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나른한 오후 한 장의 팩스가 날아든다. 최모 회원로부터다. 거기에는 인터넷 유머가 한장 가득 적혀 있다. 아침부터 대전쟁을 치르고 나온 회원사업국 아줌마부대는 잠시 일손을 놓고 파안대소한다. 입으로는 “너무 수준이 낮다”, “좀더 고차원적인 것 없나?”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폄하하기 바쁘지만 마음속에는 흐뭇함이 가득하다.
사람이 감동받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일 때가 많다. 요즘 광고를 보면 ‘××감동’이라는 말이 많다. 아주 잔잔하고 소박한 일상적인 에피소드와 함께 그 단어가 등장한다. 나는 참여연대에 와서 작고 소박한 것이 얼마나 큰 감동을 줄 수 있는지 깨닫게 됐다. 모임이 있을 때 비록 비싸지 않은 물건이지만 회원들께 줄 선물을 마련했을 때, 그리고 그 선물이 상품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구실’을 붙여 회원에게 ‘수여’되고, 정감어린 상품을 받은 회원 얼굴에서 번지는 웃음을 볼 때,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기념일을 기억하고 선물이 없더라도 소박한 시 한 구절 적어 보내는 것, 계절꽃 한 다발 등등. 그렇게 보낸 시 한 구절이 참여연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지 않을까? 따뜻한 말 한 마디의 힘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생각한다. 어쩌다 사무실에 들른 회원으로부터 간사들이 웃지도 않고 인사도 안한다는 불평을 자주 듣는다. 일에 치여서 우리는 웃음을 잃어버렸는지도, 서로에게 따뜻한 인사 한 마디 건네는 것도 힘이 부치는 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비단 회원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회원과의 관계에서보다 간사들과의 관계에서 더 상처를 받고 힘이 빠진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쌀쌀맞게 던진 그 한 마디만큼 바로 자신이 그만큼 황폐해진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일까?참으로 삭막하고 힘든 세상이다. 사회의 잘못된 것을 고치려 할 때는 매섭게 몰아부쳐야겠지만, 회원과는, 간사들끼리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나누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에 봄바람이 불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문학의 부활을 위하여
작년 둔내에서 있었던 상근자 직무교육에서 모변호사가 했던 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왜 간사들이 자신감이 없는지 모르겠어요. 변호사다, 교수다 하면 전문가라고 떠받들고, 간사들은 뒷처리나 하고 그러는데 그럴 때마다 황송해요. 우리들은 자기영역에서는 전문가일지 몰라도 전체를 바라보는 눈은 부족해요. 그런 건 여기 간사들이 해야 합니다. 방향을 잡고 거기에 맞는 전문가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이용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코디네이터로서 자신감을 갖고 일하세요.”정확하지는 않아도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내가 참여연대에서 일한 지도 어느새 2년 6개월이 되었다. 애들 키우느라 몇년을 집에 있다 나오니 집밖 세상은 너무도 변해 있었다. 운동단체들이 다 그랬듯이 내가 일하던 단체들도 어려운 재정형편으로 겨우 워드프로세서 한 대 놓고 일했었는데, 사람당 한 대꼴의 컴퓨터며, 복사기, 팩스는 또 왜 그리 복잡한 지. 아줌마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녹슨 머리 굴려가며 이것 저것 익히기에 정신없는데 변한 것은 이런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일하는 방식도 많이 달랐다. 예전처럼 목소리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것부터 서서히 조금씩 요구하고 확보해 나가는 것. 제도개선·개혁을 위해 고소·고발·청원·정보공개요구 등등. 그런데 그동안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던 이런 것들을 익히느라 헉헉대면서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것은 없는 것일까? 21세기는 정보화사회라 하고, 컴퓨터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나 얘기하지만, 복제양에 이어 복제소 그리고 복제인간도 머지 않아 출현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지금,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을 가운데 놓고 사고하는 것이며, 올바른 세계관을 갖는 것이 아닐까.
올바른 철학이 있을 때 제대로 된 사회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기능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고 있다. 실무적 능력만을 제1의 기준으로 여기는 풍토가 자리잡게 되었다. 술이라도 한 잔 마시며 철학을 말하고 세계관을 논하는 풍경은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우리는 철학의 빈곤시대에 살게 되었고, 사회발전의 비전은 점점 가물가물 해지고 있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자. 개개의 기능뿐만 아니라 종합적인 사고능력을 기르자. 그것은 시민운동단체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