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5년 05-06월 2025-05-07   9289

[이슈] 12월 3일 이후의 세계

: 언어와 주체의 갱신

ⓒ김서인

공통감각에 근거한 언어의 갱신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 2024년 12월 3일 밤은 한국사회의 역사적 분기점이었다.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 판결로 윤석열은 파면되었지만, 누구도 그 결과 12월 3일 이전으로 되돌아갔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순히 대통령의 궐위 상태라서, 윤석열과 그 일당의 내란죄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라서가 아니다. 12월 3일과 그 이후의 내란 정국은 한국사회를 불가역적으로 바꿔놓았고 그 여파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우리가 헤쳐온 시간을 되짚으며 그 의미를 해석하는 작업이 중요해진다. 물론 지난 4개월 간의 시간은 거리를 두고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엔 너무 뜨거운 동시대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가 해낸 일의 의미를, 아직 열려 있는 그 의미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가는 작업은 긴요한 일이다. 무엇보다 4월 4일 이후의 시간을 열어가기 위해서 그러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통과해낸 시간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기존의 관성적 이해를 답습하지 말고, 이전에 형성된 사고의 틀을 깨뜨리며 생각을 열어야 한다. 민주주의 시민혁명, 빛의 혁명 같은 상투적인 말이나, 시민사회 원로를 중심으로 민주진보 연합정치를 제기하는 관성적인 대응이 그러하다. 12월 3일 이전과 똑같이, 실용주의적 경제노선으로 중도확장을 꾀하는 선거전략의 공식도 마찬가지다. 역사에 새겨질 초유의 시간을 겪으면서도, 현재 사회가 크게 변하고 있는데도, 지금의 시대로부터 배우며 사상을 갱신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의 근저에는 ‘정답적 사고’가 있다. 자신이 이미 세상의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정답’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기에, 모든 사태는 자신의 정답이 옳다는 걸 증명하는 근거로만 수용된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를 치열하게 통과한다는 것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스스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동반한다. 이를 위해서는 안일했던 자신의 사고를 정직하게 추궁하며, 그 추궁을 멀리 밀고나가야 한다. ‘말벌 동지’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호명했던 시민들은 정확히 그런 과정을 거쳤다. 그들은 그저 ‘민주진보연합의 세계관’의 승리를 재확인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런 관성적인 태도와는 정반대로, 시민들이야말로 지금의 시대를 온 몸으로 통과하면서 스스로를 재구성해갔다. 광장의 자유발언이 살아서 펄떡이는 언어들로 가득했던 것은 그래서이다.

광장에서 공유되는 생생한 감각으로부터 정치적 언어와 구호를 벼려내는 작업은 필요하면서도 감당하기 만만치 않다. 시민사회가 만들어온 각종 의제 및 정책의 언어와 광장의 시민들이 공유하는 감각의 언어 사이는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제기하는 매우 다양한 의제들이 있지만, 그것을 모아내다 보면 왠지 생생한 감각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특히 생생한 감각을 법과 행정, 정책의 언어로 번역해버리면 그 감각이 소실되어 버린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개헌이다. 12월 3일 직후부터 여러 활동가와 지식인이 가능한 많은 염원들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주장 자체야 틀릴 수 없는 것이지만, 개정된 헌법의 내용은 광장의 감각을 언어화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다분히 선험적으로 ‘정답’을 연역하는 방식으로 구상된 것은 아니었는가. 더욱이 헌법도 법의 언어라 광장의 감각이 헌법의 조항으로 곧바로 번역되기는 어렵다. 개헌의 중심 쟁점인 권력구조 개편은 시민들이 피부로 감각하기에는 먼 쟁점이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공유하는 감각이 헌법에 담기기 위한 과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후순위에 머문다.

후순위라는 게 전무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공론장 및 토론회를 통한 사회대개혁 의제 형성, 시민들의 자유발언 아카이빙 및 분석, 광장 참여자 설문조사 및 인터뷰 등, 시민들의 공통감각을 정리하고 언어화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작업들은 광장의 공통감각을 재료로 삼아 공통감각을 더 풍부하게 의미화하고 확장해낸다. 시민들이 지니고 있는 경험을 지적 작업의 재료이자 준거로 삼는다는 것은, 시민들에게 지적인 권력을 돌려줌으로써 시민들과 함께 공동의 언어를 만들어 동시대를 걸어가는 일이 된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집단적 경험을 레퍼런스로 삼아 개헌의 의제를 제기할 수 있다.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의제부터 나열해보자. 모든 법적 효력을 정지시키는 예외상태법으로서 계엄은 절차를 더 까다롭게 한다고 제어되지 않는다. 결국엔 헌법에서 계엄을 삭제해야 한다. 권한대행이 법을 농락하는 걸 막으려면 권력승계 서열을 재설정해야 한다. 5.18과 12.3은 저항권의 역사적 좌표로 각인되어야 한다.

기존의 의제를 갱신해내는 것도 가능하다. 사상과 정치적 지향의 차이는 비상계엄의 이유였다. 성소수자와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광장에도 있었다. 광주라는 지역을 향한 혐오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반공주의와 중국혐오가 섞인 ‘중국인 혐오’는 위험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경험들은 차별금지법의 의미를 확장하고 재구성해 그 필요성을 확인시켜 준다.

2024년 12월 7일 ‘민주주의와 희망으로 새롭게 칠하자’ 행사에서 작성된 피켓 ⓒ범청년행동

1987년의 종결과 사회운동의 갱신

과거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시작해 2008년 광우병 수입 반대 시위,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연 광장의 계보가 있다. 하지만 2024년에 열린 광장은 그러한 ‘촛불 광장’의 계보 아래에 있되 두 가지 변별점을 노정했다. 단순히 촛불에서 응원봉으로 바뀌었다거나, 젊은 여성들이 주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젊은 여성들은 촛불 광장의 계보 전체를 관통해 가장 주도적으로 참여한 집단이었다.

하나는, 이전 촛불 광장이 줄곧 민주당에 의해 그 에너지가 전유되었던 반면, 2024년은 민주당과 광장 사이에 ‘미싱링크’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 이면에는 2016년 촛불 광장의 동력을 정권 수립으로 가져갔던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실망 또는 배신감에서 나오는 경계심이 있다. 물론 남태령 이후로 크게 변모했던 광장은, 윤석열 구속 취소 이후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자 그 분위기가 다시 변했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여준 배제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는 역으로 과거와 달리 더 이상 그들이 광장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이전까지 광장의 시민들은 기존 사회운동과 거리를 두거나 다소 적대적인 태도까지 보였던 반면, 2024년의 광장에서 시민들은 기존 사회운동과 긴밀하게 ‘링크’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사회 연대체가 시민들로부터 격렬한 호의를 받은 건 2024년이 처음이었다. 또한 남태령의 감동적인 연대가 보여준 것처럼, 시민들은 사회적으로 부당하게 재현되거나 재현으로부터 배제되면서도 오랫동안 싸우며 길을 내어 왔던 사회운동의 맥락을 직관적으로 감지했다. 비상계엄이 열고자 했던 절대적 폭력의 상태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은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취약한 상태에 놓인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담론의 폭력을 겪으면서 싸워온 집단들의 맥락과 서사를, 그들이 오랫동안 겪은 고통을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말벌 동지’라 칭하는 이들은 남태령에서 농민들과의 조우를 시작으로 전국의 파업현장으로, 혜화역과 동덕여대로 그 연대를 확장했다.

이 두 논점은 1987년 전후로 나타났던 두 가지 양상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는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라는 최대연합의 연대체 아래 민주당, 재야운동, 종교,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이 결합했던 ‘민주-진보연합’이 불가역적으로 파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1987년 직후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의 발전 및 형성에 비견되는, 사회운동의 집단적 주체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이전의 촛불 광장에서도 새롭게 운동에 진입하는 이들은 늘 존재했지만, 현재의 ‘말벌 동지’들은 페미니즘을 비롯해 시민사회의 기성세대와 일정하게 단절적인 사상과 의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기존 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또한 비상행동 내에서도 젊은 활동가들은 이전과 달리 평등하고 시민들에게 반응적인 광장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서로 연결되고 집단적인 경험을 공유한 활동가들은 그간 침체된 시민사회에 새로운 흐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양상들이 장기적인 정치적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한다. 나는 포스트 1987년 체제의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이제 본격화된 대선 레이스에서 명백하게 보이듯, 대선에 출마한 주류 정당들의 후보들이 제시하는 정책과 언어는 그간 광장을 통해 시민들이 제기했던 것과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시민사회의 포섭과 불만의 배제를 통해 이 간극을 적당히 관리하려 했지만, 현재의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은 그러한 노력조차도 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사람은 굴복하지 않았던 단 하루의 기억으로 평생의 자존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고 했던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처럼, 광장의 시간을 통과한 시민들은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정치는 변하지 않으려 해도 사회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이 변했다.

남태령에서 농민들의 트랙터를 막은 경찰을 향해 시위대는 “시위대가 아니라 경찰이 교통혼잡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그간 교통혼잡과 폭력시위 등의 프레임은 시위대가 만들어 낸 것으로 재현되고는 했다. 하지만 남태령의 시위대는 그러한 재현을 뒤집고, 시위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그러한 경찰의 프레임과 탄압의 부당함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들이 경찰을 향해 소리친 “차 빼라” 구호는, 12월 3일 이전에도 기존의 체제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얼마나 부당하고 폭력적인 것이었는지를 폭로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세계를 다르게 써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따라서 내란을 막아내고 윤석열을 단죄한다고 기존의 체제로 다시 회귀할 수는 없게 되었다. 12월 3일 이후에 새롭게 당도할 체제는 기존의 사회적 권력관계와 부정의까지도 문제 삼으며 건설되어야 한다.


최성용 성공회대학교 열림교양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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