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2년 10월 2002-10-24   1132

9.11테러1년, 아프카니스탄을 가다2

카불은 지금 ngo들의 깃발 꽂기 진행 중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다녀온 지도 어느덧 두 달이 가까워 온다. 모두들 잘 있을까. 빵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이들에게 빵을 구걸하던 할아버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까. 아이들은 지금도 카불 동물원 옆 흐르는 흙탕물 같은 강에서 미역을 감고 있을까. 이런, 물놀이를 하기엔 이미 날씨가 쌀쌀하겠구나.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닥쳐올 텐데 무너진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숫자를 배우던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천막 하나가 전 재산인 사히트 팍틸 할아버지 가족은 두 살배기 병든 손자와 함께 무사히 이 겨울을 넘길 수 있을까. 9·11과 미국의 공격으로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고 평화가 찾아왔다지만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느끼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하는 걸까.

카불의 특권층 UN과 해외 NGO

카불. 평화가 찾아온 지 9개월이 넘었지만 22년간의 내전과 탈레반의 가혹한 통치는 여전히 벌겋게 상처를 드러내고 있었다. 노을이 내린 흙의 도시 카불은 황량한 고대 유적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집들, 남아 있는 벽들도 선명하게 패인 총탄 자국들로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듯 불안하다. 전기도 수도도 없다. 길모퉁이 공동수도마다 노란 석유통이며 어느 군부대에서 유출되었을 ‘USA’ 글자가 선명한 깡통들을 든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서 삐걱삐걱 펌프질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무너진 벽 너머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가 보다.

과일, 양고기 꼬치구이, 빵에서부터 부르카(여성들이 옷 위에 뒤집어쓰는 천), 양탄자, 빛 바랜 청바지에 이르기까지 온갖 물건이 다 나와 있는 시장도 사람들로 붐볐다. 활기차게 거리를 오가며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입성은 남루하기 그지없다. 지붕 위에까지 사람을 싣고 달리는 낡은 버스와 간혹 눈에 띄는 택시가 대중교통 수단의 전부다. 카불의 도로에는 신호등 하나 없다. 중앙선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좁은 도로에서 외제 중고차들은 검은 매연을 내뿜으며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교차로에서는 경적소리 큰 차가 무조건 우선이다. 경적소리에 우선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햇빛을 받아 하얀 차체가 눈부시게 빛나는 고급 지프, 유엔의 랜드크루저다. 실수로 흠집 하나라도 내면 수리비로 중고차 한 대를 통째로 내줘도 부족할지 모른다. 그러니 알아서 비켜주는 수밖에.

이 반짝거리는 유엔 차량은 어디로 갈까? 골목골목을 돌아 도착한 곳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꿈에도 상상 못하는 별천지다. 새로 지은 서양식 단독주택들이 하얀 파라솔과 푸른 잔디밭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고 여러 나라의 대사관들과 NGO 숙소들, 외국 기자들이 묵는 게스트하우스가 늘어선 거리다. 거리의 소음도 전혀 들리지 않고 밤이면 방마다 노란 전기불빛이 때로 음악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이 거리는 카불의 일상과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곳이다.

테라스에 나앉아 밤하늘의 별을 보며 ‘네슬레’ 상표가 붙은 생수를 마시다 보면 아프가니스탄에 와 있다는 사실조차 깜빡 잊게 된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과 같이 뻥 뚫린 지붕 너머 하늘을 보며 잠을 청할 자신은 없으면서도 특권층으로 대접받는 자괴감은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NGO들은 국제사회가 아프가니스탄에 지원한 돈의 70% 이상을 자기들 숙소와 차량 유지비, 임금으로 써버린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는 돈은 30%가 채 안 된다.” 랍바니 전 대통령의 일갈이 진실임을 증언해 주는 것이 바로 이 거리와 랜드크루저다.

유엔을 비롯한 NGO에 대한 불만은 카불 곳곳에 팽배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특별히 은혜를 모르는 족속이어서가 아니다. 이들은 9·11이 비록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잊혀졌던 아프가니스탄의 문제를 세계에 알리고 탈레반의 오랜 억압통치에서 벗어나게 해준 고마운 선물이라고까지 말한다. 문제는 논의는 무성한데 삶에 실제적으로 와 닿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역에는 500여 개의 국제 NGO들이 들어와 있다. 카불에만도 100개가 넘는다. 지난 1월 말 국제사회가 약속한 올해 원조금액은 18억 달러, 10년간 100억 달러에 이른다. 그 많은 NGO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그 돈은 어디에 쓰이고 있는 걸까. 지붕을 올릴 나무조차 지원받지 못해 한뎃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은 묻고 있다.

난민촌 아이들

카불 외곽의 한 난민촌. 전쟁과 탈레반을 피해 파키스탄으로 떠났던 난민들은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초라한 세간을 트럭에 싣고 비포장 산길을 이틀 동안 달려온다. 스물두 살의 아두라시브는 자유를 되찾고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와 평화를 이룬 조국에 돌아오게 되어 새로 태어난 기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기쁨만으로 사정없이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에서 엿새를 버티기는 힘겹다. 대개 2~3일이면 UNHCR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지만 지원금과 물품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이들은 6일째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도 너무 뜨겁고 깨끗한 물도 없어 아이들은 대부분 병에 걸렸다. 여기 머무는 동안 식량도 우리 돈으로 사야 하는데 너무 비싸다. 여기까지 오려고 가진 돈을 다 들여 트럭을 빌렸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빵 한조각 살 돈도 없다. 게다가 천막이 비좁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먼지바람을 맞으며 밖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

카불 동남쪽 구드르 지역에 있는 다키케 발히 초등학교. 카불 동남쪽 지구는 내전과 탈레반 시절 가장 많이 파괴된 지역의 하나다. 집이고 학교고 폭격으로 무너져내려 거대한 흙덩이들이 흩어진 벌판처럼 보이는 이곳. 그나마 가장 형편이 나은 모스크에 임시 학교가 세워졌다. 하루 한끼 찾아먹기도 벅찬 이 마을에 선생님들은 날마다 찾아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달라고 부모들을 졸랐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이 학교에는 600여 명의 아이들이 다닌다. 하지만 많이 배워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에게 교사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낡은 칠판과 비닐 장판이 전부다. 압둘 자히르 교장은 호소한다.

“정부의 손길은 이렇게 작은 학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이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NGO들이 도와주어야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받은 것은 칠판 몇 개, 비닐 장판 몇 개가 전부다.”

대학교라고 해서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카불 사범대는 탈레반 시절 90여 명에 지나지 않던 학생이 2600여 명으로 크게 늘었지만 도서관도, 책도 없다. 교실엔 책·걸상도 부족해 늦게 온 학생들은 서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 지방에서 카불 의대에 진학한 학생들은 기숙사가 없어 학교 가까운 언덕에 세워진 군용 천막에서 생활하고 있다. 옷가지와 이불 몇 채, 책상 하나, 의자 하나가 전부인 작은 천막에서 7~8명씩 잠을 청하는 이 천막 기숙사의 기숙생들은 330여 명. 이들은 정부 예산이 자기들을 도울 만큼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수많은 국제 NGO들의 손길이 자신들에게는 미치지 않는지 의아해 한다. 카불대 라흐만드 교수가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책 한 권, 의자 한 개가 절실한 상황에서 NGO들이 대학의 전산화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세계는 아프간전쟁을 축구경기처럼 보고만 있었다”

카불 북쪽의 이스탈리프는 한때 울창한 숲과 단맛이 풍부한 포도로 근동에서 가장 부유한 마을의 하나였다. 하지만 4년 전 탈레반은 이곳을 알 카에다와의 공동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집에 태워버리고 나무를 베어내 주민들을 쫓아냈다. 들판에는 촘촘하게 지뢰를 묻었다. 지금도 대다수 주민들은 방 한 칸 다시 지을 돈이 없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유엔의 지원물품 중 유일하게 쓸모가 있었다는 노란 천막 하나를 집터에 세워놓고 30여 명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사히트 팍틸 할아버지는 분을 참지 못했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붕을 올릴 나무와 창문, 문짝 같은 거다. 아무 쓸모도 없는 저런 걸 갖다주고 뭐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부러진 콘크리트 철골이 쌓여 있었다. 흙벽돌을 쌓아 만드는 집에 콘크리트 철골이 무슨 소용일까. NGO들이 상황 조사한다며 노상 드나들면서 도대체 뭘 보고 간 건지 모르겠다는 할머니의 불만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국제 NGO들이 무수하게 이 마을을 다녀간 흔적은 그들이 세워놓은 대여섯 개의 표지판에 남아 있었다. 우리 단체는 이곳에 뭘 지원하고, 우리 단체는 또 뭘 지원하고…. 표지판마다 약속은 빽빽한데 주민들은 실제로 받은 도움은 없다고 말한다. 한 NGO 활동가가 자조적으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지금 카불은 NGO들의 깃발꽂기 전쟁터다.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크게 생색낼 수 있는 곳을 찾아 자기가 한 일을 과시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NGO가 몰리는 곳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곳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주간지 <카불 위클리> 편집장 파힘 대쉬티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바람을 한마디로 대변한다. “NGO들이 하고 싶은 지원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원하는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충고는 NGO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사회, 특히 미국이 귀기울여야 한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독립성이 강하고 외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민족이다. 과거 아프가니스탄을 정복하려고 했던 러시아나 영국은 수많은 사상자만 남긴 채 빈손으로 물러나야 했다. 아직까지 아프가니스탄의 미국에 대한 반감은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탈레반의 억압통치가 너무도 심각했기에 이곳 사람들은 탈레반을 물리쳐 준 미국과 연합군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22살의 대학생 지아는 지난해 10월 9일, 미국의 첫 공습이 있던 날의 감상을 이렇게 전했다.

“미국이 이전에 이라크에 가했던 공습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 밤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미군이 민간시설이나 군사시설이나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격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탈레반이 물러나게 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지금 미국이란 존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용납되는 것은 탈레반의 통치가 그만큼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용인이란 것도 어디까지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도와줄 때까지다. 아프가니스탄의 정치나 종교, 문화에 미국이 조금이라도 간섭하려 든다면 이들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카불대 역사학 교수 라흐만드 역시 단호한 입장을 나타냈다.

“우리는 번영과 평화를 원할 뿐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도 않으며 다른 나라를 지배하려 들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느 나라든 우리를 지배하게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우리를 도와주는 국제사회에 아주 감사한다. 억압적인 탈레반 정부로부터 우리를 구해준 미국에 감사한다. 하지만 분명히 경고한다. 결코 우리의 정치 상황에 간섭하지 말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어라. 그렇지 않다면 영국과 러시아가 당한 일을 그대로 당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네이션>지 편집장 니아지는 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드러냈다.

“국제연합군(ISAF)은 미국과 비교할 때 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는 미국은 오히려 아프가니스탄의 안정을 해치고 있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마음대로 작전을 펼치고 있다. 게다가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정부로 세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군벌들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이 중앙정부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는 전세계 평화를 위한 것

게다가 탈레반과 알 카에다 잔당을 모두 척결할 때까지 군사작전을 계속하겠다는 미국의 정책은 또 다른 종족 분열과 반미감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탈레반은 물론 종족 운동은 아니다. 그러나 파슈툰족이 주를 이루고 있는 칸다하르에서 시작되었기에 탈레반의 대다수는 파슈툰이었다. 탈레반이 물러나면서 파슈툰들은 완전히 버려졌다고 느끼게 됐다. 현 대통령 카르자이는 파슈툰 출신이지만 내각이나 군부의 고위직은 모두 타지크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탈레반에 대해 지나친 마녀사냥은 하지 않겠다. 우리는 화해를 원한다. 과거를 크게 묻지 말고 모든 종족, 모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함께 가자”는 카르자이의 호소는 현명했다. 탈레반 출신들을 가혹하게 다루는 것이 파슈툰 탄압으로 오해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네이션>지 편집장 니아지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의 경험만으로 아프가니스탄 정책을 결정하려 든다고 지적한다. “독일은 단일민족 국가이므로 나치가 잡았던 권력을 반나치주의자에게 넘긴다고 해도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파슈툰을 반탈레반 타지크로 대체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최초의 반미시위를 불러일으킨 우르즈간 결혼식장 오폭사건도 우르즈간이 바로 물라 오마르의 고향이며 파슈툰이 대다수를 이루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됐다. 대부분의 오폭사건이 파슈툰 지역에서 벌어짐으로써 파슈툰들은 미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현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고 이는 결국 새로운 반미운동과 종족 분쟁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라흐만드 교수는 미국이 제멋대로 하는 대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실질적인 지원을 해줄 것을 주문했다.

시마 사마르 전 아프가니스탄 여성부 장관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가 언젠가 제 힘으로 서서, 다른 나라를 도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 불행히도 지금 아프간은 외부의 도움에 의존해야 한다. 도움을 청해야 할 때 기분이 좋지는 않다. 다른 나라들은 그들 역시 과거에 비슷한 어려움에 처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국제사회의 한 부분인 우리를 지원해달라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는 전세계의 평화를 위한 것이다.”

지난 20여 년 간 국제사회가 아프가니스탄을 잊어버리고 있던 대가는 너무나 컸다. 테러리즘과 탈레반에 이 땅을 내어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9·11을 불렀다. 태어난 이래 전쟁만 겪고 살아왔기에 처음 맞는 평화가 너무나 소중하다는 청년 지아는 거듭 강조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내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세계를 위협할 수도 있는 테러리즘과의 싸움이었고 여러 나라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계대전이었다. 그런데도 세계는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을 재미있는 축구경기 보듯 지켜보기만 했다.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이제 잘 알았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면, 특히 미국, 그리고 곧 다른 나라들도 전쟁에 휩쓸릴 것이다. 테러리즘이, 알 카에다가 다시 아프가니스탄에 들어오고 세계가 똑같은 문제에 또다시 부딪힐 것이다.”

강은지 (민족21 기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