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1999년 08월 1999-08-01   833

무작정떠난 캐나다

93년 겨울부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에서 여성활동가로 일해 온 나는 97년 7월부터 98년 2월까지 7개월여 동안 캐나다에서 나만의 휴식을 누렸다. 여성운동가로서의 나의 전망이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지 않아 무척이나 불안하던 그즈음에 나는 그냥 무작정 떠났다.

휴가 혹은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사람들마다 참 다르다. 어떤 사람은 여행경비, 경로, 돌아온 후의 재정대책, 일자리 등을 꼼꼼히 따지기도 하지만 난 좀 대책없이 떠나는 편이다. 이것저것 따지기 시작하다가 지레 지쳐 그냥 주저앉은 경험이 여러 번이어설까,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터미널로 가는 경우도 있고, 잘 곳을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차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캐나다에 갈 때에는 어느 도시로 갈 건지, 숙소는 어찌 할 건지 정도는 정하고 출발했으니 나로서는 아주 많이 준비하고 간 셈이었다.

그때 왜 떠났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왜 그곳까지 가야했느냐고. 난 좀 쉬고 싶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는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쉬고 싶다’는 꿈을 무작정 그냥 저질러 버린 것이다. 그러다보니 황금보다 귀한 시간을 그냥 놀고 먹을 수는 없고, 영어공부도 필요하고, 다른 나라 여성단체들의 기금조성방법도 궁금했고, 공기 좋은 곳이었으면 좋겠고 해서 캐나다로 서울에 있던 전셋방을 빼서 홀라당 들고 날라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당분간 여성문제를 잊자던 터무니없는 상상은 도착한 지 한 달도 안되어 여성단체를 찾아가 자원활동을 자처하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돌이켜보면 아주 잘한 결정이기도 했다.

이런 용기 있는 행동은 (언제나는 아니지만) 대부분 큰 소득을 안겨준다. 영어실력이 는 것도 중요하지만, 캐나다 에드먼튼 성폭력센터에서 5개월여 동안 자원활동을 하면서 소중한 친구들을 만난 것, 그들의 여유있는 사업전개방식, 치밀한 사업계획수립, 기금조성의 문화적 풍토형성 등을 지켜보며 얻은 교훈은 한국에 다시 돌아와 전보다 더 의욕적으로,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자, 우리 때론 떠나는 용기를 갖자! 나의 휴가경험은 따라하기는 쉽지 않지만 일단 저지르기로 결심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결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성공하고 나면 성취감 또한 남다르다. 물론 이러한 ‘뜸’이 가능하려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이 시점에 대책없는 나때문에 뒤처리를 하느라 고생했던 여성연합 사무처 식구들에게 다시금 미안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두 팔을 성큼 벌려 다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나의 여성운동 동지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황금명륜 한국여성단체연합 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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