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 ‘못된 재난피해자’와도 기꺼이 연대하는 이유 – 장은하 회원
글 박효원
사진 정인욱 작가

4월이 돌아왔다.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4월은 여전히 아프고 쓰린 계절이다. 그해 4월, 세월은 가도 세월호는 잊지 않겠다고, 다시는 이처럼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많은 사람 중에 장은하 회원도 있다. 선배를 따라 쭈뼛쭈뼛 처음 광장을 찾았던 그는 재난피해자 곁을 떠나지 못했다. 4.16연대·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등을 거치면서 활동을 이어갔고, 2년 전부터는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우리함께’는 재난피해자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정책연구, 피해자 지원, 인식개선 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단체다. 하는 일에 비하면 규모가 좀 심하게 작다. 센터장을 비롯해 4명의 활동가가 전부다. 장은하 회원은 주로 정책연구와 정책제안 사업, 재난피해자를 강사로 양성하고 파견하는 사업, 피해자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구술기록 및 콘텐츠를 만드는 사업을 담당하고, 때에 따라 센터와 연대하고 있는 재난피해자 단체들의 현안에 조력한다. 4월에는 세월호 참사 추모 사업이 많아 더욱 바쁘다. 인터뷰 전날(4월 16일)까지 그는 세월호 참사 기억식에서 실무를 맡아 종일 분주했다.
장은하 회원은 두 개의 팔찌를 차고 인터뷰 장소로 나왔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색 팔찌, 스텔라데이지호 참사를 추모하는 오렌지색 팔찌. ‘역시나’ 싶었는데, 의외로 그는 “팔찌는 상황에 따라 의도적으로 안 차기도 해요. 가방에 이미 8개의 추모 리본을 달고 다니고 있기도 하고, 상징색이나 팔찌가 없는 다른 재난 피해자분들이 속상해 하시는 걸 보고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라고 했다. 필요할 때만 추모 팔찌를 찬다는 그의 패션에서 다양한 피해자들을 조력해 온, 그리하여 여러 피해자의 마음을 섬세하게 살피게 된 활동가의 내공이 느껴졌다.

이렇게 오랫동안 피해자와 함께해온 활동가지만, 피해자들과 늘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입기도 한다. 활동 초기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을 깼다는 장은하 회원은 ‘순수한 피해자’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와 잘못된 기대를 지적했다. 피해자는 적당히 선하고 적당히 악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며, 그가 어떤 사람이든 피해자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은 참 강고하다. 지금도 재난 참사 기사에는 피해자가 얼마나 ‘성실한 가장’이거나 ‘꿈 많은 청년’이었는지 눈물겨운 사연이 이어진다. 열심히 착하게 살아온 사람만 권리를 보장받는다는 듯이.
‘재난피해자 권리’에 대한 끈질긴 편견, 반복되는 참사와 지연되는 진상규명. 변화는 너무 더디고 강인한 활동가도 종종 지친다. 그 역시 마찬가지다. 오랜 싸움에서 버텨야 하는 피해자와 활동가들을 위해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장은하 회원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 기억 리본을 매고 ‘당신을 지지하는 내가 있다’고 보여주는 행동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재난피해자권리운동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저는 스스로를 ‘4.16 세대’라고 정의해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삶이 바뀐 사람이거든요. 이전에 사회운동을 해본 적이 없었고, 그해 봄·여름까지만 해도 참사 얘기를 듣지 않으려 했어요. 알면 행동해야 하니까요.(웃음) 그러다가 광화문 광장에 가게 됐어요. 좀 뻔한 레퍼토리인데 선배가 밥 먹자고 꼬셔서 넘어간 거죠. 불러낸 데가 광장이었고 거기서 유가족을 만났어요.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 가족이 왜 살아 돌아오지 못했는지 알고 싶어 하는,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누구나 저 자리에 설 수 있는데 나는 그저 운이 좋아서 여기 있구나’ 싶었죠. 그해 가을·겨울은 유가족들의 말을 경청하면서 보냈어요.
그러다가 마음을 더 내서 다니던 대학 안에서 세월호 참사 추모 활동을 하게 됐어요. 꽤 큰 결심이었는데 일단 시작하니까 함께할 사람들이 생기더라고요. 열심히 활동하다 보니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대학생 단체의 대표도 되었고요. 그러면서 4.16연대 일도 했고 나중엔 전업 활동가가 되었죠. 이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 별로 고민하진 않았어요. 활동이 재미있었거든요. 참 다행히 저를 도와주는 분들도 많았고, 제가 기획한 활동으로 무언가 바뀌는 경험도 좋았고요. 사실 처음엔 1~2년 바짝 열심히 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참 순진했죠.(웃음) 결국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재난 참사에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고 피해자의 권리는 무엇인지, 세월호 참사를 시작으로 조금씩 논의가 되고 있지만 아직 사회적 이해나 합의는 부족한 것 같아요. “피해자의 요구라면 다 들어줘야 하냐”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제가 생각하는 ‘재난피해자의 권리’는 이런 것들이에요. 자신이 겪은 참사의 진실을 알 권리, 자신의 이야기와 주장을 말할 수 있는 권리, 관련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질 때 참여할 권리, 고통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받을 권리, 각자의 명예를 지키고 2차 가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피해자가 당연히 요구할 수 있고, 또 사회가 보장해야 하는 것들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순수한 피해자’, ‘순수한 유가족’만을 바라고 기대해요. 피해자에 대한 가장 큰 오해죠. 피해자가 권리를 위해서 싸우지 않고 그냥 슬픔에 겨워하다가 사회가 해주는 만큼의 지원을 감사히 받길 요구하는 거예요. 그에 맞지 않으면 “피해자답지 않다”고 비난하고요.
물론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권리를 보장해야 할지에 관해선 논의가 필요하죠. 하지만 지금은 국가가 피해자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없어요. 투명한 소통도 없고요. 제주항공 참사 초기에 국과수 등 관계자 분들이 현장에서 유해 수습을 위해 열심히 애써주신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어떤 지점이 부족했다,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고 당사자인 유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들었어야 해요. 그런데 “우린 책임을 다했어. 100% 다 수습이 이뤄졌어.”와 같은 식으로 소통했는데, 추후 현장에서 유해가 발견되며 거짓말로 들통나니까 신뢰가 깨지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는 (피해자 권리 보장의 범위와 방식 등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어요.
벌써 11년 차 활동가인데 그동안 기억에 남는 일도 많겠어요.
너무 많죠.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세월호 참사 1주기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무슨 행사에서 제가 발언하러 앞으로 나갔어요.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는 것부터가 너무 떨리는데, 앞에서 삭발한 유가족들이 영정 사진을 안고 엉엉 울고 있는 거예요. 그때 제가 “잊지 않겠다.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해 버렸어요. 지금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약속인데(웃음), 그 약속 때문에 지금까지 이 일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진심이었거든요.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인상적이었던 일은 어제 기억식이에요. 이재명 대통령이 올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피해자 유가족들이 연대 조끼에 스텔라데이지호 참사에 대한 메시지를 달았어요. 참사 9주기가 되기 전에 심해를 수색하자는 내용이 적힌 동그라미를 조끼에 붙인 거죠. 그냥 종이에 인쇄한, 투박한 메시지였어요. 그래서 더 좋았어요. 자신이 겪은 참사가 아니라 스텔라데이지호 참사를 위해 여러 유가족이 마음을 낸 건데, 각자 자신의 사안이 간절한 피해자가 그렇게 나선다는 게 정말 쉽지 않거든요.

맞아요. 누구든 자기 고통이 너무 크면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죠. 사람들을 날카롭게 대하거나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굳건히 연대하는 피해자는 일종의 ‘판타지’ 아닐까 싶어요.
저도 활동 초기에 ‘피해자다움’에 대한 기존의 생각이 많이 깨졌어요. 이 사건 아니라면 말도 안 섞었을 것 같은, 저랑은 전혀 생각의 결이 반대인 피해자도 종종 마주하죠. 가끔은 저를 오해해서 원색적 비난을 하는 피해자도 있고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분들은 어쩌다 사회적 재난을 겪었을 뿐 그냥 평범한 사람이잖아요. 특별히 남들보다 올바른 사람이나 대단히 인격적인 사람이 아니고요. 물론 너무 힘들 때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 확 때려칠까?’ 싶을 때도 있지만, 활동을 오래 하면서 이제는 내성이 생긴 것 같아요.
덜 몰입하려 애쓴다 해야 할까요? 여전히 마음은 아프지만,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기보다 어떻게 이 문제를 전달할지에 집중하려 하는 거죠. 그리고 피해자의 뜻을 그대로 따르는 게 활동가의 역할이라고 보진 않아요. 운동의 방향에 맞춰서 피해자와 활동가가 함께 연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태원 참사 당시 많은 시민이 “세월호 이후에도 우리 사회가 바뀐 게 없다”고 한탄했습니다. 크고 작은 참사가 반복될 때, 재난피해자 권리를 위해 싸우는 활동가로서 감정적 타격이 클 것 같아요.
그럴 때가 정말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이에요. 너무 슬프고 우울하죠. ‘내가 이러려고 운동했나’ 자괴감도 들고요. 때로는 울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재난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조금씩 바뀐 점이 있거든요. 그런 변화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유난히 힘든 날들이 찾아올 때 회원님은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티시나요?
마음이 상하면 그때그때 풀려고 해요. 동료 활동가나 주변 사람들에게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또 일어난 일에 대해서 글을 써보기도 하고요. 그리고 취미 활동을 합니다. 요즘은 되도록 일찍 퇴근해서 운동을 해요. 또 틈틈이 노래를 듣고 공연도 보러 가고요. 소소하게는 집에서 동물 영상을 봐요. 일하면서 사람을 워낙 많이 만나니까 (사람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안 보게 되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안 되면 병원에 가고 상담도 받아요.
재난피해자들이, 그리고 그 곁에 선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도록 시민들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피해자들의 말에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피해자들이 이야기할 때 혹시 다 이해되진 않더라도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래?’라고 넘기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은 어떤 삶을 겪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공감하면서 들어주면 좋겠어요. 그러다가 마음이 된다면 재난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를 후원하거나 (관련 콘텐츠 등에) 응원하는 댓글을 남길 수도 있고요. 기억 리본을 매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당신을 지지하는 내가 여기에 있다”고 보여주는 행동이니까요.
2023년에 참여연대 회원으로 가입하셨어요. 함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처음 4.16연대에서 막 활동가가 되었을 때, 단체에 현안이 워낙 많아 업무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늘 참여연대의 활동을 지켜보며 공부했던 거 같아요. 기자회견문 문구도 살피고, 캠페인도 어떻게 하는지 살피다 보니 자연스레 응원하게 됐어요. 그렇게 지켜보다가 마침 지인으로부터 회원가입 권유를 받고 2023년부터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다음 해인 2024년부터 회원모니터단 7기로, 그리고 2025년에는 운영위원으로 참여하셨고요. 게다가 총회, 회원토론회, 신년 기자회견까지 정말 많은 곳에서 함께해주셨어요. 어떻게 발을 담그게 됐는지, 그리고 어쩌다가 점점 활동을 넓혀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수시로 들락날락하거든요. 그러다가 회원모니터단 모집 공지를 봤죠. 어떻게 운영하는지 궁금해서 신청을 하고 활동도 하게 됐어요. 그리고 다음 해에는 운영위원으로도 추첨이 됐다고 전화를 받았고요. 제가 여성이고 청년이고, 게다가 당시에는 강원도에서 일할 때라서 수도권 이외 지역민이기도 하니까 좀 더 쉽게 뽑힌 것 같아요. 사실 ‘내가 다른 단체 활동가인데 참여연대 운영위원을 해도 되나’ 하는 고민도 있었는데, 참여연대의 담당 활동가가 되게 슬픈 목소리로 “운영위원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하는 거예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더라고요.(웃음) 이전부터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어서 더욱 가까이서 함께 살펴보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다양한 여성·청년의 참여를 확대하려고 일일이 전화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멋져서 함께하게 된 것 같아요.
1년간 운영위원 활동을 해본 소감은 어떠세요?
우선 ‘참여연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싶었어요. 사업과 조직을 바꿔보려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고 답변하더라고요. 그분들과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운영위원회에 나가고 있어요. 실제로 여러 의제를 공부하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제가 계속 재난 참사 관련 활동만 하다 보니 사실 다른 의제는 잘 모르거든요.
요즘 회원님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이제 연차가 좀 되다 보니 ‘나는 좋은 활동가인가. 과연 활동가로서의 나의 전문성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 있어요. 활동에 익숙해져서 기자회견도 준비하고 행사 사회도 보고 이것저것 다 할 수 있지만 제가 딱히 어느 하나를 잘하는 것 같지 않거든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동료들이 잘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내가 잘 만들고 있나’ 하는 질문도 스스로 던지게 돼요. 활동가 역시 재난과 안전 운동의 엄연한 주체인데 혹시 피해자의 목소리에만 매몰되어 활동가로서 관점을 잃고 따라가며 피해자의 뒤에 숨는 건 아닌지, 때로는 사적인 친분이나 걱정하는 마음에 활동가로서 지켜야 할 적절한 선을 넘어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활동 말고는… 제가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새가 나오는 영상을 보거든요. 항상 유튜브로만 봤는데, 올해는 탐조를 직접 해보는 게 소소한 목표이자 관심사입니다.
오, 지난 1-2월호 회원인터뷰의 주인공인 황예린 회원님이 ‘방구석 탐조인 연합’ 기수인데 두 분이 함께하시면 되겠어요.(웃음) 마지막 질문드리고 얼른 마칠게요. 나에게 참여연대란?
안 그래도 그 인터뷰를 보고 참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음, 나에게 참여연대란… 보험 같은 곳? 항상 든든하게 기대는 안전망이자, 함께 사회를 바꾸기 위해 고민하는 단체이자 공간 같아요. 함께 조금씩 사회를 변화시켜 보다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에서 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여연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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