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2년 03월 2002-03-01   1035

심인숙과 팥정이, 또는 콩정이

심인숙과 팥정이, 또는 콩정이


세상을 메우고 있는 개체의 수만큼 이름이 존재한다? 아니다, 그보다 더 많은 이름이 있다. 한 개체가 둘 이상의 이름을 갖는가 하면, 바라는 이름을 먼저 만들어 놓고 대상을 기다리는 경우까지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사무실을 둘러봐도 그렇다. 심인숙은 사무국에서 일하는 상근활동가 최인숙의 별칭이다. 한창 인기를 끌던 배우 심은하의 성만 떼어 붙여준 것이다. 큰 키와 배우 못지않은 미모에 태권도 2단이란 비장의 무기도 갖추었지만, 무엇보다 성실한 태도와 착한 심성 때문에 베스트 간사로 뽑히기도 했다. 심은하의 이미지는 표피적 아름다움뿐이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최인숙 내면의 아름다움을 상찬하고 격려하는 부상의 의미로 누군가 선물한 이름이다. 곁에 있는 이정이 사무국장이 섭섭해할까봐 또 다른 누군가가 기민하게 배려했다. 팥정이라고. 임원과 간사들 사이에서 동분서주 정신 없는 사무국장이 수시로 휘두르는 칼은 잔소리다. 그 지겨운 간섭을 조금이나마 모면해볼까 던진 이름이다. 하지만 아무리 선의를 내세운다 하더라도 팥쥐의 심술이 께름칙해서, 상황에 따라 콩정이를 섞어 부르기로 했다.

한 사람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일은, 부르는 사람들과 불리는 사람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창조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이른바 투사의 방법이란 것도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 사람의 성품에는 어떠한 이름이 어울릴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관계는 형성된다. 그래서 사람의 별칭이란 다른 사람들이 붙여주고 불러주는 것이 제격이다. 그런 과정이 승인돼야 넘쳐나는 이름의 공해 속에서 나름대로 견뎌내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먼저 나서서 나를 이렇게 불러달라고 요구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어렴풋한 기억에 의하면, 누군가는 앞으로 DR로 표기해 달라고 기자들에게 언젠가 부탁까지 했다. 모수자천(毛遂自薦)의 주인공은 당연히 정치인들이다. 하기야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어디가 곱다고 그들에게 근사한 다른 이름을 헌정하겠는가. 그것도 다른 이름을 얻지 못해 안달인 자신에게 만족스럽고 실체와는 거리가 있는 허망한 별호를!

연유야 어쨌든, 언젠가부터 주요 정치인들을 다른 식으로 부르는 관습이 생겼다. YS니, DJ니, JP니 하는 형식이다. 이건 물론 언론에서 시작한 것인데, 어쩌자고 알파벳으로 표기할 엄두를 냈는지 모르겠다. 훗날 어디쯤에 가서는 영어왕국이 된 한국이 미국의 속주로 편입되는 미래공상소설 묵시록 일구를 예감한 지혜의 발로였을까. 그러고 보니 정치인이라 해서 아무나 대문자 두 자로 된 이니셜로 예우하는 건 아니다. 국무총리 이상의 중량급이어야 하는 모양이다.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이름을 열망하는 주자들이 웅성거린다. 일고여덟의 지금 이름은 ‘후보자의 후보자’다. 조만간 ‘후보자’가 되고, 나아가 이니셜로 불리길 원한다. 그들이 원하는 이름은 대통령이다. 그들은 이름을 먼저 정해놓고 자신들의 이미지, 즉 가공된 성격을 거기에 투사하고자 한다. 온갖 언론이 합세하여 거든다. 화장도 하고 어투도 고친다. 그러면서 대답은 천편일률이다. 일말의 소신은 형식의 대세에 파묻혔다. 오직 다른 이름을 얻기 위해 가장 효율적 방법만 고안한다.

우리의 정치인이란 바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인간이다. 달리 생각하고 달리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이름이 실체 부합성 정도와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름이야 뭐라고 하든, 먼저 자신의 실체를 가다듬자고 한마디 건네고 싶다. 심인숙과 팥정이, 아니 콩정이는 그 이름이 없어도 성실하다.

차병직 변호사 ·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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