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0년 07월 2000-07-01   849

재정마인드가 빈약하다

시민단체 살림살이 들여다보니…

시민운동은 무엇으로 사는가. 일천한 돈벌이 경험으로 운동까지 끌어안고 가야 하는 시민운동가들의 고단한 삶. 활동가들의 쥐꼬리만한 생계비 마련을 위해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다니는 시민운동과 등돌리는 시민들 사이에서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란 딱지가 붙은 시민단체의 재정 현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일일호프→폐식용류로 비누만들기→무공해 우리 농산물 판매→서화전→정부·기업 프로젝트 사업→환경음악회→기업 발행 가족 마일리지 카드 적립금 중 일부 재정 후원→이메일 업체에 컨텐츠 제공→푸름이 캐릭터 대여 로열티 수입.

상근자 월급은 ‘생계비’

지난 82년 발족한 지 올해로 19년째에 접어들고 있는 환경운동연합의 재정사업 변천사다. 몇천원짜리 일일호프 티켓 판매에서부터 로열티 수입에 이르기까지 환경연합의 재정사업은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 과정에서 환경연합은 공추련 시절 연탄재를 이용한 재생벽돌 생산 판매사업을 벌였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매년 추석·설 명절 때에는 대부분의 상근자들이 무공해 우리농산물을 팔기 위해 10여일 동안 일을 뒷전으로 미뤄둬야 했다.

시민단체들이 재정 확보를 위해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최근부터였다. 그 전에는 상근자들의 희생만이 최대 자산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운동과 재정,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재정사업에 일찍 눈뜬 환경연합만 해도 상근자들이 받는 월급은 평균 70만원선. 기본급 55만원과 고등학교 졸업연도에서 1년이 지나면 1만 5,000원이 붙는다. 또 상근을 시작한 지 3년째 되는 해부터 2년주기로 3만원의 연차 수당을 받는다. 이 밖에 가족수당(3만원), 식비(6만원), 직책수당(3만원)이 있지만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를 두고 월급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 그래서 이들은 월급을 ‘생계비’라고 부른다.

그나마 회비 수입이 전체 수입의 70%를 넘어선 참여연대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단체들이 이보다 더 열악한 형편이다. 50∼60만원에 밑도는 월급을 받고 근근히 생활해가는 상근자들이 부지기수고, 이마저도 몇 달째 받지 못해 생활고를 견디며 살아가는 게 시민운동의 현주소다. 이런 상황에서 ‘제5권부’라는 언론의 부추김은 단지 호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시민운동의 재정 속으로 좀더 깊숙이 들어가보자.

재정 확충에 효자노릇하는 ‘프로젝트’

우선 환경연합의 지난해 사무국 예산은 총 20억 9,000여만원. 시민환경연구소 등 5개 부설기관을 합치면 30여억원이나 된다. 이 정도 예산이면 최대 시민단체로 꼽힐 만하다. 사무국 예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회비 및 후원금 13억 6,600여만원으로 전체 수입의 65%에 달한다. 다른 단체에 비해 회비 자급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중 지난해 4만명의 회원들로부터 거둬들인 회비는 월평균 3,500만원∼4,000만원이다. 실제 회비를 내는 회원은 3만명 정도다. 지난해 회비 납부율은 67.8%.

다음으로 재정확충에 ‘효자 노릇’을 한 것은 정부 등으로부터의 프로젝트 사업. 이는 전체 재정의 26%로 5억 2,700여만원이다. 지난해 행자부 프로젝트인 물절약 사업비로 1억 1,000만원을 지원받은 것 이외에도 총 35건이나 된다. 결국 정부 등으로부터 프로젝트 사업비를 받지 않았으면 사업이 진척되지 못했을지도 모를 것들이다.

나머지 수입은 농산물 판매, 찻집 운영 등 재정사업과 환경캠프 등 교육사업으로 충당됐다. 후원금의 경우 지난 86년부터 1억 5,000여만원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환경음악회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녹색연합의 경우도 재정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재정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지난해 결산 총액은 6억 8,800만원.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 등 3개 산하기구의 재정을 제외한 액수다. 이중 회비와 후원금은 각각 1억5,000만원, 1억 3,000만원으로 총 2억 8,000만원이 걷혔다. 전체 결산액의 24.5% 수준이다. 녹색연합의 서울 회원은 6,000여명. 이들의 회비납부율은 45% 정도로 낮은 편이다. 후원금의 경우 지난해 한차례 열렸던 후원의 밤 행사에서 1억여 원이 걷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일반적인 후원금은 크지 않은 액수인 것으로 추측된다. 정부·기업 프로젝트는 2억 400만원. 올해는 행자부 프로젝트를 신청하지 않았다. 나머지 2억 400여만원은 사업수익으로 충당됐다.

이 단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소위 ‘지역주민 프로젝트’. 녹색연합은 지난해 강화도 생태마을 사업 등 2건에 한해서 지역 주민들로부터 3,000여만원의 프로젝트를 받아 수행했다. 올해는 총 3건의 이같은 프로젝트를 접수한 상태. 정부·기업 프로젝트에 대해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을 고려할 때 바람직한 수입 모델로 자체평가하고 있다. 특히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운동을 함께 하고 재정도 확보되니 일석이조인 셈.

연합단체는 지부에서 ‘회비’ 안 걷혀 궁색

전국YMCA연맹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연합체 성격이어서 자체 회원이 없다. 즉 각 지부지역 조직에서 내는 ‘분담금’이 일반 단체의 회비 성격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단체처럼 각 지부지역 조직의 재정이 그리 수월한 편이 아니어서 회비 의존도가 낮다. 가령 전국YMCA의 경우 지난해 일반회계 12억 5,000만원 중 11%인 1억3,500만원만이 지역YMCA에서 보낸 분담금으로 충당됐다. 정부 또는 재단의 프로젝트 사업비로는 4억 3,100만원(30%). 자체 건물을 가지고 있어 건물임대비로 거둬들인 수입이 3억 5,000만원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역시 자체 회원이 없고, 가입 단체 회비를 모아 봐야 전체 재정의 10% 미만이다. 지난해 예산 총액이 3억 8,000여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3,000만원도 채 걷히지 않았다는 얘기다. 정부 프로젝트 1억 4,000여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사업수입으로 충당됐다.

지난 9년 동안 독일 국민이 낸 세금중 일부를 공익펀드 형식으로 지정기탁해 조성된 EEZ재단의 후원이 없었다면 상근자 7∼8명의 인건비를 채우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OECD가입으로 이 재단으로부터의 재정지원이 절반으로 삭감되기 전인 지난 98년까지 전체 예산의 50%를 재단 후원으로 충당했을 정도다. 장충동의 여성평화의 집을 짓는 데도 EEZ재단의 후원이 큰 몫을 했다. 건물 임대료를 내지 않는 것도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하지만 EEZ재단의 지원은 내년 6월이면 끊긴다. OECD 가입으로 98년 설정했던 3년의 지원 유예기간이 끝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연합은 지난해 12월 발족한 ‘한국여성기금’에 많은 기대를 했으나 출범 당시 모금 목표액인 1,000억원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까지 20억원 정도만 모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비 비중이 전체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단체중의 하나는 참여연대다. 지난해 5억 2,000만원의 결산액중 70%인 3억 5,000만원이 순수 회비다. 지난해 초 5,000명이었던 회원이 9,000명으로 늘어난 것이 회비 수입 증가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또 회비납부율이 70% 정도로 높은 편이다.

반면 후원금은 전체 결산액의 2.0%인 1,000만원에 불과하다. 참여연대는 또 정부와 기업 프로젝트는 받지 않고 있다. 정부·기업 감시를 하는 데 있어서 자칫 공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따라서 지난해 정책실 사업수익으로 2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지만 각각 UNDP와 한 일간지의 프로젝트였다.

“돈 나올 구멍 없는데 무슨 사업계획?”

이상에서 살펴봤듯이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이 회비로는 생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소규모 단체일수록 더욱 심하다. 결국 안정적인 재원마련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 회계 담당자들은 “돈 나올 구멍은 없는데 사업계획을 짜면 무엇하냐”며 볼멘소리를 내기 일쑤다. 또 소위 현장운동 부서들은 사업을 하면서 돈도 마련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각 단체의 지출 내역 중 상근자 복지 또는 교육비 항목조차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월급주기에도 빠듯한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이 정부·기업 프로젝트에 많이 의존하고 있지만 이 역시 불안정한 재정이다. 매년 일정한 금액의 프로젝트를 딸 수 있을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그간 정부가 해왔던 업무를 프로젝트를 통해 ‘제3섹터’로 이양하는 추세이고, 기업 역시 이윤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공적 기금을 만들어 시민단체에게 지원하고 있지만 지난 총선연대 활동에서 불거졌던 ‘음모론’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풍토에선 시민단체들의 정부·기업 프로젝트를 백안시하는 시각이 여전히 엄존하고 있다. 시민운동의 일천한 역사와 시민참여 의식이 희박한 현실적 조건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프로젝트를 받았다는 것 자체만으로 도덕성에 커다란 흠집이 생긴 것인 양 바라보는 것은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시민운동에 대한 또다른 폭력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민운동의 옹색한 살림살이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시민운동 내부를 들여다보자.

“시민단체에서 재정담당 또는 회원 관리 업무는 한직입니다. ‘내가 운동을 하려고 여기 남아 있지 돈을 벌려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인식 때문이죠.” 한 시민단체 시민사업 담당자의 말이다. 대부분의 시민단체 재정 또는 회원 담당자들의 잦은 물갈이는 이를 대변한다. 재정사업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환경연합만 해도 지난 한해에 회원관리 담당자가 여섯 번이나 바뀌었다. 그만큼 사업의 연속성이나 전문성이 뒤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시민단체들이 그간 회원 확보를 비롯한 재정 확충 문제를 어느 정도 등한시했는가를 알 수 있다.

또 대부분의 시민단체 재정 담당자들이 이 업무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한 단체의 재정기획팀장은 “다른 업무에 치이다 보면 항상 재정 문제는 뒷전으로 밀린다”며 “재정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조직적으로 배려하지 못하는 것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결국 전문가가 부재하고 조직적 배려도 없는 상황이 시민단체의 재정을 어렵게 하는 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시민들의 ‘무임승차’ 의식과 기부문화 정착을 가로막는 각종 법제가 시민운동의 재정난에 일조했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간 경영 마인드보다는 ‘투사’ 또는 ‘운동가’로서의 자질을 중요시하는 풍토도 시민운동 재정난을 부추기는 데 한몫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시민운동이 빠듯한 살림살이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경영마인드에 대한 획기적인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환경운동연합 이태일 기획사업국장은 “시민운동의 재정이 어렵다고 하지만 과거 재야운동 시절과 비교하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며 “회원 관리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참여를 원하는 시민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운동지원기금 양용희 사무총장은 “월드비전은 지난 한해 동안 ‘사랑의 빵’ 돼지저금통으로 30억원을 모금했다”며 “재정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시민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아이템을 개발한다면 시민운동의 회비자립은 장미빛 환상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김병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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