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5년 11-12월 2025-11-05   74749

[여는글] 너무나 무거운 문제 앞에서

박태근 〈월간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책을 만들고, 온라인 서점에서 MD로 책을 팔고, 여러 매체에서 책을 알려왔습니다.
〈월간참여사회〉 ʻ읽자’ 코너에서 필자로, 편집위원회에서 편집위원으로 오래 활동하다 편집위원장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참여사회 11-12월호의 속표지 사진을 따왔다. '극우에 맞서기'라는 메인 이슈의 제목이 적혀 있다.

살다 보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마주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문제 앞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하시나요. 회사에서 맡은 일이 문제 해결과 갈등 조정이다 보니 관련한 책들을 자주 읽곤 합니다. 즉각적인 하나의 깨달음으로 마치 문제가 해결될 것 같고 이미 해결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호사가의 꾐이 횡행하지만, 머릿속의 문제가 아니라 당면한 문제 앞에서는 쉽게 힘을 잃고 맙니다. 현장의 문제와 경험을 바탕으로 풀이의 방법을 전하는 책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문제를 쪼개서 봐라. 둘째, 그중에서 가능한 일부터 살펴라.

문제를 쪼개서 보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오늘 하루를 잘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으면 기대 이상의 충만한 하루를 보내는 행운을 만나기도 합니다. 요즘 달력이 아니라 일력이 유행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력을 한 장 넘기면 누구나 해볼 법한 활동이나 제안을 만나게 되니까요. “쌀쌀한 바람에 국물 요리가 점점 반가워지는 제철. 오늘은 따뜻한 국물 요리로 몸을 데워요. 내가 고른 메뉴, 먹으며 나눈 대화, 본 풍경을 여기에 적어보세요.”1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하루를 채우기에는 충분하지 않은가요.

가능한 일부터 살피라는 말은 용기를 주는 동시에 다른 이유로 미루거나 피하지 말라는 채근이기도 합니다. 불가능한 일을 앞세우고 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더는 할 수 없는 상황이 자연스레 만들어지니 종종 이런 상황에 기대어 쉬거나 멈추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정말 힘들고 지칠 때는 그렇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습니다만, 자칫 방심하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문제로만 가득 차 풀 수 있는 문제가 하나도 없는 상황을 맞닥뜨릴지도 모릅니다. 인생 한 방이라는 말은 한 방을 조심하라는 말이지, 한 방에 해결하겠다며 호기롭게 나서라는 말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사에서 마주하는 문제와 사회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는 규모도 층위도 복잡성도 난이도도 다르겠지만, 문제를 대하는 기본자세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적어봅니다. 첫째, 문제를 쪼개서 봐라. 둘째, 그중에서 가능한 일부터 살펴라. 이번 호의 주제 ‘극우’를 대입해 봅니다. 이 문제 혹은 물음은 출발부터 쉽지가 않습니다. 이쪽에서 저쪽을 극우라고 지칭하는데 저쪽에서는 우리는 극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한 걸음 나아가 극우는 잘못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네, 답답하시죠.

그러면 문제를 어떻게 쪼개서 볼 수 있을까요. 집단 전체를, 존재 자체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발언과 행동 가운데 무엇이 극우인지를 규명하고 지적하는 겁니다. 의외로(?) 이 방법은 극우가 즐겨 쓰는 전략·전술이기도 합니다. 극우 다수는 스스로를 총체적으로 전면적으로 정체화하거나 체계화하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산발적인 장면과 상황에 호응하고 참여하여 ‘그날의 극우’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그러니까 마치 앞서 소개한 일력처럼, 한 해 전체를 그리거나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충만한 하루를 보내고, 그 날들이 쌓이면 어느덧 굳건한 극우의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방법 ‘가능한 일부터 살피라’는 어떨까요. 꾸준히 극우의 발현과 확산을 우려했고 지적하며 몰아내려 했으나 근래 한국사회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극우는 활황을 맞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이 방법을 적극 활용하는 건 바로 극우입니다. 극우의 정당성을 마련하고 설파하는 이들은 드물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가능한 일, 그중에서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 예를 들면 태극기를 집어드는 일, 그에 더해 성조기를 함께 드는 일에 집중합니다. 이렇게 가능한 일을 쌓으며 자신감을 얻게 되면 종종 불가능한 일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 일들 자체가 반인권적, 반헌법적이라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극우라는 문제 혹은 물음을 어떻게 쪼개고 어떤 가능한 일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이번 호에서는 지난한 논쟁보다는 당면한 상황에 주목하고,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앞서 구체적인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을 앞서 막아서고자 합니다. 물론 문제를 쪼개고 가능한 일부터 살핀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멀리서 문제 전체를 보다가 바로 앞의 문제 자체를 놓치지 말자는 제언입니다.

저는 종종 극우의 성실함과 참신함에 놀라곤 합니다. 미국 중앙정보국, 즉 CIA에 특정 연예인의 입국을 막아달라는 메일을 보내기도 하니까요. 이 역시 앞서 수차례 강조한 두 가지 방법론에서 비롯한 시도일 겁니다.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적절한 내용이었다면 유효한 성과를 얻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이번 특집에서 맞춤한 내용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방법은 이미 충분히 알려드렸으니까요.

  1. 《오늘의 제철 행복》, 김신지, 인플루엔셜,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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