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의 고용불안, 저임금 …. 절반이 넘는 노동자가 고용불안에 떨고 있다. IMF 이후 한국사회의 임금노동자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산다. 열심히 일해도 빈곤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WORKING POOR. 본지는 IMF 이후 급격히 ‘비정규직의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한국사회를 진단하고, WORKING POOR 즉 ‘일하는 빈곤’의 문제를 집중적으로보도할 것이다. 편집자 주
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극심한 경기침체(경제성장률 -6.7%)를 경험한 우리 경제는, 99년에는 10.7%, 2000년에는 9.3%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물론 최근 경기가 다시 하강국면에 접어들고 있지만, 금년 성장률도 5% 가량 된다 하니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닌 듯싶다. 물가상승률은 99년 0.8%, 2000년 2.3%에 이어 금년에는 3% 대로 높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전에 5∼9% 대의 물가상승을 경험해 온 터에, 이 또한 우려할 일은 아닌 듯싶다. 게다가 경상수지는 3년 연속 흑자를 낸 데 이어 금년에도 흑자를 낼 전망이고, 작년 말 외환보유고는 962억 달러로 세계 5위를 기록했다. 3년 전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하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노동시장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IMF 3년 동안 골병 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첫째, 지난 40여 년 동안 단 한 해도 감소한 적이 없는 취업자수가 98년에는 111만 명 감소했고, 실업자(실업률)는 97년 56만 명(2.6%)에서 98년 146만 명(6.8%)으로 90만 명 증가했다. 물론 작년에는 취업자수가 외환위기 직전 수준을 회복했고, 실업자(실업률)도 89만 명(4.0%)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취업률(15세 이상 인구 대비 취업자수)은 58.4%로 외환위기 직전 수준(60.6%)을 회복하지 못했고, 과거 2% 대의 낮은 실업률도 다시 찾아오지 않을 전망이다. 이것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가 100만 실업자를 안고 살아가야 함을 의미함과 동시에,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상당수가 적절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구직활동 자체를 포기한 실망실업자임을 의미한다. 더욱이 취업자 가운데 주 35시간 이하로 일하는 불완전 취업자가 97년 150만 명에서 2000년 210만 명으로 증가하는 등 취업구조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임시·일용직이 급증하는 대한민국
둘째, 임금노동자는 98년 100만 명으로 감소했다가 99년부터 증가해 작년 3사분기에는 외환위기 직전 수준을 회복했다. 그러나 임금노동자 1,300여 만 명 가운데 97년에는 상용직이 715만 명(54.1%), 임시·일용직은 608만 명(45.9%)이었는데, 작년 3사분기에는 상용직이 628만 명(47.7%), 임시·일용직은 690만 명(52.3%)으로, 전자는 90만 명 감소하고 후자는 80만 명 증가했다. 이것은 우리 기업이 98년에 대규모로 인력감축을 단행한 뒤 필요한 인력을 임시·일용 등 비정규직으로 충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노동부에 따르면 10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 노동자의 99년 임금인상률은 12%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전체 임금노동자를 대상으로 집계한 피용자 1인당 보수는 99년 1%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이것은 10인 미만 사업체의 노동자와 임시·일용직들에게는 극도의 저임금 일자리가 제공되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그 결과 노동소득분배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노동자들 내부의 임금소득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서구 어느 나라를 돌아봐도 우리처럼 임시·일용 등 계약근로를 남용하는 나라가 없다. 99년 3월 유럽연합 노사는 ‘계약근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회원국은 노사단체와 협의를 거쳐 계약근로 체결 또는 갱신을 정당화할 객관적 사유, 연쇄근로계약의 최대기간, 갱신횟수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의무화’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이것은 계약근로의 남용이 노동자의 생활과 권리를 침해하고 기업의 생산성과 국가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는 데 노사가 인식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법으로 정한 사유를 충족시키는 경우에만 일정 기간의 계약근로를 체결할 수 있다. 법으로 정한 사유와 절차를 충족시키지 않고 계약근로를 체결한 사용자에게는 벌칙이 적용되며, 그 계약은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묵시적인 갱신을 수반하는 일용근로계약도 갱신의 수가 한정되어 있지 않으면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으로 간주한다’라 하여 계약근로의 남용을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근로기준법 제23조는 ‘근로계약은 기간을 정하지 않은 것과 일정한 사업 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기간이 1년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계약기간이 1년만 초과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계약근로를 체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규직을 채용하면 정당한 사유와 절차가 없는 한 사용자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고, 근속기간 1년이 지나면 퇴직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계약직을 채용하면 계약기간 종료를 이유로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고, 계약기간도 1년 이내이니 퇴직금을 안 줘도 된다. 뿐만 아니다. 현행법상 계약근로자도 미리 계약기간을 정해 놓고 채용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본급이 정규직의 60∼80%밖에 안 되고, 상여금이나 각종 수당이 차별 지급되며, 근로기준법상 각종 보호 조치가 무시되고 있다. 이것은 계약근로자들이 언제라도 실직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각종 불이익을 감수하기 때문인데, 자신에게 근로기준법상 각종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더욱이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직장의료보험과 국민연금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고, 우리나라 노동조합이 대부분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노동조합이므로 노동조합 가입률도 1% 미만이다. 이러한 사정을 기업주들이 놓칠 리 없다. 그 결과 IMF 경제위기 속에서 해고된 정규직 일자리는 고스란히 임시·일용근로로 대체되고, 제조업체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9%대로 낮아졌다.
노동자 절반 인권의 사각지대로
뒤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계약근로 등 비정규직 남용을 규제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계약근로가 10% 남짓한 유럽연합도 법제화를 서두르고 있는 터에,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우리나라에서 계약근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음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분신한 지 30년이 지났고, 21세기 새 천년을 맞이한 지금,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부는 최우선적으로 근로감독 기능을 강화하여 노동인권의 사각지대를 일소함과 동시에, 근로기준법 제23조를 개정해서 계약근로를 체결할 수 있는 사유와 절차를 제한하고, 이를 위반한 계약은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으로 간주하는 조항을 삽입하는 등 입법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또한 노동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운동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함은 물론이다. 시장의 폐해를 막기 위해 국가가 있고 제도가 있고 운동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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