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1997년 01-02월 1997-01-01   731

아시아인권

소수민족 독립운동과 티베트

"모든 민족은 자결권(自決權)을 가지며, 이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를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발전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다. 식민통치 및 기타 형태의 외세 지배나 점령 하에 놓여 있는 민족들은 양도할 수 없는 민족 자결권을 실현하기 위해서 국제연합 헌장에 합치하는 모든 정당한 행동을 취할 권리를 가진다.”(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선언 중에서)

오랜 냉전에서 벗어난 인류가 기대했던 것은 평화와 인권이었다. 하지만 세기말의 세계는 다시금 민족, 인종, 종교 분쟁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듯하다. 동유럽, 아프리카, 구소련과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는 인종청소라는 끔찍한 이름의 대량학살은 통제할 수 없는 혼란의 암울한 전망과 무책임한 방관 속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아시아 지역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소수민족들의 자치 또는 독립을 위한 투쟁과 이에 대한 가혹한 탄압이 뒤따르는 19세기적 상황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의 소수민족 독립을 둘러싼 갈등과 희생들은 경제적 차별과 문화적 종교적 탄압뿐만 아니라, 과거 서구열강의 식민유산에서 비롯되고 있다. 예컨대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독립 이후 인도에 강제 편입된 쟘무캬슈미르 지역의 경우, 전체 주민의 70%가 이슬람교도이기 때문에 힌두교를 신봉하는 인도정부의 차별정책에 맞서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벌여오고 있다. 대표적인 무장반군단체 쟘무카슈미르해방전선(JKLF)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의 지원 아래 무장투쟁을 계속해오고 있는데, 1989년 이후 1만 2,000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냈다.

또한 인도 북서부의 나가(Naga) 지역은 1954년 인도에 의해 점령된 이후 15만 명에 이르는 나가족이 살해되고, 이 지역에 대한 외국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인도정부는 현재도 3,000여 명의 나가족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15만 명에 이르는 군대를 이 지역에 주둔시키고 있는데, 대량학살과 강간, 고문이 되풀이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스리랑카에서는 1983년 다수민족인 불교도 상할리족이 타밀어 사용을 금지한 이래, 정부군과 소수민족인 힌두교도 타밀족 독립운동 게릴라, 타밀엘람해방타이거(LTTE)와의 내전이 계속되는 동안 5만 명 이상이 살육됐다. 영국의 타밀족 우대 식민정책에서 비롯된 분쟁은 장기간 지속된 외세의 지배로부터 의도적으로 강요되고 왜곡된 민족감정의 처참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동티모르(East Timor)의 경우에는 270여 년간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지역으로 1975년 독립정부를 수립했으나 곧바로 미국과 호주의 지원을 받은 인도네시아의 침공을 받아, 2개월 동안 6만 명의 동티모르인들이 학살당했고, 지난 20년간 동티모르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21만 명이 무차별로 살상당했다. 1991년에는 인도네시아군이 유엔 인권침해조사단의 방문에 맞춰 평화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에게 발포해 200명을 학살하는 산타크루스 사건을 자행하기도 했다. 심지어 인도네시아 정부에 고용된 의사들은 이른바 인종청소를 위해 산아제한 약품을 주사해 수천 명의 동티모르 여성들을 불임으로 만들고 있다. 티베트 또한 1950년대 중국군이 진주한 이후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인들의 투쟁이 계속됐고, 이에 대한 중국의 강경진압이 빚은 인권침해 상황은 국제적 비판 여론에 직면해 있다.

언어, 종교, 인종, 영토, 문화에 뿌리를 둔 민족집단의 정체성은 분쟁이나 폭력의 원천이라기보다는 인류사회의 풍요로운 문화의 바탕이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억압과 차별이 계속될수록 민족이라는 테두리는 그 구성원들이 가진 다양한 정체성이 하나로 수렴되는 공간으로 경직돼감에 따라 불만을 축적시키고 분열의 골이 깊게 하는 갈등요인이 되기 쉽다. 그러므로 외세의 지배 하에 있는 소수집단을 포함해 모든 민족에 대해 스스로 자신의 정치 경제 문화적 문제를 결정할 수 있도록 보장돼야 한다. 자결권은 모든 인권의 효과적인 행사를 위한 필요조건이며, 외국에 의한 민족의 정복과 지배와 착취는 기본적 인권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960년 유엔 비식민지화 선언). 따라서 이러한 자결권의 원칙은 소수자의 국제적 보호, 지역적 자치, 연방국가 내에서의 지위보장을 비롯해 최종적으로는 민족독립의 형태로 이행돼야 한다.

김한균 고려대 법학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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