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4년 11월 2024-11-04   9994

[여는글] 11월이 온다

Judith Zimmermann, Unsplash

10월은 노벨문학상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여느 해처럼 발표 실황을 챙겨보는데 순간 제대로 들은 건가 싶어 잠시 숨을 멈추었고, 이내 현실이라는 걸 알아채고는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고 말았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결과이기도 했지만 밀려오는 감격 때문에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에 벌어진 여러 상황은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짐작합니다. 끊이지 않는 화제는 참여연대가 자리한 종로구 자하문로, 흔히 서촌이라 불리는 동네에도 전해졌습니다. 한강 작가가 종로 구민이라는 이유로 거리 곳곳에 현수막이 붙었기 때문입니다.

한껏 즐거운 소식을 만끽하다 보니 이번 노벨상 시즌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노벨평화상 소식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노벨평화상은 일본의 반핵 평화단체이자 원수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 ‘니혼 히단쿄’에게 돌아갔습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1956년 결성한 반핵 풀뿌리 시민운동단체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통해 핵무기가 다시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피폭자들의 증언을 보여준 공로”를 인정받았고, 노벨위원회는 “육체적 고통과 아픈 기억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평화를 위한 희망과 참여를 키우기로 선택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모든 원자폭탄 생존자를 기리고자 한다”는 수상의 의미를 전했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가장 많은 독자가 찾고 있는 책은 《소년이 온다》입니다. 1980년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잇는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을 담고 있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노벨위원회 선정의 변처럼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평입니다. 노벨평화상이 주목한 원폭 피해 역시 한국 현대사라는 점에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당시 피폭자 70만 명 가운데 대략 10%가 조선인이었고 생존자 3만여 명이 돌아왔으나 어떠한 처치도 받지 못하고 병고에 시달렸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오랜 세월 지워지고 잊히다가 21세기에 들어와서야 자신이 ‘원폭 2세 환우’라고 알린 청년(2002년 당시 33세) 김형률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피폭자가 차별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피폭자 2세, 3세라는 걸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고, 이런 상황 때문에 노벨평화상 수상에도 불구하고 니혼 히단쿄는 활동이 지속될 수 있을지 염려가 크다고 합니다. 김형률은 원폭 피해의 유전 문제를 집중적으로 주장했고, 다른 이의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 폐활량으로 끊임없이 외치다 불과 3년 후 2005년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몸에 20세기의 역사가 “깊숙이 스며들어 우리들을 규정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역사적 트라우마’를 회피하지 않고 맞서야 하는 이유겠습니다. 어느덧 내년이면 20주기를 맞는 그의 마지막이 “역사는 결코 정체되어 있지 않다”고 적은 그의 문장처럼 새로운 계기를 맞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상을 주고받는 주된 이유는 물론 칭찬과 격려입니다. 수상자들에게 다시금 박수를 전합니다. 더불어 상은 의미를 찾게 하고 기억을 되새기게 합니다. 한강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 담담한 일상과 그 안에서 집필의 기쁨을 전하며 “다만 그 과정에서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아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특별하게 기억될 올해 노벨상은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우리는 이를 계기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10월을 노벨문학상이 가득 채웠다면 11월에는 조금 차분하게 각자의 다음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한 해를 돌아보고 다음 해를 그려보기에도 적절한 때겠습니다.


박태근 〈월간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책을 만들고, 온라인 서점에서 MD로 책을 팔고, 여러 매체에서 책을 알려왔습니다.

〈월간참여사회〉 ‘읽자’ 코너에서 필자로, 편집위원회에서 편집위원으로 오래 활동하다 편집위원장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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