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글] 슬기로운 AI 생활
글 박태근〈참여사회〉편집위원장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책을 만들고, 온라인 서점에서 MD로 책을 팔고, 여러 매체에서 책을 알려왔습니다.〈참여사회〉 ʻ읽자’ 코너에서 필자로, 편집위원회에서 편집위원으로 오래 활동하다 편집위원장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고백부터 해야겠습니다. 저는 AI를 사용하지 않습니다.1 과거 구글링이란 단어가 ‘검색을 하다’는 표현으로 쓰였듯 이제는 챗GPT에 물어봤다는 말이 ‘AI를 활용했다’처럼 쓰이니, 챗GPT에 접속조차 해보지 않은 저는 AI 문맹이 분명하겠습니다. 특별한 소명이나 대단한 의지 때문은 아니고 어쩌면 귀찮아서, 아마도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끌려갈까 두려워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AI를 어떻게 쓰는지, AI를 무엇이라 생각하는지를 살펴볼 기회가 생기는 것도 같습니다. AI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람들은 제가 AI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가, 말미에 이런 상황을 전하면 깜짝 놀라곤 합니다. 쓰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활용법을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느냐는 반응입니다. 오늘날 AI를 둘러싼 논의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 아닐까 싶습니다.
더불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메타버스, NFT(대체 불가능 토큰). 불과 몇 해 전에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해 한때는 세상 모든 것이 이 단어들로 설명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어느새 생소한 느낌마저 드는 현실입니다. 물론 기술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관찰자 입장이니 각각의 단어가 세분화되고 변용되어 뻗어나가고 있는 상황을 충분히 알지 못해 생긴 착오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비전문가 혹은 시민 일반은 이 격차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출판계만 보더라도 해당 어휘가 담긴 책들이 한동안 쏟아져 나왔으나 지금은 어떤 책에도 그 단어를 붙이지 않고, 이제는 AI가 그 자리를 대체한 상황입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거센 파도처럼 몰려왔다가 쓸려나가는 흐름에 떠밀리지 않고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충분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전할 방향을 찾는 것은 촌각을 다투는 경쟁 속에서 너무 철없는 태도일까요.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가거나 발맞추는 게 불가능한 정도의 상황이라면, 생각을 달리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최근 국내 언론을 통해 소개된 미국의 현실이 참고가 되겠습니다. 2010년대 초반에 시작된 코딩 교육이 현장에 영향을 미치며 관련 분야 학부 졸업생이 불과 10년 만에 두 배가 늘었는데 AI 활용이 본격화되며 해당 업무를 훨씬 빠르게 수행하게 되면서 기업에서 관련 신규 채용을 크게 줄여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초등학생부터 코딩을 배워야 한다며 열풍이 불었는데 달라진 현실에 맞춰 어떤 조정이 필요할지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해가 있을까 하여 다시 고백하자면, 저는 기술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새로운 물건과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지금은 반성하지만 수년 동안 매해 새로운 버전의 스마트폰으로 바꾸며 살아왔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종이 신문 구독자이기도 합니다. 이미지가 큰 역할을 하는 라이프스타일 잡지는 태블릿으로 읽고, 작가와 나의 호흡을 맞춰가며 읽는 소설은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으로만 읽습니다.
이렇듯 구체적인 사람,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로 환원될 수 없을 텐데 세계 전체는 마치 모두가 정답이라 확신하고 동의한 듯 AI가 보편이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AI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습니다. 향후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투자자들은 AI가 과도하게 부풀려졌는지, 실제로 이익을 낼 수 있는 시도인지 물음표를 붙이고 있습니다. 주로 온라인 서비스로 활용되는 AI가 이제는 기존의 물질세계와 적극적으로 만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할 거라며 ‘피지컬 AI’2가 새로운 키워드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AI 뉴스를 보면 어느 쪽이 현실에 부합하고 미래에 적중하는 예상일지, 이제 저는 두렵기보다는 모르겠다는 마음에 가깝습니다.
당연히 알아야 합니다. 알고자 애써야 합니다. 손익 판단을 넘어 쓰임의 방향을 논의하고 정하려면 응당 그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변 환경은 녹록지 않습니다. 어디까지가 AI 이야기인지, 어디까지가 벌어진 일이고 어디까지가 벌어질 일일지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챗GPT도 명쾌하게 답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참여사회〉에서는 이 물음을 동시대 비슷한 경험과 고민을 가진, 더불어 한 걸음 나아갈 방향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고 답을 구해보고자 합니다. AI를 주도하는 연구자나 기업가, 정책 입안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의심하고 점검해 봐야 할 것들, 되묻고 확인해 봐야 할 것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쩌면 불과 며칠 사이에 이 모든 논의가 무용해지는 변화가 벌어질 수도 있을까요. 그렇다면 다음 변화도 마찬가지로 일어날 수 있을 테니 두려움, 불안, 과열을 넘어 지금 우리의 책임과 최선을 차분하고 냉정하게 살펴보자는 제안을 드립니다. 여러분의 슬기로운 AI 생활을 위해서 말입니다.
- 이 원고 역시 어떤 AI도 활용하지 않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
-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 공간 등 자율 시스템이 실제 세계에서 인식·이행·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차세대 인공지능 기술로, 생성형 AI의 뒤를 이을 미래 핵심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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