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헌법, 시민이 다시 쓰자

헌법 개정 과정에서 시민은 없었다
우리 헌법은 1948년 제정 이래 총 아홉 차례 개정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당시 권력자, 즉 독재자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개헌이 이뤄졌다. 이승만의 재선과 장기집권을 위해 진행된 1차 개헌(발췌 개헌)이나 2차 개헌(사사오입 개헌)이 그렇다. 박정희가 군사쿠데타 이후 진행한 5차 개헌,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위해 진행한 7차 개헌(유신헌법), 전두환이 7년 임기의 대통령 간선제를 도입한 8차 개헌도 마찬가지다. 4.19혁명 이후 이뤄진 3차 개헌과 4차 개헌, 1987년 6월항쟁 이후 이뤄진 9차 개헌은 시민들의 요구가 일부 담겼다. 이 시기 개헌 역시 법률전문가들의 손으로 헌법이 만들어졌을 뿐, 시민들의 참여는 없었다. 시민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이미 만들어진 헌법안을 추인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우리의 현행 헌법은 1987년 시민들의 군부독재 타도와 대통령직선제 요구 투쟁, 즉 6월민주항쟁의 자랑스러운 결과물이다. 당시 노태우는 6.29선언을 통해 정치적 타협을 시도했고, 여야 8인의 밀실협상으로 한 달여 만에 개헌안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소수 정치인들이 협상으로 헌법안을 만들어졌기에 그 한계도 분명했다. 헌법 개정 과정에서 투명성과 시민의 참여는 전혀 없었다. 또한 1987년 체제는 권력구조 설계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권한, 타협의 산물인 대통령 임기 5년과 국회의원 임기 4년의 불일치는 대한민국 정치의 역동성을 만들기도 했지만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바로 헌법제정권자이자 개정권자인 시민(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직접 통제하거나 회수할 방법, 필요시 직접 행사할 방법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는 구조적 문제였다.
헌법의 치명적 허약성을 드러낸 12.3 내란
우리 헌법의 치명적 한계와 민주주의의 허약함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태가 바로 윤석열 일당이 일으킨 12.3 내란이다. 계엄군과 경찰을 동원해 헌법기관을 침탈,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장기독재를 꿈꾼 12.3 내란이 일어나자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여의도 국회앞에서, 남태령과 관저가 있는 한남동에서, 다시 헌법재판소앞 광화문에 모여 광장을 열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에 윤석열을 탄핵소추하라 요구했다. 경찰과 공수처, 검찰 등 수사기관과 법원에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체포하고 구속하라 요구했다. 헌법재판소에는 8:0 만장일치로 윤석열을 파면할 것을 요구했다. 123일여가 지나고 헌법이 규정한 절차대로 계엄해제와 탄핵소추, 체포 구속, 파면 결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헌법의 취약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12.3 내란은 무엇보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군통수권과 계엄권 등의 여러 권한을 남용하여 일어난 정치사법 엘리트들의 반란이었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고위공직자들과 국가기관들은 미적대거나, 때로는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무엇보다 헌법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권력자가 내란을 일으켜도 정작 주권자 시민들은 광장에 나서 공직자들과 국가기관에 무엇인가 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 말고 ‘직접’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헌법은 구조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이 주권자 시민들에게 부여된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과 엘리트 권력자들에게만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시민들은 법원이 내란 우두머리를 풀어줄까 여전히 걱정해야 한다. 내란 일당에게 법정최고형 등 중형을 선고할지도 아직까지 미지수이다. 사법권을 법원과 판사들이 독점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불안은 계속된다. 내란을 완전히 종식하고 재발을 막으려면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한을 줄이고, 엘리트와 권력기관에게만 권력과 권한을 부여하는 이런 헌법의 부당한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헌법 교과서에만 나와 있는 권력이 아니라 헌법제정권자 시민들이 헌법의 개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주권자 스스로 권력을 회수하거나 직접 행사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한다.
개헌절차법 제정, 시민이 헌법개정 과정에 참여하는 방법
헌법개정 과정에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법률로 보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년 9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시민개헌넷은 ‘헌법개정 절차에서 시민의 참여 보장에 관한 법률(약칭 개헌절차법)’의 제정을 주장해왔다.
헌법개정은 국회의 표결 이후 최종적으로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 조문과 개정안이 다 만들어진 후에야 진행되는 찬반투표만으로는 시민의 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헌법의 어떤 부분을 고칠지 개정 논의를 시작하고, 새로운 헌법 개정안을 검토하고 작성하는 과정에서부터 시민들의 의견이 다양하게 수렴되어야 한다. 권력구조나 기본권 신설 등 의견이 엇갈리는 쟁점에 대해서는 충실한 토론도 필요하다. 정치인들 뿐만아니라 시민들도 관련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그 토론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헌법개정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청사진을 만들어내는 명실상부한 과정이자 사회통합을 이뤄내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개헌절차법에 담겨야 할 주요 내용
개헌절차법에는 법의 목적을 헌법개정 절차에서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못박을 필요가 있다. 개헌절차법에 들어가야 할 구체적인 시민참여 방법은 다음 방안들을 포함해야 한다.
첫 번째 방안은 시민의회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시민의회는 성별·연령별 및 지역별, 소득별 분포에 비례하여 무작위로 추출한 500명 내외의 시민들로 구성한다. 숙의를 통해 시민의회는 헌법개정안 시민기초안을 확정하고, 개헌특위에서 심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민의회의 참여자들에게는 전문가의 정보 제공, 충분한 토론 시간, 예산 지원을 법적으로 명시하여 정치권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된 논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두 번째 시민참여 방안은 풀뿌리원탁회의 방식이다. 풀뿌리원탁회의란 일정한 읍면동에 주소 또는 연고(소속 직장·소속 학교·소속 단체 등)가 있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결성하는 조직이다. 이 풀뿌리원탁회의가 헌법개정 관련 청원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풀뿌리원탁회의의 설립은 자유이며, 5명 이상이면 누구라도 구성할 수 있도록 한다. 풀뿌리원탁회의의 개헌안은 주민자치회의 심사, 기초 지방의회의 심사, 광역지방의회의 심사를 거쳐 모두 채택된 경우 개헌특위에 송부되어 심의하도록 한다.
마지막 방안은 온라인 국민개헌청원 방식이다. 이미 익숙한 국민동의청원을 원용하여 국민개헌청원을 하려는 자는 일정 기간 동안 일정 수 이상 국민의 동의를 온라인으로 받도록 하자. 5만 명 이상 국민의 동의를 얻은 청원안은 국회 헌법개정특위에 제출하여 심의하도록 하면 된다. 추가로 개헌절차법에는 국회의장에게 시민참여 과정에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풀뿌리원탁회의 청원과 국민개헌청원을 위해 온라인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개헌을 향한 첫걸음, 개헌특위 구성과 국민투표법 정비부터
39년된 헌법의 개정에 대한 시민적 공감대는 크다. 지난 21대선 후보들은 물론 20대와 19대 대통령 후보들은 개헌을 약속한 바 있다. 2025년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국정과제 1호로 개헌을 제시하기도 했다. 2026년이 시작됐지만 개헌 논의는 아직 첫 걸음을 떼지 못했다. 당장의 현안에 밀리고 있으며, 기득권을 차지한 집권여당과 야당은 개헌 논의를 계륵으로 여기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개헌을 실질화하고, 개헌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먼저 나서야 한다. 개헌의 절차와 내용을 이야기하려면 국회 개헌특위의 구성은 필수이다. 개별 정당의 정치적 득실이 아니라 지금 시기 개헌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개헌특위를 구성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
국민투표법도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 지금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국민투표를 진행할 수가 없다. 이것은 헌법재판소의 2014년 헌법불합치 결정에도 불구하고, 국민투표법을 개정하지 않은 국회의 직무유기 때문이다. 재외국민과 18세 이상 국민을 국민투표권자로 규정하고, 국민투표운동을 예외적 허용 방식에서 예외적 금지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전부개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헌법, 우리 시민이 함께 쓰자
국회가 허송세월하면서 2026년 지방선거 동시개헌은 물 건너 갔다며 회의적인 의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2026년 지방선거 동시 개헌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개헌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비용을 아끼기 위해 꼭 지방선거 동시개헌을 해야 할 이유는 크지 않다. 9차 개헌도 별도로 국민투표가 진행된 바 있다. 국민투표 비용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청사진을 만드는 개헌을 위한 비용으로 결코 많은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은 어려움이 있어도 뚫고 나가야 하는 일도 있다. 2026년이 밝아오는 지금 이 시기, 개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비록 여러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지금 개헌 논의를 시작하지 않으면 더욱 늦어질 뿐이다.
시민들도 움직여야 한다. 헌법을 바꾸고 싶다면 모든 공론장과 공간에서 개헌 논의를 시작하자. 개헌에 동의하는 단체들과 사람들을 조직하자. 헌법의 어떤 조문이 바뀌거나 추가되면 내 삶이 바뀔지 상상하자. 성평등과 생명권과 안전권, 돌봄권, 노동권, 정보기본권 아직 헌법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더 많은 기본권을 이야기하자. 집중된 권력을 어떻게 나눌지, 어떻게 더 많은 민주주의를 보장할지 이야기하자. 개헌 과정과 절차에서 시민의 참여를 증진하고 보장할 방법을 찾자. 그렇게 토론하고 숙의하자. 대한민국의 새로운 헌법, 우리의 손으로 함께 쓰자.

글 이재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24년차 활동가로 현재 시민주도헌법개정전국네트워크(이하 시민개헌넷)과 함께 2026년 개헌을 현실화하기 위한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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