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0년 06월 2000-06-01   709

뇌물과 선물의 경계

시인 엘리어트는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5월이 잔인한 달이다. 특히 어정쩡하게 인생의 중간 어디쯤 나이가 걸려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차례대로 늘어서 있어 전후좌우 사방에 챙겨야 할 대상만 있기 때문이다. 꼭 빠트리지 않고 잘 챙겨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겪는 마음의 부담이 만만치 않아 하는 말이다.

이런 여러 날 중에서 가장 마음을 잡기 어려운 날이 바로 스승의 날이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대부분 사람들이 학교 교육을 받았을 터이니 마음에 모시는 스승 한두 분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카드 한 장 보내드리고 싶어도 옛 스승의 주소를 제대로 따라잡아 챙겨두지 못한 탓에 그것도 어려운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럴만한 성의가 일상의 바쁨이라는 변명 속에 묻혀버린 지 오래된 일이다.

학교 다니는 아이를 둔 학부모 입장에서 보자면, 그런 갈등이 보다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5월만 되면 ‘감사의 달’이니 뭐니 하면서 상업적으로 이 날을 기념하라고 등 떠미는 백화점의 상혼세례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인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세태는 감사의 표현마저 자연스럽게 놔두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2주 전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귀국자녀반 엄마들 모임이 있었다. 외국에 살다가 한국에 갓 들어온 아이들의 적응을 위해 지역별로 한두 학교에 개설해 놓은 것이 귀국자녀반이다. 이날 모임에서 엄마들은 스승의 날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의논도 하였다. 열 서너 명의 엄마들은 모두 아이들의 적응을 위해 애써주는 학교와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선물이 자칫 왜곡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우리가 ‘다른 뜻’ 없이 드리는 것이니 별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담당 선생님과 교장선생님, 그리고 각 학년별 담임선생님(이 특별반은 학년 구분 없이 운영한다)까지 하자니 정말 손수건 한 장 정도의 작은 선물밖에는 마련할 수 없었다. 너무 약소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막상 스승의 날이 되어 그 작은 선물을 들고 엄마 대표들이 학교를 찾아갔더니 선생님들이 당황했다는 것이다. ‘이러시면 다른 학부형들 눈에 좋지 않게 비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정말 작은 선물을 들고 간 엄마들이 거푸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우리 아이만 잘 봐주세요’라고 뇌물형 선물을 들고 간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경직된 원칙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우리의 교육현실을 개선시키고 싶으면 선생님에게 최소한의 표시도 하지 말라는 얘기가 된다. ‘뇌물형 선물’과 그 ‘특별한 효과’의 결과로 우리는 자연스런 감정의 표현을 억압당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초등학교에서는 여름, 겨울 각 방학을 시작하는 날 아이들이 저마다 작은 선물과 카드를 들고 선생님을 에워싼다. 어떤 아이는 세수 비누 한 장, 혹은 작은 화분 하나, 선심 쓴 엄마 덕분에 한아름 꽃을 안고 와서 선생님을 황홀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 어떤 아이는 자기가 만든 볼품없는 카드를 학기 내내 선생님을 괴롭힌 대가로 쑥 내밀고 가기도 한다. ‘방학 잘 지내세요’라는 인사도 제대로 않고 무심히 집으로 가는 애들도 많다. 어떤 학부모라도 교사와 학부모에게 서로 부담이 가는 선물을 할 생각도 않고 선물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리란 상상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은 날에 마음이 굳어지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스승의 날에 학교를 아예 쉬어버리는 극약처방도 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스승의 날을 너무 심각하게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권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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