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0년 03월 2000-03-01   1170

어, 너 넘버3? 아, 나 남바3!

그 사람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영화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작년 초에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한국 최고의 영화를 꼽아보라는 질문을 맨 먼저 하곤 했다. 난 나름의 기준으로 ‘넘버3’를 한국 최고의 영화라고 감히(?) 꼽는다. 왜 ‘넘버3’를 한국 최고의 영화로 꼽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밝히도록 하겠다.

99년 초에 몇 개 시민단체 실무자들이 모여 수련회를 가진 적이 있다. 서로를 알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열 가지 정도의 질문을 들고 아무나 만나 그 질문을 소재로 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난 이 질문을 한국 최고 영화를 꼽아보라는 질문으로 바꾸었다. 열명 가까이 사람을 만났는데 아무도 ‘넘버3’는 입밖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넘버3’라는 내 말에 박수를 치며 너무나도 반갑게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그녀를 만났다. 이것이 무서운(?) 인연의 출발이 되어버렸다.

여성연합에서 일하고 있던 그녀는 여성문화운동을 꿈꾸고 있는 아름답고 당찬 청년이다. 99년에는 호주제 폐지가 여성운동에 있어서 최우선적인 운동 목표라는 설명도 잊지 않고 동참하기를 호소했다. 어쨌든 앞으로 호주제폐지운동에 힘닿는대로 참여하겠다는 공약(空約)을 남발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얼마 뒤 3.8 한국여성대회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고, 무서운(?) 인연은 99년이 다 지나가고 있을 때 본색을 드러냈다. 여성연합에서 호주제 폐지를 위한 여성주간 행사를 하는데 국세청 앞에서 대규모 문화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보통 집회를 하면 경찰서에 집회신고하지 않는 대신 구정체는 구청에는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한다. 그걸 잘 모르고 구청에 통보하지 않으면 어깨가 떡 벌어진 노점 단속반원들이 사정없이 모든 물건을 차에 싣고 가버린다. 예전에 그런 경험이 한번 있었다. 강남역에서 회원가입캠페인을 진행하다 S구청 노점단속반원들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구청 노점단속반원 수십명이 여성주간 행사시작 한시간 전에 들이닥쳐 무대를 철거하고 플래카드를 떼어내고 하는 사태가 버려졌다. 일명 ‘국세청 앞 사건’이 바로 이날이다. 그녀는 너무나 당황한 목소리로 SOS를 쳤다. “큰일났다, 행사가 시작하려는데 떡대 같은 단속반들을 막을 길이 없다, 지금 당장 건장한 남성동지들을 데리고 오라고. 여긴 여성동지들만 있다.” 문득 연초에 호주제 폐지운동에 열심히 참여하겠다고 했던 공약(空約)이 생각났다. 건장한 후배를 데리고 급하게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앗!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도착해보니 행사장은 너무나 평온했다. 떡대 같은 단속반은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속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 때 무대 다른 편에 다른 단체의 건장한 남성활동가 서넛이 서있는 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저 남성활동가들이 여성연합에 무슨 잘못한 일이 있기에, 어쩌다 코가 꿰어서 전화 한통화에 저렇게 달려나왔을까? 아마 우리단체 실무 최고책임자인 사무총장이 전화해도 이렇게 신속하게 달려나오지는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 왈, “3분 전에 구청 책임자와 전화연결이 되어 상황이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아! 이 허탈함을 누구와 함께 달랠꼬…. 결국 99년 초에 시작된 무서운(?) 인연은 결국 이렇게 이어졌다.

‘넘버3’에서 시작되어 ‘국세청 앞 사건’까지. 그러나 한가지 배웠다. 함께 한다는 것. 운동이란 넓은 광장에서 함께 할 때 힘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올해도 3.8 한국여성대회가 다가오고 있다. 여성연합이 하는 행사는 뭐든지 재미가 있어서 기대가 된다. 12일 KBS홀이라던가.

그런데 도대체 그녀가 누구냐구요? 지난 호 이 꼭지에 글을 썼던 황금명륜씨랍니다.

김중렬 환경운동연합 회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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