리기 위해 사진만 찍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더구나 독립서점과 같은 공간에서 사진만 너무 찍어대니 아예 입장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100명 가운데 책을 정말 열심히 읽는 이들은 1~2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지금의 텍스트힙에 참여하는 이들이 모두 종이책을 읽는다면 오히려 비정상일 수 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적절한 목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인공지능 시대에 책이 갖는 역할과 기능을 생각할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 텍스트힙 현상임에는 분명하다. 적어도 종이책을 대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선택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독려하는 것만으로도 소중하다. 중요한 것은 기성세대가 그것을 스스로 포기하는 와중에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오히려 절망에 빠졌던 출판인들을 그들이 웃게 만든 면은 간과할 수 없다. 항상 새로운 세대 속에서 희망을 보고 선별하여 강화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할 일이다.

애초에 M세대니 Z세대니 이렇게 나누는 것조차 그들에게는 마땅치 않은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냥 그대로 봐주는 것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미래 세대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미래 세대가 저항적일 것 같지만 선택적 수용을 한다는 점을 면밀하게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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