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문부식 논쟁’이 한창이다. 한국 사회의 진보 또는 개혁 세력과 지식인들이 이렇게 신속하고 격렬하게 논쟁에 뛰어들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어쨌거나 ‘문부식 논쟁’이 이렇게 폭발적인 양상을 띠는 것은 ‘최초’(사실 최초는 아닌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불행한 일이다)의 문제제기가, 오랜 세월 국가폭력을 옹호해 온 매체로 평가받는 『조선일보』를 통해 이뤄졌다는 데 적잖은 이유가 있다. 1989년 5월 3일 있었던 동의대사건에 대해 지난 6월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가 민주화운동으로 판정한 것에 대한 문씨의 비판적 문제제기를 『조선일보』가 대서특필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7월 12일치에서 동의대사건 민주화 인정은 납득할 수 없다는 제목을 달아 문씨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는 글, 이런 주장 등이 담긴 새책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광기의 시대를 기억함』(삼인 펴냄) 소개 등과 함께 전면 인터뷰로 처리하고 이어 ‘한 지식인의 치열한 자기반성’이라는 이름의 이례적인 사설(7월 13일치) 등을 통해 ‘문제화’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문부식 논쟁’에 뛰어든 것은 이 때문만은 아니다. 문씨의 (1980년대) 저항폭력에 대한 문제제기, 광주항쟁 등 민주화운동 명예회복과 보상과정이 국가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며 던진 강한 문제제기 등은 어쩌면 더 예민한 쟁점이다. 특히 문씨의 문제제기 영역 안에 들어있는 광주항쟁 등 민주화운동 명예회복과 보상작업, 의문사진상규명 등의 문제가 그렇다. 이 ‘역사적’ 작업은 유가협 가족들의 400일이 넘는 천막농성 투쟁 끝에 어렵사리 법률 제정을 거쳐 진행되고 있지만, 국가기관의 비협조와 방해, 보수세력의 반발 등 벽에 부딪혀 있고, 다른 한편에선 예전의 기득권 세력의 상당수가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탓에 왜소화하고 있기도 한, 그래서 더욱 ‘치열한 사회적 쟁투의 장’이기 때문이다.
‘문부식 논쟁’은 그동안 각 일간지와 시사지에 비중있게 소개됐다. 또 『오마이뉴스』의 김명인-변정수-정도상으로 이어진 논쟁, 『한겨레』 ‘왜냐면’의 홍윤기 동국대 교수와 김보경씨(연세대 비교문학과 석사)가 참여한 논쟁, 계간 『사회비평』 가을호에 실린 김진석 인하대 교수의 ‘위험한 근본주의에 빠진 일상적 파시즘론과 비폭력주의’, 계간 『경제와 사회』의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와 조정환 성공회대 강사의 관련 글 등이 ‘문부식 논쟁’을 구성하는 글들이다. 읽어보시길 바란다.
9월 5일 저녁 문부식 씨를 서울 홍익대학교 앞 삼인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났다(그는 삼인출판사가 펴내고 있는 계간 『당대비평』의 편집위원이다). 인터뷰는 세 시간 넘게 이뤄졌고, 공식 인터뷰가 끝난 뒤에는 다음날 새벽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이 글은 공식 인터뷰에서 오간 내용만을 담는다.
사회적 발언이 빚는 결과는 책임져야
적잖은 이들은 하필이면 왜 『조선일보』를 통해 주장이 제기됐는가라고 비판 또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일종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이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내 말이 『조선일보』에 실림으로써 문제가 얽혀버린 느낌이다. 상당히 계산된 발언이었다고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건 결코 아니었다. 『조선일보』의 언어의 횡포, 국가폭력과 기득권 세력을 옹호해 왔던 매체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다. 개인적으로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변명하고 싶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두 가지 면에서 현명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우선 내 발언은 책이 나올 것을 전제로 역사문제연구소 토론회(6월 28일)에서 이뤄졌다.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도 대부분 그 발언을 토대로 한 것이다. 토론회 뒤 『조선일보』 기자한테서 기사화하겠다고 전화가 왔다. 그러나 나는 『조선일보』는 다른 내용보다 동의대사건에 관심이 많을 텐데, 그 얘기를 하기에 적합한 매체가 아니라고 지적한 뒤 기사화를 보류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토론회 일주일 뒤 『한겨레』 기자가 토론회의 논쟁과 발언을 기사화했고, 조선 기자가 그걸 봤는지 자기도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토론회 현장에는 『한겨레』와 『조선일보』 기자가 있었다). 그때 ‘막을 수 없다면 비교적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인터뷰에 응했다. 그때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면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동의대 관련 발언이 과거 민주화운동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려는 견해를 지닌 『조선일보』라는 매체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몰랐다면 바보이거나 내숭이다. 사회적 발언이 가져오는 결과와 영향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와 관련한 입장을 늦지 않은 시간 안에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책의 논지와 관련해 중요한 개념들을 검토하자. 폭력을 어떻게 규정하나. 폭력은 언제나 나쁜 것인가. 어떤 경우에 불가피하다고 보나.
“폭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 폭력론을 펴기 위해서 책을 쓴 게 아니라 동의대사건이라는 특정사건을 말하기 위해선, 1980년대 운동과정에서 저항폭력 안의 과잉부분을 지적하기 위해선 일정한 전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미숙하고 불충분한 점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내 발언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게 ‘우리 안의 폭력을 성찰해야 국가폭력을 제대로 성찰할 수 있다’는 말인 것 같다. 이 말이 순서론으로 해석됐는데, 그럴 소지가 있다고 본다. 난 저항폭력에도 예민한 사람이라면 국가폭력 등 다른 폭력에 둔감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강제를 합법으로 가장하려는 국가폭력과, 폭력을 폭로하려는 저항폭력은 다르다. 그러나 이항대립으로 묶어두면 끝까지 순서론에 빠진다. 폭력인 한 동시적으로 다루되 설명은 다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항대립을 넘어 중층적 사고를 해야 한다. 폭력은 폭력이다. 파업도 폭력일 수 있다. 그렇다고 폭력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홍윤기 교수의 멋진 말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폭력이 자기표현의 마지막 매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파티스타 원주민이나 베트남 민중의 게릴라 무장투쟁을 한번도 부정해 본 적이 없다.
‘불가피한 폭력’은 구체적 맥락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불가피한 폭력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정당한 폭력’이라고 이론화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
난 1980년대 저항폭력은 모든 게 옳았는가, 무오류였는가를 묻고 싶었다. 학생운동이 군사정권과 싸우며 조직이나 규율 등 문화가 군사화한 것 등은 성찰해야 한다. 동시에 검토하지 않으면 성찰의 공간을 열 수 없다. 이 점에서 조금 무리가 따르더라도 성찰의 여백을 열자는 것이다. 동의대사건이라는 구체적 쟁점을 가지고 폭력문제를 얘기했는데 이를 진영론적으로 논쟁을 몰아가면 나로선 곤란해진다.”
반미는 민주화운동이 아니다?
책의 5장(폭력과 신기루-그날 그곳에서 죄지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가운데 ‘5·3동의대사건’ 재구성 부분을 보면, 학생들에게는 ‘최선이었나’ ‘피할 수 없었나’라고 묻는 반면 정부나 경찰에는 ‘현실적으로 XX이 가능했겠나’라고 묻는다. 양자에 대한 문제제기의 강도가 크게 다르다는 느낌이다. 실존(개인 경험)의 과도한 투사, 즉 역편향의 측면이 있는 것 같은데.
“인정한다. 이제 보니 경찰에게는 정황론에 가까운 질문을 던지고 저항폭력에게는 좀더 엄격하게 질문한 것은 공정한 글쓰기라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겸허하게 수용하고 반성할 여지가 있다. 처음에는 동의대 문제를 『한겨레』에 시론 형식으로 쓰려고 했다. 그러나 자료에 접근하면서 학생들의 자기평가에 화가 났다.
1968년 하버마스가 독일 학생운동을 강하게 비판하는 글의 서문에서 ‘내가 신기루와 같은 학생들의 자기평가가 없었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운동의 주체들이 자기 행위를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동의대사건을 항쟁으로 규정하는 것이나, 항쟁 계승 마라톤대회를 해마다 여는 것이 불편했다. 도대체 뭘 계승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학생들의 자기평가를 보면 전체가 독재권력의 ‘음모’와 그에 대한 ‘정당한 대항’이라는 평가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그 점은 문제다.”
책에 담긴 생각과 주장의 핵심은 동의대사건보다는 오히려 ‘광주’에 관한 것에 담겨 있는 것 같다. 책의 서문에서 광주와 관련해, ‘우리는 폭력의 단순한 방관자인가 공모자인가’라고 물은 부분이나, 폭력적 ‘희생양 제의’에 대한 ‘우리’라는 불특정 다수의 ‘집단 무의식적 합의와 동의’와 같은 부분은 충분히 논쟁적이다. ‘가해자 의식’을 지녀야 한다는 것과 ‘방관자 또는 공모자’라는 지적은 차원이 다른 문제 아닌가. 동의하기 어렵다. (책의 관련 내용=광주에서의 광기어린 학살은 권력욕에 가득 찬 소수 군부의 예외적이고 특별한 폭력이며, 우리들의 침묵은 ‘폭력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우리는 폭력의 단순한 방관자인가 아니면 공모자인가…박정희가 추진한 근대화의 맹목적 속도에 열광하던 우리는 그의 죽음으로 그 속도가 갑자기 멈추어버렸을 때 그것을 보장해 줄 어떤 강력한 권력을 소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광주를 일거에 타자화시켰던 ‘희생양 제의’에는 근대(화)에 대한 우리들의 사회적 집단 욕망과 광기가 깊이 개입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광주에서 보여진 폭력은 한국적 근대가 내장한 욕망과 갈등과 구조적 폭력을 수습·봉합하는, ‘폭력으로써 폭력을 다스리는’ 메커니즘의 실현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우리는 그 폭력과 우리가 맺고 있는 합의와 동의의 맥락을 종결된 광주의 기억 속에 감추어두려 하는 것은 아닌가.)
또 하나 광주항쟁과 관련한 명예회복 및 보상 과정을 국가에 의해 공증된 ‘정사’로 판단하며, 이 과정을 종결시킨 것은 국가의 폭력적 성격인가, 아니면 그것에 맞서게 해온 기억의 역능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일단 ‘국가폭력에 맞서게 해온 기억의 역능’을 종결시킨 게 아니냐는 지적에 이견이 제기될 수 있고, ‘종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출발’ 또는 ‘중간 통과지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한국 사회의 집단 무의식, 또는 사회적 욕망체계를 곧바로 가해자 또는 공모자로 규정하는 것 사이에는 다른 층위가 있는데 구분 없이 이야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수긍한다. 특히 공모자라는 규정은 민중을 적으로 몬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공모자라는 말만 떼어놓고 보면 무리하고 지나친 규정이라는 점 인정한다. 공모자라는 규정은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고. 그러나 ‘공모자인가’라는 말은 실제 판단이나 사회과학적 규정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환기를 위한 문학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광주가 제도화되기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광주에 대한 기억을 서둘러 종결시키려 할 때 ‘우리 각자가 책임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광주’는 과연 몇몇 권력욕에 눈이 뒤집힌 소수의 책임이고, 우리는 공포에만 사로잡혔던 것인가. 내가 부산 출신인데 솔직히 영남 사람들이 정치적 과정으로 광주를 제도적·법적으로 인정하지만, 내면에서 승복하는가는 의문이다. 그것이 암묵적이든, 집단 무의식이든 그 안에는 박정희식 근대화를 보장해 줄 강력한 권력에 대한 희구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 봐야 한다.
‘광주’에 대한 내 발언은 대립항이라기보다는 보완적 성격의 것으로, 보론적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난 희생양 논리로 설명해 보고 싶었다. ‘폭력으로 폭력을 덮는다’는 지라르식 설명을 해보고 싶었다. 우리 안의 갈등을 봉합·수습하는 권력의 폭력으로서, 광주 폭력이 ‘기획폭력’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 욕망의 체계, 그런 국가폭력의 성격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먹혀 들어가는가를 해명해 보고 싶었다. 한국적 근대화의 문제를 드러낸 IMF의 극복도 국가주도 방식이었다. 도대체 유일 행위 주체로서의 국가문제는 광주 때와 지금 얼마나 달라졌나, 그런 걸 묻고 싶었다.
광주가 제도적으로 승인받는 과정과 관련해, 김동춘 교수는 국가에 의해 억압 받아온 민중들이 국가적으로 또는 제도적으로 승인받으려고 하는 욕구 자체를 오류라고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조희연 교수는 과거청산은 국가주도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측면이 있다는 점 인정한다. 난 국가가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의 공적 의무, 즉 복지와 분배, 자본의 자유를 제어하는 문제 등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예컨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시민기금에 떠넘기려는 것처럼, 국가가 할 일을 시민사회에 떠넘기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나 그것과 과잉국가화는 다른 것이다. 난 국가주도 과거청산에는 반대한다. 한편에는 불가피하거나 당연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정통성 강화 측면이 있다는 점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난 우리가 원칙을 잃어버리고 있는 게 아닌가 묻는 것이다. 희생자 우선 원칙 말이다. 도대체 우리가 뭘 해왔나? 보상이라는 것도 명망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닌가? 또 국가가 어떤 기준으로 민주화운동을 가르는가. 서울 미문화원 사건도 반미는 민주화운동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저 광주와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민주화운동이라는 것 아닌가.
광주 문제도 제도화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자는 것이다. 민주화운동 보상만 해도 처음엔 돈 받으면 50%는 아픈 사람들 치료에 쓰자는 논의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 없다. 모두 개별화했다.
제도화가 다른 투쟁으로 가는 지렛대가 될 것이라는 인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과 같은 접근 방식, 즉 김영삼 정부 때 광주특별법이나 현정부의 광주 보상방식 등으론 좀 어렵겠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주어로 해서, 제도화로 흘러가 버리면 저항의 역동성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서서히 밀려나버리는 일이 생길 수 있다.”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말하고 싶었다
그는 많이 힘들어 했다. 인터뷰를 하러 갔더니 담배를 세 갑이나 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엔 목소리도 많이 떨렸다.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도 많이 힘들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어느 순간엔가 각성의 계기를 주었던 누군가가 자신의 사회적 발언 탓에 상처받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그 발언으로 세상의 또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어쨌거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는 논란의 와중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말을 했다. 하여튼 내 발언의 맥락이 운동권의 자기반성, 참회로 읽히는 것에 대해선 정말 반성해야 할 것 같다. 1980년대 운동의 정당성을 공격하거나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난 오히려 과거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말도 했다. ‘우리 안의 파시즘’이란 개념은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안과 밖을 나눈다는 점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고, ‘우리’가 원흉이라며, ‘내 탓이오’ 식의 도덕주의 문제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 파시즘’이란 말이 적절한 것 같다. 이 말은 제도적 파시즘이란 말을 전제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니까. 앞으로는 ‘우리 안의 파시즘’ 또는 ‘우리 안의 폭력’이라는 말은 쓰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그의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거나 ‘정치적 민주화나 제도적 개선만으론 부족하며 일상에 스며든 파시즘을 걷어내려 노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엔 전적으로 동의한다. 오랜 세월 괴물에 짓눌려 살아왔거나, 괴물에 맞서 싸우다 괴물을 닮아버린 불행한 상처를 치유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요즈음 그의 주장이 좀 너무 나가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다. 그는 자신의 ‘일상적 파시즘’론은 시론일 뿐, 실천적 함의로 나아가기까지는 아직 멀었고 모자란 게 많다고 했지만, 내 생각에 세상의 모든 것은 실천의 장에서 맞부딪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그가 자신의 경험,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그리고 그 이후의 많은 생각과 고민 따위를 소재로 삼아 이번에 하고 싶었던 발언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는 왜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구하지 않았고, 않을 것인지를 그리고 그 사건의 방화라는 ‘폭력’과 그 때문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 지금껏 무슨 생각을 해왔는지를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자신의 실존을 두고 주장을 편다면, 세상의 누구라도, 설혹 그 주장에 비판적인 의견을 지닌 이라도 좀더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비판을 하더라도 좀더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어쨌거나 이번 논쟁이 한국사회의 수많은 논쟁이 그랬던 것처럼 인신공격으로 흐르지 않기를 바란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