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6년 07-08월 2026-07-01   371

[회원 인터뷰] ‘미국은 대체 왜 저럴까’ 궁금했다면 – 이혜정 회원

이혜정 참여연대 회원 ⓒ박상환

요즘 국제정세는 참으로 혼란스럽다. ‘민주주의 종주국’을 자처하던 미국의 행태가 특히 그렇다. 설마 백주대낮에 한 나라의 대통령을 납치하겠어? 설마 핵 협상까지 진행하던 중에 이란을 침공하겠어? 그렇게 설마설마했던 일이 자꾸만 실제로 일어나버리는 것이다. 당연하다 여겼던 국제적 원칙과 절차가 잇달아 뒤집히면서 이제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말 그대로 국제질서가 무너지는 상황이다.

기존의 질서로 유지되던 낡은 세계는 이제 끝이 났는데,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렇게 질서가 사라진 지금, 국제정치의 공백을 채우는 것은 힘의 논리다. 거짓 명분으로라도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를 지향하던 국제정치는 그 ‘위선’조차 걷어치우고 있다. 이 거대한 흐름을 바꾸기엔 시민의 존재는 너무 무력하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우리는 이대로 야만의 시대를 맞이하는 것일까.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이자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인 이혜정 회원은 “국제질서가 망가졌다. 한국 외교의 전제도 다 무너졌다”고 진단했다.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부국강병해서 선진국이 되겠다는 성장 전략도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동시에 미래에 대한 지나친 비관도 경계했다. 이혜정 회원이 강조한 희망은 시민의 힘이다. 시민들이 선진국의 위선을 믿지 않고 자신의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으면, 그 힘으로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평화군축센터와 함께한 지 23년, 참여연대 회원이 된 지는 20년. 오랜 친구로 평화의 인연을 맺어온 이혜정 회원을 만나 복잡하고 어려운 국제정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보았다.


처음부터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게 되네요. 올해 초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이후 회원님이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반성을 했다. 미국이 정말 이 정도까지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다”라고 하신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제가 대학원부터 따져보면 몇십 년 미국을 연구한 전문가이고, 2015년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선에 뛰어들 때부터 그 특성을 정확하게 진단했거든요. 그런데도 베네수엘라에 관해선 미국이 무력 시위 정도에 그칠 거라고 오판을 했어요.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는 게 트럼프 정부 1기의 특성이었거든요. 나중에 다시 상황을 추적해 보니 베네수엘라에 들어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마약과 테러의 핵심 배후로 베네수엘라를 지목했고 카리브해 전역까지 봉쇄했는데, 이렇게 군사력을 동원한 상황에서는 대통령 위신이 걸렸으니 트럼프가 뭐든 해야 하는 거예요.

그때 반성의 결과로 (더 열심히 관찰하고 분석해서) 이란 침공은 제가 거의 확신했어요. 오만이 중재해서 핵 협상을 하고 있으니까 미국이 이란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있었는데 저는 ‘아, 저 정도 군사력을 동원하면 저건 (침공)하는 거다’ 생각했어요. 게다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조도 점점 강화되는 양상이었고요. 이번엔 다 맞췄어요. 미국이 결국 침공할 거고, 계획도 출구 전략도 없을 거라고요. 맞췄지만 비극이죠. 이런 건 사실 틀려야 좋은 건데.

말씀하신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이란 침공 사례는 국제질서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 같습니다. 2000년대 이라크 침공에서는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라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공을 들였잖아요. 물론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지긴 했지만요.

역사를 돌아보면, 지금은 자본과 생산이 국경을 넘고 전 세계 국가들이 자유무역을 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당연해 보이지만 그것도 냉전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국제질서예요. 이런 질서는 브레턴우즈 합의1에 따른 것인데, 이것도 당장 실현된 게 아니라 장시간에 걸쳐서 이뤄졌어요. 그 뒤 여러 차례 무역 협상을 거쳐 80~90년대에 농산물 수입이 자유화되고 그 뒤에서야 금융 자유화가 진행됐죠. 한국은 90년대 IMF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서 미국식 자본주의를 따라가게 되었고요. 그 결과 지금과 같은 각자도생의 능력주의 시스템으로 바뀐 거죠.

그런데 냉전 이후 이렇게 만들어진 국제질서가 이제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 정부는 사담 후세인이 핵을 개발한다면서 미 의회를 설득했죠. 유엔이나 동맹국도 같은 논리로 설득했고요. 그래도 미국과 공조한 것은 영국뿐이었지만요. 그런데 지금 미국은 전쟁을 시작하면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안 해요. 게다가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전쟁을 선포하는 것도 아니고 트럼프가 SNS에 (전쟁을 시작했다고) 써버리는 수준이죠. 기존의 국제질서가 완전히 망가진 거예요.

변화의 방향이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우아한 위선의 시대가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왔다”는 말도 나오더라고요.

국제정치라는 현실이 워낙 끔찍한 게임이라서 이익과 가치를 잘 조합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모든 국가가 자신의 위선과 싸우고 있죠. 그런데 사실 ‘우아한 위선의 시대’라는 건 없습니다. 언제나 ‘폭력적인 위선의 시대’였죠. 당하는 입장에서 위선은 우아할 수 없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이 ‘야만의 시대’냐 하면 그 정도로 세계가 무너진 것은 아니에요. 1929년 세계 대공황 당시 미국의 실업률이 25%까지 갔거든요.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에서도 미국 실업률은 최대치가 10%였어요. 전쟁 위기가 고조되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대리전으로 부딪히는 것이고, 이 상황이 전면적인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지나치게 과거를 낭만화하거나 미래를 비관하다 보면, 오히려 변화의 가능성을 놓칠 수도 있겠네요. 현실을 더 냉철하게 보고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제질서의 변화를 논하면서 한국 외교정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지금 대외 환경을 보면 기존 한국 외교가 전제한 기본값이 다 깨졌어요. 저는 ‘삼중 무질서’라는 말을 씁니다. 첫 번째는 인류 자체의 위기가 있죠. 그동안 인간 문명은 도구와 이성을 사용해 자연을 정복하면서 발전해왔어요. 그런데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이런 패러다임이 흔들리게 되었죠. 게다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인간과 도구와의 관계가 틀어지게 되었고요. 두 번째는 중국이 몰락한 19세기 이후 서세동점2 상황이 죽 이어졌는데, 이제는 서구가 문명의 표준이라는 질서가 깨졌어요. 그리고 세 번째로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까지 깨진 거예요.

이제 옛 질서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바이든 정부가 일부 복원하려 했지만 실패했고요.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미국에 전면 편승하려 했어요. 원래 보수 정부는 중국과 문제가 생기면 미국에 도움을 요청해 왔어요. 미국의 힘을 믿고 중국에 맞선 거예요. 그러다가 이제 미국도 중국을 힘으로 누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서 이념 공세를 중단하고 중국과 회담을 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여전히 미국에 올인하면서 중국을 압박한 거죠.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외교정책을 해야 할까요?

한국이 빠르게 경제성장을 하면서 축약형으로 발전한 나라인데, 외교도 축약형으로 했어요. 그리고 그동안 선진국이 되기 위해 미국의 체제를 들여왔죠.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부국강병해서 선진국이 되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무질서한 지금의 세계에서 ‘선진국’은 없어요. 게다가 미국이 이미 먼저 한국과의 전략동맹을 깼죠. 그래서 이재명 정부가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미국으로부터 오는 위협 요소를 줄여야 하는데,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생각해요.

회원님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는데도 역시 국제정치 이야기는 참 어렵네요. 제가 잘 따라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이렇게 복잡하다 보니 사람들이 관심을 두기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트럼프 또 왜 저러냐’, ‘쓰레기봉투를 구하기 어렵다’, ‘방산주가 올랐다’ 정도의 체감이 있을 뿐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 같거든요.

어려운 게 맞아요. 국가라는 것은 눈에 잘 안 보이고 국가 간의 관계는 더 그렇죠. 게다가 지금은 국제질서가 다 무너지고 있잖아요. 정치든 경제든 기존 교과서가 하나도 안 맞아요. 그래서 더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이 격변이 우리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어요.

쉽게 예를 들면, 지금은 전 국민이 주식투자를 하니까 잘 아실 거예요. 미국 연준3 의장이 누가 되는지가 한국에 사는 나의 주식에 영향을 미치는 거죠. 그리고 코스피가 올라도 환율이 안 떨어져요. 화폐가치는 국가의 힘에 의해서 결정되니까요. 그리고 복지 문제도 국제질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죠. 내가 낸 세금으로 복지를 강화하면 좋은데 (국제질서가 불안정해지면) 군비에 들어가거든요. 지금도 ‘미군의 안정적 주둔’을 이유로 주한미군은 5년 단위로 협상을 하고 있어요. (계약기간 동안) 한국 시민들의 뜻이 반영될 수 없는 경직성 예산으로 쓰이는 거죠.

이게 워낙 거대한 변화라서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캐나다 마크 카니 총리가 얼마 전 유명한 연설을 했잖아요. “강자는 힘을 가졌지만, 우리에게도 가식을 멈추고 현실을 직시하며 힘을 기르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요. 즉, 선진국의 위선을 믿지 않고 신화를 깰 수 있는 능력이 시민들에게 있다는 거죠. 가령 한미동맹이 더 이상 만병통치약이 아니라고 완전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시민들이 믿으면, 그게 여론이 되고 권력을 움직이는 거예요. 우리의 힘을 믿어야 해요.

어떤 평화주의자들은 방산주에는 투자도 안 하더라고요. (수익을 포기하더라도) 투자하지 말라고는 제가 말하지 못하겠어요. 국가도 그렇지만 개인도 각자의 위선과 싸우는 거죠. 이익과 가치 사이에서 고민하면서요.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면 그게 현실이 됩니다.

ⓒSaifee Art, Unsplash

이제 회원님과 참여연대의 인연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2003년부터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자문위원으로 함께해주시고 있어요.

아무래도 제가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다 보니…. 사실 저는 화염병 한번 안 던져본 사람이지만 동료들이 잡혀가는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어요. 석사논문 쓸 때가 1987년 (민주화운동이 활발해지고 6.10항쟁이 있던) 정국이었는데, 학문적으로라도 실천을 해야겠다 싶어서 ‘군부의 정치개입’을 주제로 논문을 썼죠. 그리고 전두환 정권이 등장한 뿌리를 찾아보았는데, 결론은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미국이 직접 사주했다는 뜻이 아니고 미국이 키워온 한국의 군부가 그 배경이라는 거죠. 미국을 빼고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생각할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미국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미국에 유학을 갔고, 연구자가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가 참여연대와 함께하게 되었어요. 2003년 당시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면서 전쟁 위기가 고조되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어울리던 학자들의 권유를 받아 참여연대에 발을 들여놓게 된 거죠. 그리고 몇 년 뒤에는 참여연대 회원으로도 가입했고요.

국제정치 연구자로서 평화운동에 참여하는 것이라서 더 남다를 것 같습니다.

사실 미국 연구자의 90%는 보수적 성향이고 저 같은 입장은 굉장히 소수예요. 그런데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면서 ‘소수지만 내 판단이 옳다’는 생각을 했죠.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면서 저조차 여전히 갖고 있던 미국에 대한 환상이 깨졌고요. 지적인 전환의 경험도 있었어요.

2006년에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는데, 그 무렵에 동아시아 평화단체들이 공동선언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뉴스가 나온 날 연구자들과 엄청난 토론을 했어요. 저는 굉장히 좌절해서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데 시민들에게 군축하자고 설득할 수 있겠냐”며 북한을 매섭게 비판했죠. 그런데 어떤 분이 “북한을 이상한 나라로만 보지 말고, ‘생존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분투하는 나라’라고 생각해 봐라” 하시는 거예요. 그 말씀 덕분에 편견을 깼어요. 물론 어떤 이유로도 핵 개발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상황을 다시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분에게 참 고맙게 생각해요.

오랫동안 평화군축운동을 해왔지만, 여전히 평화는 요원하고 군축은커녕 어떤 대통령이든 군사비를 늘리면서 군수산업을 ‘K-방산’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늘 인터뷰에서 나눈 것처럼 국제질서는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있고요. 평화와 군축을 설득하기 참 어려운 시대구나 싶어요.

보수 정부만이 아니라 개혁을 표방하는 민주 정부 역시 국방비를 늘려왔죠. 사회적으로도 방산 수출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기는 상황이고요. 이 시류에 역행해서 평화운동을 해야 하니 참 어렵긴 합니다. 이렇게 험한 길이 열렸지만, 평화의 필요성은 더 커졌다고 봐요. 지금은 국제질서가 급변하는 시기잖아요. 말하자면 지난달 세팅한 네비가 안 맞는 거예요. 잘못된 네비를 보고 가면 차가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도 있죠. 이런 상황에서 진짜 ‘실용’은 달라진 현실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한미동맹을 그대로 두면 한국의 산업생태계가 망가지고 자칫 전쟁에 빨려 들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도 절망할 상황은 아니에요.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도 그동안 역량을 쌓았고요. 참여연대 활동가들의 분투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는 이야기도 이참에 하고 싶네요. 개인적으로도 각오를 다지는 부분이 있어요. 국제정치와 미국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체계적이거나 철저하지 못한 것은 결국 가르치는 사람의 책임이니까요.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제가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올해로 참여연대 20년지기가 되셨어요. 20년은 함께해 온 참여연대란 회원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마지막으로 질문드리면서 오늘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벌써 20년이라니 세월이 참 빨라요. 참여연대는 제가 처음으로 가입한 시민사회단체예요. 가장 열심히 활동하는 단체이기도 하고요. 비유하자면, 제 사회적 실천의 본적지이자 주거지고요. 또 첫사랑이자 끝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 사랑과 연애결혼해서 잘살고 있습니다. (웃음)

이혜정 참여연대 회원 ⓒ박상환
  1. 달러를 금에 고정하고, 다른 나라 통화는 달러에 고정하는 환율 제도. 국제무역·금융 안정에 기여했다. ↩︎
  2. 서양 세력이 동양으로 확대되며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영역에 영향을 주거나 지배하는 흐름 ↩︎
  3. 연방준비제도의 약자. 미국의 중앙은행시스템으로 통화 정책과 금융 감독 기능을 수행한다. ↩︎

박효원 전업교양인/전업시민

사람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내향인입니다. 부업으로 틈틈이 글을 씁니다.

사진 박상환 작가

박상환(sangfun). 프리랜서 사진가. 반려인, 고양이 셋과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만남과 경청을 통해 배운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현장에서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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