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1999년 04월 1999-04-01   1613

국제경쟁력 망치는 한자병용

국제경쟁력 망치는 한자병용

지난 2월 9일, 문화관광부에서 기습 발표한 한자병용정책은 한마디로 졸속 정책이요 마땅히 취소돼야 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국민의 정부’는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국민의 정부’가 돼야 하는데 이번에 발표한 정책은 실제 소관 부처가 아닌 엉뚱한 문광부가 사전 국민의 의견 수렴·공청회는 물론 전문 연구기관의 연구 검토없이 기발한 발상을 내놓은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기습으로 발표했다. 이것은 국민을 무시한 관료주의의 행태요, 그 때를 벗지 못한 졸렬한 방법으로 국민을 분노케 한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김종필 국무총리까지 한술 더 떠서 “한자는 우리 글이다. 이번 방침을 강행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것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굴욕외교의 장본인 스스로가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이다. 이번 한일관계에서 나타난 대표적인 예가 그러하다. 대중문화 개방합의에다 바다까지 내주고, 그것도 모자라 일본방문 때는 마치 일본인으로 착각을 일으킬 만큼 유창한 일본말로 연설하고, 무엇이든 ‘아니다’가 아니라 ‘예’로만 일관한 답변에서 총리의 민족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에 발표한 한자병용방침에서 일본과의 밀약설이 증폭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일본식 한자표기로 양보한 것 같다고들 수군덕거리고 있으니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겠지만 짙은 의혹은 면하기 힘들 것이며, 이로 인한 김종필 총리의 입지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될 것이다. 이를 더욱 압박하여 분명하고 올바른 대답을 받아 내야 국민의 냉가슴이 풀릴 것이라 생각된다.

건설교통부 관계자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지방도로 표지판까지 합하면 약 10만 개의 도로표지판이 있는데 이것을 한자까지 병기하여 바꾸는 데 1개당 약 500만 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건교부에서는 이미 5개년 계획으로 4,8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도로표지판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것마저 못 쓰게 된다고 할 때 수조 원의 예산이 낭비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또한 도로 통행시 운전자는 초를 다퉈 방향을 판독하는데, 획수가 번잡한 한자로 인해 깜박할 사이에 대형사고를 불러일으킬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게 운전자들의 공통된 의견임을 총리는 알아야 한다. 또 관광객 유치를 위한답시고 한자병용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한자권 나라마다 그 표기가 다르기 때문에 관광객 유치를 위한 이번 정책은 허무맹랑한 소리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空港”, “化粧室”을 중국의 표지판에서는 볼 수 없다. 중국은 “空港”을 “기장”으로, “化粧室”을 “위생간”으로 쓰기 때문이다. 진정 관광객 유치에 목적이 있다면, 도로 표지판보다는 먹을 거리, 볼 거리, 즐길 거리 등 관광상품 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정책발표의 알맹이인 초등학교 한자교육 실시를 위한 발상이 큰 문제이다. 한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요즈음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제 이름도 한자로 못 쓰고 신문도 못 읽는다며 구박하고 망신을 준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참으로 한심하다 못해 통탄할 일이다.

한자를 배우는 시간은 다른 학과 10개 과목을 배우는 시간과 맞먹는다고 한다. 게다가 한자 과목이 늘어나면 학원비, 교재비는 물론 입시대비, 취직시험 등 막대한 경비 부담이 드는 것은 상식으로 알아야 한다. 또 학생들이 겪을 고통, 학부모가 겪을 고통 등을 따져볼 때 한자를 배워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한자병용정책 발표는 우리나라의 민족적 자존심과 국가관을 소홀히 한 작태이다. 이는 마치 21세기를 50년 뒤로 끌어 내리려는 일본의 술책이 아닌가 의구심이 깊어만 간다. 어쨌든 문광부의 ‘한자병용정책’은 마땅히 취소돼야 하고 또 우리 젊은 한글세대는 이를 막아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한자병용은 나라 망치는 일임에 틀림없다. 용기있는 젊은 한글세대들의 국제경쟁에 주역이 될 인재 양성에 재 뿌리는 꼴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원광호 한자병용 반대투쟁 전국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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