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이 뭐 거창한 건가요. 목욕탕에서 샤워할 때 물을 절약하면 환경운동 아닌가요. 치약을 조금만 짜서 양치질을 하는 것도 시민운동입니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시민회 실행위원 정경호씨(34세)가 말하는 생활 속 실천 시민운동론이다. 그가 이 단체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5년전. 자동차 부품업체에 근무하다가 실직한 뒤 백수시절에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회원으로 등록했다. “틈틈이 시간나는대로 부산 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실에 들러서 봉투 부치고, 전단도 돌리고, 단체 행사에 참여하고….” 그는 현재 PC통신 IP사업체를 경영하고 있으며, 이 직업을 살려 한달전부터 천리안에 부산·경남지역의 시민운동 소식 알림 코너(go citizine)인 ‘시민의 소리 세상을 바꿉니다’를 운영하고 있다. 시민단체 회원이기보다는 상근자에 가까울 정도다.
현수막 제작하다가 시민운동 참여
시민회 회장을 맡고 있는 황철주 씨(50세)도 그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시민이다. 그의 직업은 현수막 제작업체 사장. 87년 6월항쟁 때에는 국민운동본부가 부산시 전역에 내건 모든 현수막을 무료로 제작해주었을 정도로 ‘열성적인 시민’이었다. 당시 혼자 만든 현수막을 대충 꼽아도 120여 개는 족히 넘는다. 그는 국민운동본부 행사중 현수막이 걸린 행사에는 항상 모습을 드러냈다. 밤을 꼬박 새워 만든 현수막을 행사장에 갖다주고, 내친 김에 시위에도 참여하고…. 지금도 그는 부산지역의 노조·사회단체 등 소위 ‘운동권 현수막전문 제작업자’다.
지난 98년부터 2년간 부산민주협의회 회장직을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시민운동이 무슨 큰 일만을 하는 것처럼 시민들에게 다소 부담스럽게 각인돼 있는 것같다”며 “영화반, 등산반, 노래반 등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터를 만들어서 시민운동을 풍부하게 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는 이들처럼 ‘평범한’ 시민 600여 명이 모여 풀뿌리 시민운동을 만들어가는 곳이다. 택시운전기사, 방송 기자, 교수 등 나이와 직업을 초월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만나 부산 지역 시민운동의 텃밭을 일궈오길 10년. 출범 당시 YMCA사무실 한켠 4평 남짓 공간에서 월세를 내고 더부살이하던 모습에서 60여 평의 버젓한 사무실 공간도 확보했고, 1명의 상근자가 9명으로 늘었다. 간판도 바뀌었다. 91년 5월 발족 당시 단체명은 ‘참여와 자치를 위한 부산지역시민연대회의’.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이 산파역을 맡았고, 정홍섭 신라대 교수, 김진원 의사, 당시 부산 YMCA 이성헌 총무 등이 단체 발족을 주도했다. 초기 공동대표로는 김동수 부산YMCA 전 이사장, 김민남 동아대 교수, 이규정 신라대 교수 등이었다.
“지방선거가 지역 토호세력의 확대강화로 귀결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지역에서 올곧은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풀뿌리 시민운동 조직체가 절실했던 겁니다.” 박재율 사무처장(41세)의 말이다. 박처장은 동아대 비상학생총회 의장, 동아대 삼민투 위원장, 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선전홍보부장, 부산민주청년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학교를 제적당한 뒤 복학해 16년만에 대학을 졸업, 95년 곧바로 사무처장으로 참여했다. 낙천운동 거리 서명 작업을 마치고 막 들어온 그로부터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의 성과와 한계를 들어봤다.
“지방자치 입법 활동으로는 지난 97년 제정된 시민감사청구조례를 꼽을 수 있습니다. 1년여동안 부산시와 의회를 설득해서 따낸 작품이죠. 행정의 투명성을 살리기 위해 자치단체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랄 수 있는 ‘재정상황운영공개조례’를 제정하는 데도 나름의 역할을 했습니다. 또 최근에는 ‘보행권 회복과 보행환경개선 기본 조례’에 대한 청원을 해서 이제 성사단계에 와 있습니다.”
95년부터는 의정참여단을 꾸려 지방의회를 방청, 의원 개인별 의정활동을 평가하고 있으며, 지난 98, 99년에는 부산시의회로부터 매년 폐회연을 열면서 모범적인 의정활동을 한 의원을 표창하는 데 사람을 추천해달라는 요구도 받았다. 이밖에도 판공비 행정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한 행정감시, 지난해만도 750여 건이 접수된 작은권리찾기 창구(실행위원장 박영주 변호사), 아파트 시민학교 등과 병행해 추진하는 아파트 공동체 운동(실행위원장 박근서 회계사) 등 부산 지역에서 ‘종합적 시민운동’을 벌여오고 있다.
‘시민있는 시민운동’ 시동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를 움직여가는 세 축은 회원과 상근자, 그리고 지역사회 각계에서 전문직업에 종사하면서도 시간을 쪼개 틈틈이 단체 사무실을 찾는 정책자문 그룹이다. 현재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는 김정각(미룡사 주지), 김동수(생명의 전화 회장), 조성래 씨(변호사). 집행위원(위원장 정홍섭 신라대 교수)으로는 이세일(비뇨기과의원 원장), 정재성(변호사), 차성수(동아대 교수), 안철현(경성대 교수), 이대은 씨(사업) 등이 참여하고 있다. 소위 이 단체의 싱크탱크라할 수 있는 정책연구위원회(위원장 차성수 동아대 교수)에 참여하는 볼룬티어 그룹은 김순은(동아대 교수), 박광준(신라대 교수), 박종우(경성대 교수), 이학기(동아대 교수), 안홍순(신라대 교수) 등 70여 명에 달한다.
이 세 개의 톱니바퀴를 굴려 이들이 올해 도달하고자 하는 고지는 소위 ‘시민있는 시민운동’. 박 사무처장이 느끼는 시민운동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는 중앙의 단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민들이 머리로는 지지하는데 몸이 따르질 않아요. 이는 시민들의 한계이자 시민운동의 한계입니다.”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 속으로 뛰어들 채비를 하는 상근자는 최수미 시민사업부장(30세)이다. 그는 94년 3월 ‘참여와 자치를 위한 부산시민연대회의’의 간판을 달던 시절부터 함께 한 이 단체 ‘상근자 1호’다. 요즘도 그는 시민운동의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한 회원 참여 확대라는 난제를 풀기 위해 컴퓨터와 전화기를 끼고 진땀을 빼고 있다.
“사실 그간 2~3명의 상근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벅찰 정도로 업무가 많았습니다. 그나마 대부분의 역량을 이슈에만 집중하다보니 회원 서비스 사업은 불모지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제는 실제 시민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어요.”
‘시민있는 시민운동’을 위해 그가 구상하고 있는 것은 소모임의 활성화다. 등산, 영화, 노래, 풍물 등 취미별 모임과 복지, 교통 등 관심분야별 모임, 주부, 노인, 청년 등 연령별 소모임 등 다양한 형태의 소모임을 구성해 단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다.
“서울의 시민운동이 부럽기도 해요. 정보가 그만큼 지역보다 풍부하고 역량도 많죠. 이 때문에 전체 시민운동의 흐름을 이끕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지역운동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너무 부족한 것같아요. 가령 연대사업에 있어서 너무 일방적입니다. 총선연대의 사업 역시 지역에 대한 고려가 크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은 연대사업, 나아가 시민운동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에서 시민운동을 벌이는 큰 규모의 단체들이 심각하게 곱씹어봐야할 대목이다.
하지만 부산지역은 나름대로 풀뿌리 시민운동이 정착돼가고 있다. 상근자의 규모로 말하자면 환경운동연합, 경실련, YMCA, YWCA 등이 대표주자. 주목할만한 점이 있다면 구단위의 소규모 주민 밀착형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가령 회원은 불과 25명 안팎이지만 연제구 지역내에서 복지사업을 벌이는 ‘연제공동체’, 부산 지역 시민단체들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황룡산 온천개발문제는 ‘늘푸른 남구 시민모임’이 불씨를 제공했다. 이밖에도 금정구의 금샘사랑방, 해운대구 반송의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 등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풀뿌리 시민운동의 텃밭을 일구고 있다. 따라서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는 ‘시민있는 시민운동’을 벌이기 위해 이들과의 연대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부산 지역에서 시민운동의 새지평을 여는 사람들. ‘함께하는 시민운동’에 대한 이들의 시도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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