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에 인턴간사로 처음 왔을 때 간사들은 옆에서 말을 걸기도 미안할 만큼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온갖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려 스스로 나선 사람들이라 그런가? 적은 월급, 불확실한 미래, 불규칙한 퇴근 시간, 예고 없이 몰려드는 방문객, 기자들…. 이런 온갖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그들은 묵묵히 자기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경이로운 분투에 비해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실감은 잘 느끼지 못하겠다는 게 안타깝고도 솔직한 내 심정이다. 나는 참여연대의 활동가들을 궂은 비를 마다않고 새벽들판에 나가 ‘물꼬를 트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세상이라는 큰 강물을 향해 물이 흘러가도록
새 물길을 파는 사람들. 이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이 모순투성이의 세상이 이나마, 이렇게라도 돌아가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2년 전에 시골집에 내려갔다가 어머니 때문에 무척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이미 환갑이 지난 어머니는 여전히 새벽마다 어김없이 들판에 나가 농사일에 매달리고 계셨다. 온종일 고된 농사일에 시달리고 해가 이슥해서야 물에 젖은 솜처럼 피곤에 절어 집에 돌아오시면 온갖 집안 일이 또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마침 할아버지께서 몸져 누우시는 바람에 시아버지 병수발까지 하셔야 했던 어머니 손에서는 한시도 일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막상 어머니께서는 그 많은 일들을 자신이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는 표정으로 묵묵히 도맡아 하셨다.
참여연대 간사들을 보면서 잠시도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활동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 일들이란 모두 돈과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대다수 보통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도맡아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들이 일을 통해 느끼는 보람은 세상에서 가장 갚진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밀려드는 상담자, 폭주하는 전화, 아무리 분발해도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일, 일, 일. 자신의 에너지를 거의 소진하다시피 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면 사실 걱정이 앞선다. 슈퍼맨 슈퍼우먼처럼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일하는 활동가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신년계획에 나와 있듯이 ‘업무총량제’처럼 한 사람이 맡는 사업량을 규제해야 한다. 지금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시키고나서, 간사들이 지속적으로 그런 열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염려스러워질 때가 있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 그 나이에 맞는 직위와 경제력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를 생각해 볼 때 그들의 미래가 불안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업무가 너무 바빠서일까? 정작 간사들이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별로 들어 본 적이 없다. 어떤이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를 고민해 본 적은 없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이 지금도 잘 이해가 안된다. 앞으로도 시민운동을 지속적으로 또한 열정적으로 해나가려고 한다면, 여러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활동가들을 위한 교육, 활동가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의 처우개선 등에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활동가들의 자질을 향상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 그런 시도가 왜 요즈음에 국한된 것이었겠는가, 정말 그 고민이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그 결실이 결국 ‘세상의 변화’를 앞당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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