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6년 09-10월 2026-08-30   36

[오늘하루지구생각] AI가 되살릴 수 없는 것들

데이터센터와 가뭄 ⓒ일러스트 최원형

클래식 Fm 방송을 켜놓고 일을 하는 습관이 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대부분 시냇물 흐르듯 흘러간다. 어쩌다 귀에 걸리는 음악에도 잠시 집중할 뿐이다. 어느 날 느닷없는 뻐꾸기 소리가 귓가에 와닿았다. 하던 일이 툭 끊어지고 뻐꾸기 소리에 집중하려는 찰나 ‘사라지면 되살릴 수 없는 소리를 지켜주세요’라는 어린이 목소리가 들렸다. 공익 광고였는데 뒷부분만 듣고 나니 앞부분이 궁금해졌다. 며칠 뒤 라디오에서 다시 그 어린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AI는 뭐든 척척 해내지만 AI가 되살릴 수 없는 소리도 있대요’라는 멘트에 이어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정겨운 뻐꾸기 소리를 듣고 난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지켜주세요’라는 어린이 목소리는 마치 내게 호소하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뻐꾸기를 지킬 수 있을까? 이 질문을 곰곰 생각하다가 전혀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AI는 왜 뻐꾸기 소리를 되살릴 수 없는가?

정부는 반도체 팹과 AI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이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발전·송전 인프라까지 국가 차원에서 확충하는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인공지능이 미래산업이 될 거고 반도체 강국인 우리나라야말로 이 산업에 집중해야 미래 먹거리를 선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설명만 들으면 메가 프로젝트는 매직 프로젝트인 것만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마법이 작동할 것이라고 진짜로 믿을까? 좀 무식한 질문을 해봐야겠다. 대한민국에 3대 메가 프로젝트는 왜 필요한가? 국가의 명운이 걸렸다는 수식어에 걸맞게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는 이 프로젝트의 손익계산서를 꼼꼼하게 따져봤을지 궁금해진다. AI 시대 글로벌 경쟁력 확보, 산업구조 전면 재편, 지역 균형발전, 향후 20~30년을 겨냥한 장기 국가 산업전략 등이 메가 프로젝트가 필요한 이유라고 정부는 밝혔다.

여러 이유 가운데 ‘지역 균형발전’이 눈에 들어온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이제 나라 곳곳에 데이터센터, 반도체 팹 그리고 필요한 전기를 충당하기 위해 발전소를 추가 건설할 것이다. 생산한 전력을 보낼 송전선로도 곳곳에 세워질 것이다. 필요하면 건설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는 집도 내가 차를 타고 다니는 도로도 모두 건설의 결과니까. 그런데 데이터센터 건설과 발전소 건설이 지역의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한다는 걸까?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물을 끌어다 쓸 것이다.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에너지도 물도 많이 필요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대형 데이터센터는 쉴 새 없이 가동되는 네트워크 컴퓨터들을 냉각하기 위해 하루에 대략 1,892 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이 양은 최대 5만 명이 사용하는 물과 맞먹는 양이다.1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물은 데이터센터보다 훨씬 더 많을 거라고 한다.

미국의 경우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추세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은 2000년 이후 가뭄이 단순한 강수량의 부족보다 폭염으로 인한 증발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로 인해 산불 발생 확률도 높아지는 추세다. 관건은 물이다. 혹자는 데이터센터에서 재생수를 사용하면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잘못된 주장은 아니지만 물을 재생하기 위한 에너지가 또 필요하다. 올여름 유럽의 기록적인 폭염으로 다뉴브강의 수위가 낮아져 결국 루마니아 원전 가동이 중단됐다. 올여름 우리나라에서는 타들어 가는 가뭄으로 강원도 소방차가 밀양으로 물을 싣고 달려가기도 했다. 물이 있는 곳에 생명도 있고 기계도 있다. 폭염은 해를 거듭하며 더 잔혹해질 예정인데 도대체 그 많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팹에 댈 물을 어디서 끌어오겠다는 걸까?

이쯤에서 또 다른 질문이 고개를 든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프로젝트를 결정하기 전에 데이터센터며 발전소 그리고 송전선로가 지나갈 지역 주민들의 의사는 물어봤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절차상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거대한 산업 프로젝트가 지역을 전력 수요량, 용수 공급량, 경제성장률 같은 지표로 바라볼 때,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은 쉽게 지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아쉴 음벰베의 추상화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카메룬의 역사학자이자 정치철학가인 음벰베는 현대자본주의, 특히 금융자본과 디지털 기술이 결합한 신자유주의 지식 체계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왜곡한다고 비판했다. 왜곡의 근거로 음벰베는 추상화를 들었다. 음벰베의 사유를 디지털 자본주의에 적용해 보면, 추상화란 구체적인 삶과 삶 속에 녹아든 다양한 관계를 계산 가능한 데이터, 범주, 지표 등으로 환원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역 주민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들이 오랫동안 맺어온 장소와의 관계까지 숫자와 데이터로 환원할 수 있을까? 뻐꾸기 소리의 다양한 변주뿐 아니라 그 소리에 얽힌 추억은 어떤 데이터로 추상화할 수 있을까?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노랫가락에 담긴 정서는 과연 추상화가 가능할까? 우리나라에서 직선거리로 약 1만km나 떨어진 탄자니아,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대륙에서 겨울을 지내고 이듬해 봄이면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이동 경로 어디쯤에서 거센 기류에 휘말리거나 기후 시스템 붕괴로 고통을 겪을 뻐꾸기들은 어떤 데이터로 추상화할 수 있을까?

기술 발전은 유례없는 기후위기, 부의 불평등 심화, 만연한 감시와 매우 심각한 노동 착취를 가져왔다. 인류 스스로가 실존적 위기로 계속 걸어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이 추출되고 수집되고 데이터로 선별되는 과정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도 되는 걸까? 정부는 어마어마한 혁신의 당위만 강조할 뿐 그런 변화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그 변화의 의미를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시점에 필요한 것은 AI가 살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사유와 기술에 대한 새로운 비판이 아닐지.

  1. 2026.6.8. Majority of US’s new AI datacenters to be built on drought-hit land, the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us-news/2026/jun/08/datacenter-ai-drought-water ↩︎

최원형 환경생태작가의 프로필 사진.

최원형 환경생태작가

큰유리새의 아름다운 새소리를 다음 세대도 들을 수 있는 온전한 생태 환경을 바란다.《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착한 소비는 없다》, 《사계절 기억책》 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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