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12월 11일, 13일 새마을호 열차 바퀴에서 불이 나는 사건이 있었다. 기차 바퀴를 구성하는 축상이 마찰열에 의해 뜨거워지면서 화재가 발생한 경우인데 이를 두고 축상발열이라 한다. 이 사건은 언론에 의해 국민들에게 알려졌고, 한동안 여론이 들끓자 철도청에서도 부랴부랴 문제를 수습하는 듯했다. 축상발열에 대한 얘기는 그때 잠시 들끓다가 기억 속에서 묻혔지만 또다른 문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왜일까? 그때 그 사건을 되짚으면서 안전불감증에 빠진 철도청의 내부적인 문제를 짚어보기로 하자.
이 축상발열은 1년에 한 건 있을까 말까한 정도의 큰 사고이며,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사건이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를 비롯한 각종 대형사고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사고가 대부분 인재에 의한 것이며,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때 희생된 생명들을 생각하면서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안타까움을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새마을호 축상발열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98년 6월부터 12월까지 서울동차사무소에서 새마을호만 따져도 문서상에 축상발열 18건이 보고됐고, 그것은 서울동차사무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전 열차, 전국적 상황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축상발열이 발견된 최초 시점부터 몇개월이 지나도록 대책없이 오다가 12월 11일 하룻동안 바퀴에서 불이 나는 사고가 3건이나 있었다. 철도청은 문제가 본격적으로 커진 몇 개월 후에야 ‘긴급 업무지시’와 ‘열차안전운행을 위한 특별지시’ 등의 공문을 하달하고 검수조를 투입했다. 그러나 열차 탈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원인도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채 열차 운행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2월 29일 방송3사와 일간지에 보도되면서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언론보도에서 알려진 바로는 불량윤활유가 문제였다고 한다. 이 불량윤활유는 모회사의 제품이었으며, 그 당시 철도청이 기존 거래처를 이 회사로 옮기면서 윤활유를 교체했는데 시험운전도 없이 사용해오다 발생한 문제였다.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사고가 보도되면서 이를 미연에 방지했다는 안도감에 앞서 철도청의 관심사는 정작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것은 철도청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행동을 보였는가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철도청은 철저한 조사와 더불어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하면서 국민들을 안심시켜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철도청이 관심을 가진 건 “어떻게 언론이 알게 되었냐”는 것이었다.
“언론이 어떻게 알게 됐어?”
언론에 알려지게 된 것은 현장 검수원들에 의해서였다. 위험한 사태가 현장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는데도 철도청은 밖으로 이 사건이 알려질까봐 쉬쉬하며 현장에 대외적인 보안지침을 하달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문제 차량이 계속 발견되고, 정확한 검사 결과도 보고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목격한 바에 의하면 문제 차량은 운행을 계속했다. 이런 과정에서 현장에서 차량을 정비하는 검수원들은 위기의식을 느꼈고, 관리자들은 “표를 팔았으니 열차는 나가야 한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문제가 이렇게 악화일로로 치닫자 검수원들은 내부적으로 조용히 처리할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몇 명의 검수원은 외부에 알려 문제를 철저히 규명해야겠다는 의지를 굳힌 후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리하여 축상발열에 대한 보도가 나왔고, 언론에서는 불량윤활유가 문제였다고 발표했다.
그 외에 철도 안정성에 대한 많은 보고가 잇따라 이들에 의해 폭로되었다. ‘보수품 유용’의 문제 또한 알려졌다. ‘보수품 유용’이란 열차를 정비하면서 창고에 준비된 부품이 없어 당장 운행하지 않는 다른 체류차랑에서 필요한 부품을 떼내 임시로 사용한다. 그리고 그 체류차량이 운행을 나가면 또다른 차량에서 떼어내어 붙이는 방식이다. 현장 검수원에 의하면 그것은 부품의 노후화를 가속화하고, 위험률을 높이는 고질적인 병폐라고 한다. 더불어 부품의 품질문제, 불투명한 부품의 일괄구매 과정 등 그 동안 묻혀 있던 철도청의 내부문제들이 드러났다. 현장 검수원 몇 명에 의해 국민들은 열차의 안전성에 의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철도청은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4월 이후 축상발열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밝히고, 국정감사에서 “약 8개월 동안 ‘부품 유용’은 12건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측에서는 “공식 문서에 기록된 ‘부품 유용’ 건수는 한달 평균 35건이 이른다”고 밝혔다. 철도청은 국민의 의혹을 풀어주기는커녕 숫자 줄이기에만 급급했다는 것. 게다가 외부로 문제를 알린 현장 검수원들을 파면시켰다.
“열차에 내 가족들이 타고 있다면…?”
“저는 검수원입니다. 현장에서 문제가 있는 차량을 정비한다구요. 그런데 ‘축상발열’로 문제가 된 열차가 그냥 막 나간다구요. 만약에 그 열차에 내 부모나 형제가 타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문제를 외부로 알려 파면당한 황하일 씨의 말이다. 이때 같이 징계조치를 받았던 사람들은 황하일 씨를 포함한 서울동차사무소 검수원들인 윤윤권, 황효열, 석명한, 조항민 씨까지 5명이다. 황하일·윤윤권·황효열은 파면을, 석명한·조항민은 감봉 조치와 지방 전보 처분을 받았다.
“황하일 씨는 근무태도가 불성실하고, 상사에게 폭언과 주먹을 휘둘렀던 것이 가장 큰 징계사유입니다. 그리고 윤윤권·황효열은 업무태만이 주요 이유이며, 상사인 당무계장에게 면박을 주었습니다.”
철도청 징계·상벌팀의 방동안 사무관의 말이었다. 무슨 말인가? 철도청에서는 이들의 징계 사유가 철도청 내부의 문제를 언론에 알린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도 “황하일이라는 사람이 아직도 언론에 이리저리 전화를 하는 모양인데…”라고 노골적으로 감정을 표출했다. 또한 징계위원회의 심의는 “중립적이었다”고 밝혔다. 과연 그랬을까? 철도청이 징계 근거로 제시한 폭력과 근무태만은 도대체 왜 갑자기 그 시점에서 튀어나왔을까?
철도청이 제시한 황하일 씨의 징계 사유, 즉 상사인 김봉익 계장의 멱살을 잡고 폭언과 주먹을 휘둘렀다는 사건은 97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언론에 제보하기 약 2년 전 있었던 일이다. 현장에서는 간혹 관리자와 검수원 사이에서 마찰이 일어나곤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서울지방본부 위원장의 중재로 사무소 노사 대표간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미 합의가 이루어진 후 종결된 사실을 왜 2년이 지난 다음에 징계 사유로 채택했는가?
“말이 오고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안 때렸어요. 철도청에서는 때렸다고 하고, 저는 맹세코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이런 경우 어떡합니까? 목격자 증언이 있어야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 당시 목격자 홍덕표 검수원에 의하면 “때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확인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증언도 했다. 철도청에서는 이것에 대한 어떤 반론도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황하일 씨의 징계 사유는 “상사에게 폭력을 휘둘렀음”이다.
징계에 부당함을 느낀 이들은 ‘징계처분취소소송’을 제출했다. 이 사건에 대해 참여연대 공익제보 지원단은 공동변호인단을 발족했다. 이 사건은 열차의 탈선사고 위험 등을 막기 위한 것으로 공익을 위해 내부문제를 외부에 알린 것이므로 공익제보로 봐야 한다는 것.
죽음 부른 부당징계
약 1년간의 법정 싸움이 끝나고, 지난 5월에 판결이 났다. 황효열·윤윤권은 법원에서 해임처분을 취소받아 복직하고, 나머지 사람들의 징계는 그대로 인정이 되었다.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이들이 받은 고통을 고스란히 혼자 짊어져야 했다. 아직도 해임 상태인 황하일 씨는 “일터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개인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다. 때로는 괴팍해지고, 성격이 변한다는 것을 느낀다. 분한 감정이 해소되지 않으니까, 괴롭다. 가족이 아니었으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들은 파면 후 매일같이 서울역 광장에 나가 철도청의 부당함을 알렸다. 나중에는 “지쳤다.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으나 철도청 직원들 간에 이 사건은 하나의 상징적인 싸움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개인적인 이유로 그만두지 못하는” 사건이 되어 버린 것. 철도청 직원들로선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귀추가 주목되었던 것이다. 싸움의 초기에는 서울지역 동료들과 직원 2000~3000명이 후원회를 조직하여 생계비를 보조하기도 했다. 법정 싸움이 장기화되고, 판결 또한 두 사람만 승소해 모두들 지쳐갈 무렵 문제는 또 다른 곳에서 터졌다. 감봉·전출 징계를 받았던 조항민 씨(38세)가 자살한 것이다.
“저도 두 번 정도 전출지에 조항민 씨를 만나러 가봤어요. 그때 ‘외롭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어요. 소위 우리 사회엔 왕따라는 것이 있잖아요? 평소 성실하고 가족을 끔찍이 생각하고 아끼는 사람이었습니다.”
조항민 씨는 동해객화차사무소로 전출되었다. 경제적 사정과 전출로 인해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 동해로 갔다. 그의 갑작스런 전출을 가족들 또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며, 이것은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가정불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2주에 한 번 일곱, 여덟 시간씩 차를 타고 가족들을 만나러 갔다고 한다. 그런데 1년을 기다린 법정판결에서 그에 대한 징계취소소송은 각하되었다. 가족들과 언제까지 떨어져 있어야 할지 모르는 절망감과 가정불화, 사무실의 냉담한 분위기 등에 대한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황하일 씨를 비롯한 동료들은 “부당징계가 어떻게 한 가정과 한 인간을 파괴시키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인데 철도청에서는 가정불화에만 원인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올해 7월 28일 복직했던 윤윤권·황효열 씨는 현재 다시 3개월 정직·2개월 정직으로 재징계를 받았다.
철도청 대량 부당징계 잇따라 남발
‘축상발열’ 공익제보에 대한 징계 이후에도 철도청의 부당징계는 계속되었다. 시민단체에서는 철도청의 이러한 대량징계조치가 위법사항이며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냐는 우려를 가지고 진상조사단을 통해 합리적인 해결을 모색했다. 이 문제는 철도노동조합이 지닌 간선제에서 비롯되었다. 대법원에서 노동조합 대의원의 간선제 선출은 위법이라고 판결을 내렸고, 일부 노조원들은 ‘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이하 공투본)’를 결성하여 직선제로의 규약개정을 위해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서명운동 결과 총조합원 25,886명 중 11,399명이 서명하여 직선제를 내용으로 하는 선거관리규정을 개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존 간선제에 의해 선출된 철도노조 집행부와 공투본 노조원들과의 마찰이 발생했고, 철도노조 집행부는 경북 울진에서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했다. 공투본 노조원들도 참석하기 위해 울진으로 갔으나 철도노조 집행부와 공투본 노조원들과 다시 충돌이 있었다. 여기서 제기된 철도노조의 문제점은 공고된 회의장이 아닌 백암호텔에서 규약개정과 김기영 위원장의 재선출을 강행하고, 공투본 노조원 44명을 노조에서 제명하자고 결정한 것이다. 철도노조는 공고도 없이 밀실에서 ‘임시대위원대회’를 치른 것이었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철도청이었다. 철도청은 이날 대의원대회에 참석했던 공투본 노조원들만 대량 징계하면서 노노간의 분쟁에 개입했다. 징계 사유는 인사관리규정 제48조에 근거해 ‘근무가 불성실한 자’, ‘인사청탁 등으로 물의를 야기한 자’로 나타나 있다.
이에 대해 공투본 이영익 상임의장은 “노조원들이 하루 결근하고 노조대의원대회에 참석한 것을 근무불성실이라 하여 징계를 내린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조치이다. 또한 노조대의원대회에 참석했던 철도노조측은 제외하고, 공투본 노조원들만 모조리 징계를 받았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의 진상조사단에서도 철도청의 이러한 징계조치는 위법한 행위이므로 대량징계를 중단하고, 원상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철도청의 부당징계는 당사자들의 인권문제로만 얘기될 사안이 아니다. 대형사고를 미리 예방하기 위해 내부 고발을 한 현장 검수원들을 징계하는 것은 안전대책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또한 철도노조의 민주화세력에 대한 대량징계 역시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아직도 국민들은 철도가 안전한지 의심을 버릴 수가 없다.
법원이 공익제보자를 보호해야
‘축상발열’, ‘보수품 유용’과 관련하여 공익제보를 한 황하일 · 윤윤권 · 황효열 · 조항민 · 석명한의 변론을 맡았던 이상희 변호사를 만나보았다.
이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어떤 것이었는가?
"징계처분 취소소송으로 철도청에서 제시한 징계사유 사실관계 확인과 징계의 타당성을 따지는 것이었다. 우리측에서는 징계가 타당하지 않음을 입증하는 모든 증거와 증인을 제시했으나 철도청에서는 그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주장만 했다. 그런데도 우리측 증언이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해할 수가 없다."
징계는 이들이 언론에 공익제보를 한 이후에 이루어졌다. 정황을 봤을 때 공익제보로 징계를 받은 것인데 철도청의 징계 사유는 그무태만, 상사에 대한 불복종 등에 관한 것이었는데?
"철도청이 밝힌 내용들은 징계의 이유가 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고 조항민 씨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함게 일하고 싶습니다’라는 리본을 패용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노동관계에서 보면 노조원들이 당연히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철도청의 징계조치에 대해 노조원들은 국가공무원법 인사관리규정 개정 · 폐지를 주장한다. 근무태만이라든가 공무원 품위 유지 등에 관한 규정인데 자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지 않은가?
"다른 법에서는 징계처분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국가공무원법의 경우 근무태만 · 품위유지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포괄적이어서 자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많다. 무엇보다도 이런 법을 남용하는 기관이 문제이다. 또한 소청심사위원회가 있는데, 이는 징계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해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한 취지이나 그 기능을 전혀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공익제보자를 보호할 수 있는가?
"지금으로서는 보호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사법부가 이들을 구제해야 하는데, 이번 사건에서는 사법부의 시각에 문제가 많다고 느꼈다. 공익제보에 대한 사회여론이 조성될 것을 우려해 사건을 질질 끌다가 조용해지니까 선고를 내리는 것 같은 인상을 많이 받았다."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부패방지법이 입법되어야 하는 것으 물론이고 전반적 사회분위기가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공익제보자를 왕따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는 공익제보자를 포상하고 제보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공익제보로 인해 불이익을 당했을 때는 법원이나 정부에서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반조치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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