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0년 03월 2000-03-01   890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인권운동사랑방에는 60대 자원활동가가 있다고 한다. 이순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장 의욕적으로 활동한다며 추천하는 간사들의 칭찬에 어떤 분일까 궁금했다. 직접 찾아뵈니 몇 주일째 낫지 않는 독감 때문에 요즘은 사랑방에 통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어떻게 인권단체에서 일을 하게 되었냐고 질문하자, 91년 강경대 열사가 전경에 의해 목숨을 잃던 그 시절로 시간을 거슬러올라가서 설명을 시작했다. 그 시절 자신의 죽음을 내놓으며 시대에 저항하려던 사람들 중에 김기설의 분신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공안정국에서는 권태평 씨(66세)의 아들인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필했다며 분신의 배후세력을 운운했다. 그 사건은 오랫동안 일간 지면에 오르내렸다. 증거가 확실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 어머니가 아들의 뒤를 이어 이젠 인권단체서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주>

“젊은 사람들 일하는데 어머니가 나가서 앉아 있으면 젊은 사람들 불편해서 어떻게 하라고 그러세요?”

내가 자원봉사를 시작했을 무렵 주위의 분들이 나에게 던진 말이다. 글을 쓰려고 하니 맨먼저 그분의 말이 생각나는 것은 그동안 해왔던 내 작업들이 정말 인권운동사랑방에 도움이 된 것인지, 젊은 사람들 일하는데 방해꾼 노릇이나 하지 않았는지 염려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자원봉사를 해야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인권하루소식』을 구독하면서부터였다. 신문에 나지 않는 소식들이 실려있는 『인권하루소식』은 또 다른 세계를 엿보게 해주었고,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조금 짐작하고 있었던 나로선 일주일에 두 번씩 배달되는 소식지를 대할 때마다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곤했다. 비록 나이는 많지만 집에서 하는 일 없이 시간만 축내고 있는 내 생활이 몹시 아까웠고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가서 봉투라도 붙일까? 걸핏하면 밤샘하는 상근자들의 일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 아까운 고급 인력들이 좀더 좋은 곳에 쓰여지는데 보탬이 되는 일은 없을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시작한 일이다.

내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하는 일이란 자료정리, 신문스크랩, 인권하루소식지 발송을 돕는 일 등이다. 내딴에는 성심을 다한다고 하고 있지만 사랑방 식구들은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밤샘을 자주 한다. 내가 봉사를 하건말건 별 상관이 없는 듯 싶다. 대신해줄 수 없는 안타까운 내 처지가 딱할 때도 있고 내 무기력이 한심스러울 때도 있지만 최소한 자극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모든 염려를 접어두고 계속 나오고 있다. 사랑방엔 보탬이 되는 안되든, 때론(아니 어떤 때는 하루 종일도) 사오정 노릇을 하는 때도 많지만 나는 사랑방에 나오는 것이 즐겁다. 젊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즐겁고 사회를 위하여 무언가 조그마한 것이나마 하고 있다는 것도 가슴 뿌듯한 일이다. 또 이렇게 나이든 사람도 무엇엔가 쓰여진다는 게 고맙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하는 일들이 사랑방 사람들에게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늘에서 낸 사람’들이 백지장을 맞들 때 바늘끝 만한 힘을 보탤 수만 있어도 좋다. 옛날 어른들 말씀에 ‘보리방아를 찧을 때 옆에서 고개만 끄덕여 주어도 숨이 덜 찬다’고 하셨는데 ‘하늘에서 낸 사람’들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하여 보리 방아를 찧을 때 그 보리 방아를 찧으며 헐떡일 때 고개를 끄덕여 줄 수만 있다면 내 남은 삶은 얼마나 보람차고 값지겠는가? 얼마나 희망차고 복되겠는가?

권태평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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