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6년 05-06월 2026-05-06   23280

[오늘하루 지구생각] 어떤 목소리가 식량안보를 지킬 수 있을까?

씨앗 심기 ⓒ일러스트 최원형

모든 전쟁에 반대한다. 명분이 무엇이든 말이다. 그런데 전쟁은 종종 기묘한 사실들을 깨닫게 하기도 한다. 호르무즈해협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통행이 수월했더라면 쓰레기 종량제 봉투도, 링거액을 담는 비닐백도 모두 그곳을 통과하는 배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었을까? 우리의 일상이 유지되는 배경에 호르무즈해협이 이토록 가깝게 연결돼 있다는 걸 알고 나면 오싹해진다. 오랜 시간 지구의 대표적인 화약고였던 바로 그 지역에서 우리나라 원유의 70%를 실어와 우리의 일상을 유지했다는 것 자체가 거의 기적 같은 일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전쟁 발발 이후 해협 내에 우리나라 선박 26척이 묶여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이 상황이 지속되면서 벌어질 여러 문제가 하나둘 뉴스를 채우면서 가장 먼저 문제가 된 품목이 쓰레기 종량제 봉투였다. 우리집은 5리터짜리 10개 한 묶음을 반년 가까이 사용하는데, 하필 그 무렵 봉투가 달랑 한 장이 남았다. 마트에서 몇 가지 필요한 물건을 계산하며 계산원에게 5리터 쓰레기봉투 한 묶음을 달라고 했더니 ‘요새 못 구해요’란다. 처음 겪는 일이라 황당했다. 장을 봐서 집으로 오는 길에 5리터 쓰레기 봉투 한 장으로 버틸 시간을 최대한 늘리는 방법을 생각해 봤다. 길게 생각할 것 없이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하면 될 일이다. 만약 그 한 장을 다 쓰도록 나프타를 뽑을 원유가 도착하지 않는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다가 나의 안일함이 부끄러웠다. 지금 내가 걱정하는 게 고작 쓰레기 버릴 봉투였다니. 느닷없는 폭격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집을 잃은 사람들에 비하면 이건 걱정이라는 말조차 사치 아닌가. 전쟁의 참상은 나프타 부족과 그로 인해 우리가 겪게 될 ‘불편’에 가려져 있다.

나프타 부족으로 뉴스가 도배되면서 가려진 게 또 있다. 원유와 농업의 관계다. 사실 오늘날 농업은 석유 기반 시스템 위에 있다. 트랙터, 콤바인, 관개 펌프 등은 대부분 디젤을 사용하고 있고 대규모 농업일수록 석유 의존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 비료 특히 질소비료의 경우 천연가스(화석연료)로 암모니아를 생산하고 있다. 농약, 비닐하우스 필름, 멀칭 필름 등으로 생각이 번져나갈수록 쓰레기 봉투나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인지가 드러난다. 이게 끝이 아니다. 농산물 수확, 저장, 가공, 유통 등 전 과정 역시 석유 기반 물류에 의존하는 구조다. 우리나라 농업 분야에서 석유 사용 비중은 국가 전체 에너지의 2~3%이다. 원유가 원활히 공급되지 않을 경우 모든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테고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또한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0% 이하다. 8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글로벌 곡물 기업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놓여있다는 의미다. 현재 전 세계 곡물 시장의 80%가량을 소위 ABCD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rcher Daniels Midland, ADM), 벙기(Bunge), 카길(Cargill), 루이 드레퓌스 컴퍼니(Louis Dreyfus Company, LDC)라 불리는 4개의 곡물 메이저 기업과 중국의 국영기업인 COFCO를 포함한 다섯 개 기업이 점유하고 있다. 전 세계 곡물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은 불안 요인이 발발했을 때 곡물 가격을 조정하는 힘을 가졌다는 뜻이다. 특히 거대 곡물 기업들은 전쟁이나 이상기후라는 변수가 작동할 때 선물시장에 진출해서 막대한 시세 차익을 실현한다.

지금처럼 불안한 국제 질서 속에서 생존의 필수재는 식량이다. 농업 인구가 전체 인구의 5%도 채 되지 않는 인구구조에서 농업은 선거에 어떤 변수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다. 식품 매장을 채운 많은 식품의 뿌리를 좇아가다 보면 거대 곡물 기업에 가닿는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게다가 식량 지도는 계속 북상 중에 있다. 재생에너지도 중요하고 주식도 중요하고 부동산 이슈도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생존의 기본권인 그래서 식량안보라 불리는 식량에 대해서는 왜 이토록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기후 위기에 이르게 된 것은 산업 전반이 탄소에 중독돼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농업마저.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 종식되고 호르무즈해협이 예전처럼 열린다고 해도 우리는 화석연료 이후의 시대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이미 와 있다. 석유가 무한한 자원도 아니고, 기후 시스템 붕괴를 직면한 상황에서 탈탄소를 향한 행보는 더 바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협이 정상화되길 기다리지 않고 치솟는 비료 가격을 타개할 매우 현실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는 소식은 이 와중에 희망이다. 특히 날마다 버려지는 배설물을 필요한 자원으로 재생하는 기업이 있어 눈길을 끈다. 영국 브리스톨의 스타트 기업인 엔피케이 리커버리NPK Recovery는 런던 마라톤 등 여러 행사장에서 수거한 소변을 정제해서 비료를 만들고 있다. 소변의 95%는 수분이고 나머지 5%에 포함된 성분이 질소, 인산, 칼륨 등 비료의 핵심 3요소다. 오염 물질이나 복용하는 약 성분 제거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있지만, 이런 시도야말로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브리스톨은 순환경제기업인 GENeco가 지역 주민의 대변을 혐기발효시켜 얻은 메탄으로 바이오 버스를 운영하는 도시로도 이미 유명하다.

현실을 직시하자. 호르무즈해협 통행이 재개되면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것은 허구에 가깝다. 화석연료 의존적인 삶에서 지속가능한 삶으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할 때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후, 식량주권 등 환경 공약이 우선순위에 오를 수 있도록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모아내야 할까?


최원형 환경생태작가의 프로필 사진.

최원형 환경생태작가

큰유리새의 아름다운 새소리를 다음 세대도 들을 수 있는 온전한 생태 환경을 바란다.《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착한 소비는 없다》, 《사계절 기억책》 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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